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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신약의 교회, 어떤 공동체였을까?

by 데오스앤로고스 2024.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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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회장:김현광 박사/한국성서대 교수)가 지난 10월 5일 오전 10시 성복중앙교회(담임:길성운 목사)에서 제7차 국내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신약의 교회, 어떠한 공동체인가?>라는 주제로 고린도교회, 예루살렘교회, 에베소교회, 로마교회 등을 다뤘다. 

 

 

 

고린도교회
"일꾼들로부터 배워라"
"새 언약의 일꾼이 돼라"

박형대 박사(총신대 신대원 교수)는 <"이제는 너희도":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고린도교회에 대해 발표했다.

 

박형대 박사는 "고린도 교인들을 동역자로 보는 바울의 마음을 고린도전서에서부터 읽을 수 있다"라며 "하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고, 더 배울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을 보려고 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일꾼들로부터 배우라'는 가르침을 제공했다"라고 설명했다.

 

박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고전 1:12)가 처음에 언급된 것은 단순히 '분파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일꾼의 표준이고(1:17-31), '게바, 바울, 아볼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꾼이다(3:4-6, 22). 따라서 바울 사도는 일꾼들을 '보고 따라 할 것'을 권한다(고전 4장).

 

박 박사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는 말씀에서 '일꾼'은 ‘노 젓는 사람’이다. ‘맡은 자’는 ‘책임자’이다. 바울과 소스데네는 하나님의 집에서 가정 총무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비밀을 다루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라며 "‘일꾼과 맡은 자’를 합하면 ‘노 젓는 가정 총무’가 된다. 가정 총무는 노를 젓지 않는다. 노를 젓는 사람은 가정 총무가 아니다. 그러나 바울과 소스데네는 ‘노 젓는 가정 총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합하여 그들의 정체성 삼았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바울 사도는 4장 6절부터 13절에서 자신과 아볼로를 통해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어떠한지 설명한다. 바울과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가 교회 되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며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믿는 자들에게 유익을 많이 주었다.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고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기 때문이다"라고 피력했다.

 

박 박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는 것은 고린도의 성도들이 창피해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자녀들로 그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라며 "무엇보다 ‘나를 흉내 내어라!’ 거울이 귀하던 시절인데도 자신들에게 함몰된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모델을 보라고 권한다. 바울과 소스데네, 바울과 아볼로, 바울과 디모데에게서 모델을 찾으라고 말한다. 세 세트의 공통분모인 바울 자신을 따라 하라고 권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 박사는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들은 그리스도를 닮은 일꾼들이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새기고, 그리스도가 마음에 새겨지도록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리스도가 마음에 새겨진 이들을 마음에 새긴다"라며 "성경이 말하는 근본적인 변화의 끝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죄를 벗는 것을 지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일꾼들, 하나님의 일꾼들은 성도들 마음에 자신이 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바울 사도는 자신의 편지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성도의 삶, 거룩한 자의 삶, 깨끗한 성전의 삶으로 초대한다"라며 "무명한 것 같지만 유명한 삶, 죽은 것 같으나 살아 있는 삶, 빡빡한 듯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근심하는 듯하나 늘 기뻐하는 사람,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삶,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삶이다. 우리에게도 그 초대장이 와 있다"라고 덧붙였다.

 

 

 

 

 

 

 

에베소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이 땅의 공동체와는 다르게"

김두석 박사(광신대 교수)는 <바울은 에베소의 에클레시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에베소서에 나타난 에클레시아와 그리스도인 공동체 정체성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두석 박사는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하나님 우편에 앉히시고 왕의 위치로 인정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진 이시며 만물이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는 왕의 모습으로 묘사된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여기에서 ‘에클레시아’는 에베소 지역에 국한된 성도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백성의 총합을 집합적으로 나타낸다"라며 "에베소서에서 사용되는 에클레시아는 통치자와 왕을 가지고 있는 백성의 전체 모임의 이미지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 박사는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에클레시아를 설명하기 위하여 두 개의 메타포를 사용하는데, 몸과 머리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라며 "바울이 교회를 설명하기 위하여 몸의 비유를 사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이와 같은 비유를 사용하여 교회라는 공동체를 설명할 때 에베소 지역의 성도들에게 교회의 의미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졌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 그리고 모든 권세가 그리스도 앞에 복종할 것을 언급함으로 그리스도를 주(왕)로 모시는 몸(국가)된 교회가 누리는 우월함에 대하여 묘사한다"라며 "이밖에 바울은 에베소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다른 집단과 차별성을 보이는 윤리를 강하게 권면한다. 당시 정치가들의 가장 고결한 윤리적 덕목인 “온전한 사람”의 이미지를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입하며 법을 뛰어넘는 사랑과 성령을 통한 성숙한 삶을 제안한다. 이것은 철학자들이 제안하는 지혜와 우월한 법 윤리를 초월한 도덕적 권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군사로 비유하며 새로운 형태의 국가와 시민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라고 피력했다.

 

김 박사는 "따라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지역과 민족을 초월한 새로운 형태의 나라와 백성 시민으로서의 교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 에베소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총합이며, 이 땅의 나라와 사회 집단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내며, 그리스도를 주(κύριος)와 왕(βασιλεύς)으로 모시는 나라이다. 새로운 왕을 모시고 새로운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이 땅의 나라에 속한 다른 공동체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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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회
"신분 초월해 모두 그리스도 안에"
"우리는 하나님 가족 공동체"

정성국 박사(아신대 교수)는 <로마의 그리스도 그룹들>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정성국 박사는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 28명을 언급한다"라며 "무엇보다 16장에서 언급되는 로마의 그리스도인 이름 24개 가운데 8개의 이름이 라틴식이고, 나머지 16개가 헬라식 이름이다. 헬라식 이름은 주로 노예들에게 주어졌다. 결국 이런 분석이라면 로마의 그리스도인 상당수가 노예 신분 혹은 노예 출신이었음을 시사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정 박사는 "로마는 안드로니고, 유니아, 헤로디온, 브리스가, 아굴라 등 유대인들과 노예, 혹은 해방된 노예들을 중심으로 형성한 그리스도 그룹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라며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우선적인 목적 중 하나는 로마의 그리스도 그룹들 사이에서 발생한 마찰을 해결하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바울은 로마서 1-11장에서 소속감과 정체성의 문제를 길게 설명한다"라며 "그리스도 그룹의 소속감을 결정하는 경계선은 헬라인과 야만인의 구분, 혹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선이 아니다. 3장은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가 죄 아래 있어, 오직 예수라는 시은소를 통해서만 의로움이 회복된다는 점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4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이야말로 은혜로 하나님 가족의 소속감을 얻은 모델이다. 결정적으로 5장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아담’ 곧 ‘사람’으로 오셔서 스스로 인간에게 ‘소속’되셨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렇기에 6장은 이제 우리가 세례를 통해 그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선언한다"라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여러 학자들이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고려하는 ‘그리스도 안에’ 사상은 바로 이 소속감과 정체성의 문제를 관통한다. 그리스도가 경계선이다. 그 경계선 안에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한다. 그래서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그리스도 그룹들은, 유대인들의 쉬나고게와 달리 이방인들에게도 소속감을 부여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정 박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1세기의 모든 이들을 수용해 주셨듯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성령을 통해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로마서는 줄곧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성령이라는 선물을 통해 스스로 자기 백성을 창조해 가시는 분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 가족에 대한 소속감은 하나님이 스스로 창조해 가신다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근원적인 확신이 필요하다. 교회는 그 하나님의 선교를 따라가는 이들이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작금에 한국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탈공동체화, 탈가족화는 오히려 교회에게 선교의 기회다. 우리가 아는 한국인들에게는 반드시 소속감과 수용이 필요하다"라며 "이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적 뿌리는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를 닮은 가족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 집단은 한국사회 속에서 교회밖에 없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처럼, 너희도 서로 받으라”는 말씀은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한국 사회 속에서 하나님 가족 공동체를 회복하라는 메시지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특히 정 박사는 "로마서 15:7은 여러 면에서 바울 윤리의 핵심을 전해 준다. 바울은 서로를 받는 행위를 통해 (1) 그리스도를 따르라, (2)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 (3) 그리스도라는 경계선 이외의 다른 어떤 경계선들에 대해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함께 전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바울은 제국과 세상을 향하여 저항만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거듭해서 공적 유익을 위해 선을 행하라고 강조한다"라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제국의 가치와 세상의 통념에 저항하여 핍박받는 자들이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세상의 유익을 구하며 선행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라고 권면한다. 즉, 로마의 그리스도 그룹들에게 ‘공적 교회’의 정체성과 실천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라며 "바울이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선행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선 (1) 그것이 하나님의 얼굴, 명예, 영광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2) 성도들의 선행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한 평판을 높이고 자부심을 고취한다.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받는 중에도 시민 사회의 공적 유익을 구하는 매력적인 집단이 되라고 조언한다. 어쩌면 이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는 낯선 정체성이요, 전에 살아 본 적이 없는 경계에 선 삶일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정 박사는 "바울의 명령 “너희도 서로 받으라”는 말씀은 로마에 흩어져 있는 6~7개의 그리스도 그룹들이 각각의 그룹 안에서 그리고 서로 다른 그룹들과 연대하고 돌보라는 권면이며,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라는 권면이며,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프로젝트에 동참하라는 권면이었다"라며 "교회는 세상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적 도구다. 단, 그들이 서로 연대할 때 그러하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의 생태계 복원이 필요한 때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성도가 감소하는 가운데서 대형 교회 성도 비율은 더 늘어나는 기이한 교회 생태계 속에서 한국 교회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교제하는 생태계를 꿈꿔야 한다"라며 "숲에는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지만, 혼자 자라 는 나무는 어디에도 없다. 작은 나무들이 사라지는 생태계 속에서는 큰 나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어떻게 상생하여 하나님의 선교에 함께 동참할 수 있을지의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예루살렘교회
"땅끝까지 확신되는 교회"

조재천 박사(전주대 교수)는 <초기 기독교가 예루살렘 교회에 빚지고 있는 것:역사,  신학, 사역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조재천 박사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원은 전적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의존한다"라며 "누가의 예루살렘 중심성은 신학적 명분을 머금고 있는데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유다이즘이다. 둘째, 성전이다. 셋째, 예수의 기억이다"라고 설명했다.

 

조 박사는 "하지만 누가복음의 예루살렘 중심성은 사도행전에까지 이어지면서 '땅끝'으로 확산된다"라며 "스데반의 순교 사건은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변곡점이 될 만큼 중요했다. 이 사건 이후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났고, 대다수가 예루살렘을 떠났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박해를 주도했던 사울의 회심은 어쩌면 예루살렘 교회가 다시 부흥하는 상황을 조성해 줬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기 43년과 44년 예루살렘에 또 한 번의 가혹한 박해가 일어났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를 참수하고, 베드로를 붙잡아 투옥한 것이다. 이때 천사의 도움으로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탈옥했지만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조 박사는 "이후 누가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정을 거의 서술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야고보의 리더십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어머니 교회'로서의 예루살렘 교회 권위가 여타 지역 교회들에게 확고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하지만 결국 50년대 말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에 대한 언급은 사도행전에 나오지 않는다"라며 "1차 유대전쟁(66-70년)과 2차 유대전쟁(132-135년) 이후에 예루살렘에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예루살렘 교회도 소멸되어 갔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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