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28일 휴거설과 그것이 남긴 교훈
/ 박용규 교수(총신대, 역사신학)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표적을 구하는 이적의 신앙이다.”
박용규는 “표적 신앙인들은 가장 심도 있는 신앙인들처럼 보이지만 가장 초보적인 이들에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며 “가장 복음을 왜곡시키기 쉬운 이들이 바로 그런 류의 신앙인들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 2천년의 역사는 기독교를 지식의 종교로 혹은 표적의 종교로 믿고 추구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선민의식이 강하고 스스로 믿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들을 은근히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유독 표적을 너무도 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 환상을 보거나 방언을 하거나 예언을 하거나 계시를 받았다거나 병을 고치거나 어떤 기적을 체험하는 일에 쉽게 미혹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신앙의 중요한 열매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성품의 변화와 변화된 신앙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열매이다. 주님을 닮아가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살아가면서 도적 같이 임하실 주님의 재림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재림신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님은 분명 재림하실 것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며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날과 그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이나 경건하게 살았던 이 땅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 생전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재림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발표내용 중에서
1. 1992년 10월 휴거설은 이장림의 표현을 빌린다면 “열풍”이었다. 점차 수많은 사람들이 92년 휴거설에 빠져 들어가면서 그 파장과 피해가 심각했다. 1992년 8월 10일 92년 10월 휴거설에 빠진 아내문제로 비관하던 31살의 남편이 부모의 묘 앞에서 극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남편이 죽자 아내는 아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산속 기도원에 들어가 집단생활을 했다. 어린 학생들 중에는 반에서 1, 2등을 하던 학생이 92년 10월 휴거설에 빠져 성적이 뚝 떨어지고 가출하는 일도 있었다.
가출, 학업중단, 직장포기가 비일 비재하게 일어났다. 피해는 이것만 아니었다. 대검찰청은 1992년 8월 12일 “시한부 종말론이 확산되면서 일부 신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가산을 교회에 헌납하거나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학업을 중단한 채 가출하는 등 이른바 종말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함에 따라 이에 대해 본격수사를 벌일 것을 전국일선검찰에 지시했다.” 검찰은 이장림에 대한 조사도 착수해 1992년 8월 그동안의 수사를 발표했다. 검찰은 이장림이 88년 8월부터 종말론을 설파하면서 “신도들로부터 지금까지 33억을 개인적으로 받아 관리해 왔음을 밝혀냈다.” 신자들이 휴거설을 믿고 바친 것이다.
2.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이 불발로 끝난 그 다음날 10월 29일 다미선교회 총본부 본부장 이장림과 다미선교회 성도 일동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에는 “기독교계와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사과문에는 “솔직히 시인” “머리 숙여 정중히 사과” “진정으로 용서를 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시인한다는 말도 했지만 자신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한다는 것이 아니라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시인이었다.
3.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이 사건이 한국교회에 미친 여파는 너무도 지대했다. 지금도 한국교회는 그 후유증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직통계시를 주장하고, 신유와 투시와 예언이 난무하고 있으며 천국과 지옥을 직접 보고 체험했다고 외치며 순진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다.
4. 92년 10월 휴거설이 불발로 끝난 후 많은 일간지들은 하나 같이 다행히 큰 불상사 없이 지나갔다고 안도했다. 그러나 분명히 한 것이 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또 종말론에 대한 바른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사회적 책임도 제기했다. 중앙일보는 1992년 10월 29일 “휴거소동이 남긴 교훈”이라는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휴거를 기대했던 신도들에게는 실망이 컷겠지만 이 기회에 터무니 없는 교리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았다면 좋은 교훈이 됐으리라 믿는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이란 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이다. 현세의 믿음과 선악에 상응하고 사후의 화복을 약속하는 것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는 일반적인 종교교리의 공통된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역사하는 것일 뿐 인간의 힘이나 지혜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 언제 일어날지는 하느님만 아실뿐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 시기를 예측한다는 것은 이단적인 행동으로 정통교단은 보고 있다. 이번 휴거의 불발로 해서 시한부 종말론이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요, 기독교교리의 왜곡임이 실증된 셈이다. 특정 종교집단의 이러한 왜곡된 신앙이 초래하는 사회적 영향은 실로 막심하다.....종교는 개인의 행복은 물론 사회의 평화와 안녕에 기여하게 된다. 내세의 복락만을 위해 현세의 일체를 포기하거나 사회안정을 해치는 신앙은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이기주의적 광신일 뿐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呪術[주술]신앙이나 기도신앙의 극복을 위해서는 기성정통교단이 이들에게 종교적 갈망을 충족시키고 안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정의가 실현되고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돼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황폐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 가장 심각한 문제는 92년 10월 휴거설이 근거로 삼고 있는 계시문제이다.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하늘의 비밀이라는 직통계시에 대한 언급이다. 종말론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국내외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성경의 충족성(Sufficiency of Scripture)을 믿지 않고 계시의 연속을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2세기 몬타누스가 페푸자 마을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수많은 이들을 미혹한 후 수많은 이단들이 새계시(New Revelation) 곧 거짓계시를 빙자해 사람들을 현혹시켜 왔다. 거짓계시는 종말론에 집중되었고 그 중심에는 그날과 그 때였다. 지난 2천년 동안 그날과 그 때를 산정하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이장림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운동처럼 이장림의 92년 10월 휴거설도 그 근본적 발단이 계시문제였다.
6. 이장림은 첫째, 계시는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둘째, 순진한 젊은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종말에 대한 비밀의 계시를 계속해서 내려주시고 있다. 셋째, 그 계시는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정확하게 맞는 것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이다. 넷째, 따라서 자신의 저술에서 밝히는 계시의 내용들은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섯째, 그러므로 계시 스토리를 기록한 이 책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92년 10월 휴거계시를 역사적 기독교가 말하는 계시관에 비추어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계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에게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와 사귀수 있도록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계시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일반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의 모든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일반계시는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전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장림이 말하는 계시가 일반계시를 지칭한다고 할 수 없다. 이장림이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계시란 마지막 종말에 대한 구원사역과 관련된 특별계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장림 자신도 성경으로 계시가 종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항변한 것이다. 우리는 그의 계시관이 정통교회에서 말하는 계시관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7. 역사적 기독교는 특별계시에 근거한다. “특별계시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드러내심으로써 사람들이 그와 구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헨리 디이슨의 말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구체적 표현이다.” “성경은 그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일 뿐만 아니라 그 계시의 무오한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성경 외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기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 찰스 핫지가 지적한 대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외에 그와 같은 권위를 갖거나 그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에 의한 영감된 성경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8.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법칙이며 따라서 최종적인 권위를 지닌다. 다시 말해 성경은 신앙의 절대적 기준이요, 표준이라는 의미다. 역사적 기독교는 지난 2천년 동안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장림은 이상한 주장을 반복 한다. 성경을 “기록된 계시”로 축소시키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소위 자신들이 받았다는 계시를 성경의 권위와 동격 혹은 그 이상으로 두고 있다. 성경이 밝히지 않는 비밀의 계시를 하나님께서 지금 자기 주변의 수많은 계시 답지자들을 통해 드러내고 계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지 않고 기록된 말씀에만 국한 시키는 행위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9. 이장림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오늘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이 죽은 말씀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및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이 지음을 받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말이다. 개혁주의 신학 원리 가운데 하나는 성령은 독자적으로 역사하시지 않고 성경을 통해 성경과 더불어 역사하신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신뢰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성경을 떠나 혹은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이단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10. 또 하나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재림 시기이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여기서 인자도 과연 그날과 그 때를 모르셨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주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다고 승천하시기 전 다시 강조하셨다. 그런데 이장림은 주님이 그날과 그 때를 모르실리 없으며 인간이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 때를 알 수 있다는 성경구절도 많이 있다며 제시했다.
11. 칼빈은 마태복음 주석에서 주님의 재림 시기를 예상하거나 추측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우리가 감히 주님이 임할 그날이 언제인지 물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종말과 관련하여 우리 인간들의 영역은 그날과 그 때를 준비하는데 있지 그날과 그 때를 아는 것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장림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그날과 그 때에 집착했다.
심지어 정통교회에 속한 이들까지 그 미혹에 빠져들어 갔다. 앞으로도 그 미혹은 계속될 것이다.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려 했던 루시퍼의 교만이 타락한 인간 속에 남아 있는 한 사탄은 계속해서 거짓계시를 빙자해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사람들을 부추길 것이다. 역사가 너무도 분명하게 교훈을 주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고 또 그런 미혹에 넘어갈 것이다. 그래서 헤겔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는지 모른다.
12. 이단들과 사이비 집단의 거짓 미혹의 향연은 마약보다 무섭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사탄의 장난이기 때문이다. 교주들이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의 가르침을 포기하겠다고 표면적으로는 말하지만 실제로 이단교주들이 정통신앙으로 돌아온 사례는 거의 없다. 여전히 거짓 영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말론은 이단배출의 창구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가장 많은 이단들을 배출하는 교리가 종말론에서 시작되었다. 승천하신 주님이 다시 재림하신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정통신앙이다. 가장 성경적인 교리를 가장 왜곡시킨 역사가 기독교 2천년의 역사였다.
13. 평신도들만 아니라 목회자들 중에 92년 10월 휴거설에 깊이 물들어 버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소속 교단에서 목사면직을 당하면서도 잘못된 가르침을 고수했다. 다미 시리즈를 읽거나 그들이 개최된 집회에 참석했다 영향을 받은 정통교회 목회자들이 드러나지 않지만 너무도 많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한번 거짓 계시에 물든 이들은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고, 잘못된 종말론의 물든 목회자들이 숨어 있다 제2, 제3의 휴거설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오늘날 92년 10월 재림론과 유사한 형태의 이단 사상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록 과거 이장림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포교하지 않더라도 정통교회 강단에서 직통계시를 빙자한 예언이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92년 10월 휴거가 남긴 후유증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4. 그렇다면 어떻게 기성교회가 92년 10월 휴거설이나 유사한 사상을 미연에 대처하거나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가? 첫째, 바른 신앙교리를 가르치는 일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리 교육이 사라지고 있다. 옥한흠의 제자훈련 교재의 3분의 1이 기독교 교리다. 바른 교리를 가르쳐 신앙의 분명한 골격을 세워주는 것이야 말로 교인들 스스로 이단에 대처할 능력을 배양해 주는 첩경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완수해야 매우 시급한 과제다. 원죄는 아담의 타락에서 시작되었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에서 출발한다. 인류의 첫 조상이 아담임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미 이장림은 1988년에 아담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다시 살리는 길은 교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다. 만약 별도의 시간을 내서 가르칠 수 없다면 설교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성경적 바른 교리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쉽게 빠져들 것이다.
15. 둘째, 바른 계시관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은사와 계시를 혼돈하는 경향이 있다. 은사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오늘날의 은사를 계시 혹은 계시의 보충적 증거로 받아들인다. 적지 않은 이단들이 오늘날도 계시가 계속되고 있다며 새 계시 혹은 새예언을 주장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의 충족성, 완전성, 최종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만약 성경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하거나 종말에 대한 직통계시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기독교가 받아줄 수 없는 거짓계시에 불과하다. 오늘날 계시를 빙자한 예언이 난무하고 있지만 모두가 사기극이다. 계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미래적인 일을 함부로 남발하는 사례도 오늘날 한국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으로 완성되었다. 더 이상 하나님은 개인에게 성경 외에 특별계시를 개별적으로 주시지 않는다. 성령의 조명과 계시는 다르다. 특별계시는 성경으로 종결되었다. 평신도는 물론 목회자들 중에서라도 성경 외에 어떤 특별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이단이다.
16. 셋째, 주님의 재림 일자,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새계시”(New Revelation) 즉 거짓계시를 주장하는 이들은 요한복음 16장 12-13절 “성령이 오시면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를 인용하며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주님은 그날과 그 때를 언급하면서 인자도 천사도 모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 아신다(마 24: 36)고 말씀하셨고,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라고 다시 확인시켜주셨다. 제자들은 이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했다. 그날과 그 때는 하나님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날 혹은 성도들의 휴거일을 계산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존재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미혹의 영은 92년 10월 휴거설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부추겨 주님의 재림날을 지정하며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된다. 만약 누가 계시를 빙자하거나 성경의 예언기록 해석을 통해 휴거일을 주창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다. 지금까지 계산이 맞은 적이 없다. 세대주의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세대주의를 따르면서도 건전하고 건강한 신앙을 가진 이들이 참으로 많다. 세대주의가 휴거일이나 재림날자를 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한부 재림론자들이 세대주의를 왜곡시켜 시한부재림론으로 만들어 간 것이다.
17. 넷째,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92년 10월 재림론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재림날 혹은 휴거일을 지정하면서 직통계시, 노스트라다무스, 무화과비유 성취 등 많은 것들을 근거로 인용하면서도 성령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고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도 초보적인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8. 다섯째, 가장 근본적인 성경적 구원관을 바르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교회는 구원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 정통신학자들 중 휴거를 믿는 이들은 성경에서 휴거를 거론할 때 그것은 성도들의 휴거이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휴거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다시 말해 구원이 전제된 휴거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휴거설이 난무했다. 92년 10월 종말론에 빠져든 이들 가운데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적도 없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적도 없고 그저 종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합류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구원은 한탕주의가 아니다.
19. 여섯째, 신앙생활의 기준은 환상, 계시, 예언, 투시 같은 신비적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20. 일곱째, 평신도들은 건강한 교단에 소속된 교회, 정통교단으로 인정받는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목회자 섬기는 교회를 찾아야 한다. 이단 교주 가운데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다면 단 한 사람 짐 존스 뿐이다. 그도 자유주의 감리교 신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으면 이단에 쉽게 빠질 수 없다. 무자격 목회자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망쳐놓고 있다. 무인가 신학교 무자격 신학교에서 무자격 목사를 배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92년 10월 재림론에 빠져들어 이장림 휴거 프로그램에 동조했던 이들 가운데 전국에 수많은 ‘교회’를 설립해 전도사로 목사로 행사한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너무도 많은 무자격 목사를 배출한 셈이다.
* 위 내용은 한국기독교사연구소(소장:박용규 교수, 총신대)가 지난 2012년 11월 26일 오후2시부터 6시까지 신반포중앙교회(담임:김성봉 목사)에서 개최한 ‘한국 교회 이단사이비 운동 비평 심포지엄 1’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단체에 문의해 발표문을 참고하면 된다.
박용규,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과 그것이 남긴 교훈”, 한국기독교사연구소-제1회 한국교회 이단사이비 운동 비평 심포지엄, 2012년 11월26일, 서울:신반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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