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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요한복음의 윤리, "예수를 따른다면 윤리적 진보는 따라온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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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의 진보는 윤리적 진보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성이란 전인격적인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예수를 따라감에 있어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 헌신, 긍휼, 겸손 등이 제자들의 삶 속에서 재생산되지 않는다면 그건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는 제자도의 모습이 아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성과 윤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 영성은 예수를 앎으로 시작되고, 그 앎은 결국 예수를 닮아가는 것으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예수를 알기 위해 요한복음을 읽는다면 그들의 삶 속에서 윤리적인 진보는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 기독론과 윤리는 항상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복음서로서 지난 2000년간 사랑을 받아 온 요한복음이 윤리적 복음서로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신석구 박사의 결론이다.

 

신숙구 박사(횃불트리니티신대 교수/신약학)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가 지난 12월 4일(토) 오전 9시 온라인(ZOOM)으로 진행한 '제97차 온라인 신학포럼'에서 '요한복음의 윤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제97차 온라인 신학포럼'이 진행되고 있다(사진:ZOOM 갈무리)

 

 

 

왜, 요한복음에 대한
윤리적 연구가 없었을까?

 

 

신숙구 박사

신숙구 박사는 "1980년 이후 바울서신 중심으로 심도 있고 획기적인 신약윤리 연구서들이 많이 출판되었고, 그 뒤를 따라 공동서신과 공관복음에서도 윤리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라며 "그러나 이러한 신약윤리의 학문적 성과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유독 요한복음만큼은 신약윤리의 불모지라 불릴 정도로 2000년대 초반까지 학계의 관심이 전무했다"라고 분석했다.

 

요한복음이 신약학계로부터 외면당한 이유를 여러 신학자들의 주장과 함께 설명한 신 박사는 "전통적인 윤리적 언어와 개념이 요한복음 내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라며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쉬운 예로, 공관복음에서는 비유와 산상수훈 같은 윤리적 가르침이 있고,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에서도 행동의 규범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윤리적 교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표적의 책’이라 불리는 첫 12장에서는 그러한 윤리적 가르침이 거의 전무하고, 요한복음의 후반부인 ‘영광의 책’에 들어와서도 새 계명을 제외하곤 특별히 윤리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몇몇 진보적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예수를 인간에게 긍휼을 베푸는 일보다 자신을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드러내는 일에 사로잡혀 있고, 현세보다 내세의 문제에 집중하는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라며 "이렇게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비해 역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요한복음이 가진 고유의 윤리적 가치가 오랫동안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요한복음의 윤리적 연구
2000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윤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2000년 이후 급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신 박사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얀 반 더 바트(Jan van der Watt)는 2000년에 출판한 '왕의 가족'(Family of the King: Dynamics of Metaphor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이라는 저서를 시발점으로 요한복음 윤리연구에 매진했고, 그의 연구방법론은 요한복음 윤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는 것.

 

신 박사는 "반 더 바트는 문학적 비평과 은유이론법을 중심으로 요한복음에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와 상징적인 개념들을 분석해 나갔다. 이후로 요한복음의 윤리에 대한 연구와 책이 출판되면서 요한복음 윤리 르네상스가 시작됐다"라고 평가했다.

 

 

 

요한복음의 윤리,
고대사회의 윤리로 접근해야

 

 

신 박사는 "요한복음의 윤리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윤리적 정의나 형식으로 접근하면 윤리적으로 의미 있는 내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라며 "현대 사회에서 종교적 행위란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행위를 가리키고, 윤리적 행위는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어떠한 행위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러한 경계는 1세기 그레코로만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종교적인 것이 가장 윤리적인 시대가 바로 1세기 그레코로만 시대였다"라고 설명했다.

 

즉, 고대 문헌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신을 향한 경건이 중요한 윤리적 행위의 잣대였다는 것이다. 신을 닮아가고 신의 성품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단순히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윤리적 행위로 이해됐다는 설명이다.

 

신 박사는 "실제로 1세기 철학자들이 윤리적 사상을 연구하다 보면 윤리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히 타인을 향한 선한 행동과 의도를 넘어 신을 향한 경건에서 발견된다"라며 "이와 같은 관점으로 요한복음에 접근한다면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믿게 함으로써 생명을 얻게 하려 하는 목적이 신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고대 윤리적 개념과 매우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윤리적 진보'에 주목하라
제자도의 진보를
윤리적 진보로 볼 수 있다

 

신 박사는 "요한복음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 가치를 제대로 가늠하기 위해선 신약성경이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인물을 통해 특정한 독자들을 위해 쓰인 책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요한복음 독자들의 정서적 기대와 올바른 문학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특히 '윤리적 진보'라는 개념을 요한복음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주로 철학이나 교리를 중시하는 학파나 종교 단체는 윤리적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 올바를 이론적 가르침을 중요시 여겼는데, 초기 예수 운동이 그러한 부류에 속했다는 것. 따라서 요한복음의 윤리 연구에 있어서 '윤리적 진보' 개념을 연결하는 노력은 필수라는 설명이다.

 

신 박사는 "요한복음에서 제자란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을 넘어, 그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이들을 가리킨다"라며 "그렇다면 '제자도의 진보'란 한 개인이 예수를 믿은 후, 그들의 가치관(신념)의 변화를 경험하고 삶의 방향과 행동이 예수를 닮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제자도의 진보'는 '윤리적 진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피력했다.

 

즉, 현대 윤리는 종교와 윤리를 이분법적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제자도의 윤리를 윤리적 진보와 볼 수 없겠지만 당시 유대교 입장에서는 신의 존재와 신을 향한 경건이 윤리적 형성에 절대적인 요소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

 

 

 

 

 

 

 

가치관과 정체성을 바꾼 제자도,
καθὼς(~같이)는 윤리적 덕목 강조

 

 

신 박사에 따르면 요한복음에서 제자도의 진보는 공관복음에 비해 명백하게 나타난다.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는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그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표현했고, 그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상황에 대한 경고와 위로를 전해준다.

 

특히 "καθὼς(~같이)라는 접속사가 13장 이후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전치사 καθὼς는 신약성경에서 여러 문법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윤리적 기능이다"라며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이 단어의 용법을 분석해보면 예수는 네 가지의 윤리적 덕목을 강조했다. 첫 번째는 사랑(13:34; 15:12), 두 번째는 연합(17:11, 21, 22), 세 번째는 선교(17:18; 20:21),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속하지 않음(17:14, 16; 18:36)이다. 이러한 네 가지의 윤리적 특성은 ‘행위적 모방’(performative mimesis)과 ‘존재론적 모방’(existential mimesis)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이러한 모방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예수의 성육신이다. 예수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순히 구원론적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닮아가야 할 구제척인 본을 보여주시기 위한 윤리적 목적도 있다."

 

 

 

요한복음의 윤리,
어떻게 윤리적으로 읽을 것인가?
요한복음의 영성과 윤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읽을 수 있을까? 신 박사는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설명했다. 

 

니고데모와의 이야기 속에서 예수님은 예수를 믿고 믿지 않는 결과에 대해 분명히 언급하며, 예수를 향한 불신은 단순히 영적인 문제가 아닌 윤리적인 문제임을 선포한다(3:19-21). 즉, 요한복음에서 윤리의 절대적인 기준은 더 이상 율법 준수가 아닌, 예수를 믿는 것이 절대적인 선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3:18).

 

또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 속에서도 예수님은 관습적 윤리의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인종의 벽을 허무셨다는 것. 더 이상 모세의 율법과 관습이 아닌 예수가 새로운 영적/윤리적 기준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는 것.

 

신 박사는 "요한복음에서 기독론과 윤리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전자로 인해 후자의 변화를 가져 온다. 이러한 해석학적 기본 틀은 요한복음 전체에 적용되며,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복음을 읽을 때에 기존 기독론적 해석을 넘어 윤리적인 통찰력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방법론적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성이란 전인격적인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예수를 따라감에 있어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 헌신, 긍휼, 겸손 등이 제자들의 삶 속에서 재생산되지 않는다면 그건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는 제자도의 모습이 아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성과 윤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요한복음에서 영성은 예수를 앎으로 시작되고, 그 앎은 결국 예수를 닮아가는 것으로 종결된다. 만약에 독자들이 예수를 알기 위해 요한복음을 읽는다면 그들의 삶 속에서 윤리적인 진보는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 기독론과 윤리는 항상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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