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1장의 음식규정은 육식허용에서 부여된 하나님의 축복, 즉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로서의 축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정결과 불결의 구별을 통하여, 무분별한 살상을 피하고, 창 1장 29절에서 추구하는 세계 공동체의 평화 이상도 성취하고자 했다."
한동구 박사(평택대 명예교수)의 주장이다.
한 박사에 따르면 레위기 11장부터 15장에는 다양한 정결 규정을 담고 있는 정결법전이 소개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규정(레 11장; 참조 신 14: 3-21), (2) 출산 이후 부인의 정화 규정(레 12장), (3) 나병 규정(레 13-14장), (4) 신체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인한 부정 규정(레 15장)은 초기에 단순한 제의적 규정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었지만 점차 율법으로 발전돼 법적 구속력을 지닌 정결법전으로 발전됐다.
레위기 11장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특히 한동구 박사는 레위기 11장의 음식규정이 담고 있는 신학적 사상에 대해 주로 소개했다.
레위기 11장에는 불결(부정)한 것으로 분류되는 다양한 짐승이나 물건들이 언급돼 있다. 특히 11장 1절부터 23절에는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구분돼 있으며, 각 짐승의 서식지(육지, 수중, 공중)로 분류해 열거하고 있다.
한 박사는 "육지 짐승 가운데에는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정한 짐승은 그렇지 않은 부정한 짐승으로 구분한다. 수중 짐승 가운데에는 지느러미가 있고, 비늘이 있는 정한 물고기와 그렇지 않은 부정한 물고기로 구분한다. 그리고 공중 동물들은 새와 곤충으로 구분하여, 정한 모든 조류와 맹금류에 속한 부정한 조류로 구분되며, 또 뛰는 다리가 있는 정한 곤충(예 메뚜기)와 그렇지 않은 부정한 곤충으로 구분한다"라고 설명했다.
레 11장의 신학적 의미(1)
타부와 오염
"신을 벗어라" 거룩한 분리
한 박사는 "레 11장에서는 특정 동물들을 부정한 동물로 규정하여, 이 동물들로 요리한 음식을 먹지 말 것을 경고하며, 심지어는 접촉하는 것도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금령의 이유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하나님의 계명으로 준수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한다. 따라서 이러한 금령들은 일종의 타부처럼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타부는 위험한 것으로 규정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이것들은 대개 정체성이나 사회 체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이다"라며 "또한 부정한 동물이나 물건들은 오염된 것으로 간주한다. 타부와 관련된 오염은 위생적 차원보다는 대개 사회적 상징체계 혹은 가치체계의 부산물이다. 오염이란 사회적 합리성에서 벗어난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깨끗함과 더러움, 남자와 여자, 종과 종 사이를 엄격히 구별하여 경계를 지우는 행위를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매우 기본적이며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차이’를 토대로 경계를 이루어 질서를 이루고자 하며, 정체성이나 체계와 질서를 교란하는 모호성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질서의 전부이다. 차이가 없는 곳에서는 위험도 없고, 따라서 오염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 박사는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을 때 그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룩한 곳을 다시금 일상으로부터 분리할 것을 명하셨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명령했다(출 3:5)"라며 "모세의 일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다시금 모세에게 일상으로부터의 거룩한 분리를 요구했다"라고 설명했다.
한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사장들은 정결과 불결의 분리, 거룩과 세속의 분리, 정의와 불의의 분리 등 날카로운 이분법적 분리를 항상 주장해 왔다. 이분법적 분리는 국가가 이방민족에 의해 그 존립이 위험을 받을 때, 국가가 이방민족에 의해 상실되었을 때 더욱 활발하게 제기됐다.
이방민족에 대한 부정적 가치평가는 종종 종교적 동기가 부과되어 더욱 강화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우상숭배자들, 할례받지 아니한 사람들 등 이렇게 한 번 생성된 부정적 가치평가 (혹은 오염)는 그 후에도 계속하여 지속되기도 했고 또 확산되기도 했다.
한 박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분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다양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관습과 이방의 관습을 구별해야 한다. 할례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헌신의 상징을 귀중한 유산으로 구별해야 했다"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분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의 상징(예를 들어 할례와 안식일 준수) 길을 추구했다"라고 주장했다.
노아의 홍수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 한 박사는 "노아의 홍수는 경계(境界)를 혼란시킨 다신론적 사람들(이방인들)과 경계를 지키는 야훼께 속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부정적 경계의 이탈을 피하고자 거룩한 구별을 강조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레 11장의 신학적 의미(2)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
한 박사는 "음식규정 배후에는 국가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혼란과 무질서를 경험하고, 온갖 불의와 부정이 사회의 근본을 뒤흔들었다. 분리와 구별을 통하여 파괴된 사회에서 혼란을 정상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고자 하였다"라며 "음식 규정에서의 정결의 유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온전한 상태, 창조 상태의 유지와 때로는 창조의 회복과 연결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한 박사는 "아브라함의 역사에서는 세계 공동체가 펼쳐지며,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와 축복 가운데에서 평화로운 한 가족 공동체의 이상을 제시한다"라며 "여기에서 이스라엘이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온전한 삶(창 17: 2)이다"라며 "할례 등의 계약과 번성의 축복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추구하는 아브라함의 행동으로 인해 그의 자녀들이 많은 민족들을 이루어, ‘세계를 한 가족’으로 만드는 등 세계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라고 강조했다.
레 11장의 신학적 의미(3)
창 1장 29절, '육식금지' 의미
"거룩함 통한 세계의 중심"
"정복과 지배의 포기" 평화의 세계
한 박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나누었다. 또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나누었다"라며 "혼돈과 부정에서 질서를 얻고자 했으며, 또 거룩한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러한 거룩한 질서, 특히 음식규정의 준수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세계의 중심이 되는 이상을 열어주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세계의 관리자/통치자의 책무를 위임하셨다"라며 "무엇보다 구약 성서 여기 저기에 산재되어 있는 제의 규정들에서 짐승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창세기 1장 29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열매를 맺는 식물만 음식으로 허용했다. 이 제한은 인간의 동물 세계에 대한 지배의 제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새 세계는 (동물의) 살상(= 폭력과 살인)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동물 세계 내에 어떤 피흘림도, 인간에 의한 어떤 살인 행위도 있어서는 안 된다. 피조물들 사이에 평화가 있어야 함을 제시하신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즉, 동물식사의 금지는 동물 세계에 대한 지배와 정복의 제한을 의미한다는 것. 다시 말하여 정복과 지배의 사상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의미한다. 창 1장 29절에서의 육식금지는 정복과 지배의 포기를 통한 평화의 세계를 지향하는 이상이 담겨져 있다는 설명이다.
한 박사는 "레 11장의 음식규정은 육식허용에서 부여된 하나님의 축복, 즉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로서의 축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정결과 불결의 구별을 통하여, 무분별한 살상을 피하고, 창1장 29절에서 추구하는 세계 공동체의 평화 이상도 성취하고자 했다"라며 "레 11장의 음식규정은 한편으로 거룩한 백성이 되어 세계의 중심의 역할을 하는 길을 열고자 했으며, 동시에 정복과 지배가 없는 세계공동체를 이룩하여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고 하는 이상을 담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위의 글은 한국구약학회가 지난 9월 20일(금) 주안대학원대학교에서 개최한 '제126차 추계학술대회'에서 발제자로 참여해 <레 11장의 음식규정의 신학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한동구 박사의 발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Copyrightⓒ데오스앤로고스 / 무단 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 > 성경과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인은 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을까? (1) | 2024.10.18 |
---|---|
출애굽기 40장 35절에서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 (0) | 2024.10.18 |
누가-행전의 '돌아옴'이 지닌 두 가지 의미: "귀환과 회개" (0) | 2024.10.15 |
신약의 교회, 어떤 공동체였을까? (2) | 2024.10.07 |
그리스도인, 세상 속 살아 있는 '매일의 편지' 돼야 (0) | 2024.02.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