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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벤자민 쇼 박사가 전하는 ⑤ ‘성경해석의 기본기’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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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의 정황만 알면 구약성서 배경이 보인다

 

2015년 7월 9일 기사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원장:서창원 목사)이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양의문교회당에서 ‘제2기 개혁주의 설교전문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미국 그린빌신학교 구약학 교수인 벤자민 쇼(Bengamin Shaw) 박사가 주강사로 나서 ‘개혁주의 신앙고백적 성경해석학:성경해석의 기본기’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심포지엄의 주된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편집자 주>

 

<제5강> 역사적 해석:고대 근동의 정황

구약성서를 위한 고대 근동의 정황이란 기원전 약 3천 년 경부터 기원전 약 3백 년까지의 기간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기간의 시작은 이집트 고대 왕국의 발흥과 일치한다. 이 기간의 끝은 그리스도 제국의 발흥과 일치한다.

그리스 제국은 곡 네 개의 다른 제국들로 나뉘어졌고, 그 뒤를 이어 로마 제국이 발생했다. 따라서 로마 제국이 신약성서 전체에 대한 정황을 제공한다.

 

 

# 메소포타미아

구약성서 기간 동안의 고대 근동의 정황은 세 개의 다른 문명의 중심지들을 포함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그리고 가나안 문명이다.

강들의 중앙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이름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들의 주변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데, 현재의 이라크와 쿠웨이트가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이 문명은 처음, 두 강이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에 위치한 쑤메리아(Sumeria) 지역에서 발흥했다. 이것은 세련된 문명권으로 가장 이른 기록 언어들 중 하나를 발전시킨 문명이다.

# 바벨론

고대 바벨론 제국은 함무라비의 시기였다. 아마 함무라비 법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이 법전은 출애굽기 21장~23장에 나오는 법들과 비슷한 법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옛 바벨론 제국의 중심지는 쑤메르 제국이 있었던 곳보다 훨씬 더 북쪽인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해 있었다.
고대 바벨론 제국의 첫 번째 특징은 무엇보다 비교적 작은 지역들을 직접 통치했던 강력한 개인들에 의해 다스려진 왕국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은 훨씬 더 넓은 지역들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군사적인 정복과 통제에 의해, 무역에 의한 영향력이 행사됐다.

바벨론 문화의 두 번째 특징은 다신교였다. 바벨론에서 신들은 그 행위들이 일정한 근거가 없이 제멋대로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에게 예배하는 자들은 희생 제물들과 종교적 의식들로 신들의 도움을 불러내는 것이었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이 모든 것들을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다양한 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복잡했다. 왕들은 특정 신들에게 그들 스스로가 붙어있으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사제는 왕들의 보조자로서 역할을 했고, 권력을 행사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신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왕은 자신이 믿는 신의 뜻이 우세한지 확신하지 못했다.

 

 

바벨론 문화의 세 번째 특징은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것이었다. 고대 바벨론과 앗시리아의 언어는 아카디아 언어였다. 아카디아 언어는 쐐기문자(설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쐐기문자에서 각 사인(sign)은 하나의 음절을 나타냈다. 대부분의 자료들은 점토 판들 위에 기록되었고, 그런 다음 보존하기 위해 그것을 구웠다.

점토판에 보존된 자료들은 경제적 텍스트들로 무역 거래와 판매에 대한 내용이었다. 또한 동물의 간 검사를 근거로 해서 이루어진 예언들을 기록한 제사장들의 자료였다. 마지막 유형의 문헌은 서사시였다.

이 시들은 대부분 신들과 유명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등은 가장 잘 알려진 서사시들이다. 길가메쉬의 에픽은 영원한 삶을 찾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누마 엘리쉬는 바벨론인들의 관점에서 본 창조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것은 신들 사이의 전쟁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근본적으로 제사장들과 왕의 다른 종들에게 국한됐다. 각 왕들은 자신의 성공을 특정한 신의 탓으로 돌렸기 때문에 새로운 왕조가 일어났을 땐 언제나 주요 신의 변화 역시 있었던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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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바벨론 제국 기간 동안 사람들의 이동도 많았다. 국경선들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고, 가장 강력한 군대들도 제국의 방대한 변방 지역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이주를 할 때 단지 물건을 집어 들고 옮겨 갔다.

고대 바벨론 제국 기간은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인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의 기간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그들의 잦은 이주는 낯선 일들이 아니었다.

# 앗시리아

고대 앗시리아 제국은 더 오래된 바벨론 제국의 쇠퇴 가운데 발생했다. 고대 앗시리아 제국의 중심은 바벨론 제국이 있었던 것보다 페르시아 만에서 훨씬 더 북쪽으로 멀리 위치해 있었다. 결과적으로 제국의 영향권은 현재의 시리아와 터키가 차지하고 있는 지역 안까지 미쳤다.

고대 앗시리아 제국은 성격상 구바벨론 제국과 매우 비슷했다. 구앗시리아 제국의 기간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와 거의 동일한 기간이었다. 대략 기원전 2천 년 중간 3기쯤이었다.

# 힛타이트

힛타이트 제국은 주로 현재의 터키 동부지역을 차지히고 있었다. 이 제국의 영향력은 팔레스틴(블레셋)과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까지 미쳤다. 따라서 힛타이트 제국은 고대 앗시리아 제국과 갈등을 빗게 됐다. 두 제국은 거의 같은 시기에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팔레스틴 지역으로 들어갔을 때, 힛타이트 제국은 이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 제국은 이스라엘의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

고대 근동의 다른 문명권들보다 힛타이트 제국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창세기 23장에 언급된 힛타이트 족속들은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라고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기도 했다.

 

 

힛타이트 제국의 수도는 하투사스(Hattusas) 도시였으며, 보가스코이(Bogaskoy) 지역의 현재 터키 땅에 위치해 있었던 도시였다. 아마 발견된 힛타이트 자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힛타이트의 영주와 봉신(封神) 사이에 맺어진 맹약(盟約)이었다. 조약문서는 영주와 봉신의 소개, 역사적인 서론적 사건, 조약의 조항들 등 여섯 가지 정도였다.

이 조약 문서들의 발견 이후, 조역들이 성경적 계약들, 특히 신명기에 나오는 언약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급속하게 인식됐다. 신명기의 구조가 힛타이트의 조약 문서 구조를 느슨하게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힛타이트 조약의 ‘간략한 서문’ 형태는 신명기 1장 1~5절과 유사하고, 힛타이트 조약의 ‘역사적인 서론적 사건’은 신명기 1장 6절에서 4장 40절까지, 힛타이트의 ‘조항들’은 신명기에서 일반적인 조항들(5장~11장), 특별한 조항들(2~26장)과 유사하게 기록됐다는 것이다.

또한 힛타이트 조약의 ‘문서 보존과 읽어주기’는 신명기 31장 9~13절과 비슷하고, 힛타이트 조약의 ‘증인들’은 신명기의 4장 26절, 30장 19절, 31장 28절에서 비슷한 형식을 찾아볼 수 있고, 힛타이트 조약의 ‘축복과 저주들’은 신명기 28장의 표현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신명기에 대한 대다수의 현대 주석들은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토론을 제공하고 있다. 신명기는 힛타이트 조약들보다도 훨씬 더 길다. 그러나 구조의 유사성은 명백한 사실이다.

# 이집트

이집트는 성경시대에 있었던 거의 전 지역에 대한 국제적인 강대국이었다. 그 위치는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상당히 멀리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와 고대 바벨론 제국, 고대 앗시리아 제국 사이에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매우 유사했다. 다신교였고,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제사장 제도를 갖고 있었다. 통치권은 한 파라오에서부터 그 다음 파라오에게로, 왕가에 어떤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주로 상속에 의해 전해졌다.

이집트 종교와 메소포타미아 종교 사이의 주요한 차이점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서로 적대적인 신들과는 달리 이집트인들은 대개의 경우 자신들의 신들이 백성들에게 호의적인 친절한 신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 체계는 아카디아인들의 쐐기꼴(설형문자) 문자와는 매우 달랐다. 상형문자는 18세기 후반에 로제타의 돌이 발견된 후까지도 믿을만하게 번역되어지지 않았다가 1820년 참폴리언에 의해 해독됐다.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 제국들보다 팔레스타인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해 훨씬 더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이집트에서의 족장들의 경험, 요셉의 시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화, 분열왕국 시대에 이스라엘 영토를 약탈한 이집트의 상황을 볼 때도 명백하다.

 

 

# 가나안(우가릿)

지중해 동북 해안을 따라 위치해 있었던 이 왕국은 1929년 라스 썀라(Ras Shamra)에서 발굴물들이 출토될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왕국이다.

상당수의 점토판들이 그 곳에서 발견됐는데, 기원전 약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점토판들이었다. 대부분의 점토판들은 서사시를 담고 있었으며, 그 내용 대부분은 신들의 행위들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

이 발견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 그것들이 기록된 언어(우가릿 언어, Ugaritic)는 알파벳의 성형문자로 적혀져 있었다. 이 알파벳은 히브리어의 알파벳과 매우 가까운 것이었고, 그 언어의 구조는 아카디아어보다도 히브리어에 더욱 가까웠다.

둘째, 발견의 중대한 의의는 시(詩)의 성격에 있었다. 이 발굴이 이루어질 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학자들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시(詩)에 대해 확신을 갖질 않았었다. 사본을 베끼는 지난 수 세기 동안에 그것이 이미 예전에 전와(轉訛), 즉 변조(變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가릿 시(詩)가 가진 어휘, 병행구문, 그리고 다른 시적 요소들이 시편들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매우 가까운 것들이었다. 이 발굴의 결과로 학자들은 시편들에 대한 자신들의 접근법을 재고했어야 했다. 히브리어 텍스트가 수 세기 동안 걸쳐서 상당히 변조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개연성이 매우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 가나안 사람: 블레셋 족속

팔리스틴 사람이란 명칭이 팔레스타인(지중해 동쪽의 옛 국가)이라는 국가명에도 이바지했다. 블레셋 족속들은 기원전 약 13세기경에 팔레스타인의 동남 해안가 지역에 정착해 살았던 배를 타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사시대 동안 불레셋 족속들은 내륙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영토 일대와 특히, 팔레스타인을 관통하는 무역로들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은 철기문명 기술을 보유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습득하지 못한 기술이었다.

블레셋의 존재와 그들의 확장정책은 사울 왕고 뒤이은 다윗 왕의 통치 하에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밀려 나가서 해안에 있는 7~8개의 도스들로 억제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문젯거리를 야기시켰다.

 

 

# 기원천 첫 1000년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기간과 분열 군주국의 초기 몇 년 동안, 메소포타미아 왕국들은 약했었고 분열되었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번영할 수 있었고, 영토 확장을 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영토의 확장은 솔로몬의 통치기간 동안 있었다. 왕국의 분열 이후 북쪽 왕국인 이스라엘은 두 배나 더 컸었고,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나 있는 무역로들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남쪽 왕국인 유다는 영토의 제약이 더욱 많았다. 주로 남부지역의 구릉지 지역과 가장 동쪽에 있는 평원에 대한 지배권만 있었다. 분열왕조 초창기 기간 동안 이집트는 영토 확장과 무역로들에 대한 지배권 획득을 꾀했다. 이런 확장 정책은 열왕기상 14장과 역대하 12장에도 반영되어 있다.

분열왕조 후반기에 앗시리아 제국(오늘날에는 흔히 신-앗시리아 제국)이라고 일컫는다)이 주변국 통합정책을 시작했으며, 다시금 그 지배력 확장을 추구했다.

# 신-앗시리아 제국

기원전 10세기 말에 아닷-나이러리(Adad-Nirari)의 통솔 하에, 앗시리아 제국은 합병하기 시작했다. 제국은 9세기 쌸매니저(Shamaneser) 2세의 통치 하에 그 위상을 굳건하게 지켰으며, 서서히 제국의 영토 확장을 꾀했다.

기원전 8세기 초엽에 확장정책이 정체됐지만 기원전 8세기 후반에 타이글라쓰-필러저(Tiglath-Pileser)의 통치 하에 반전됐다. 그는 강력한 서진 정책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갔으며, 팔레스타인을 관통해 이집트로 가는 무역로들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해 나갔다. 그의 영토확장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합병정책에 의해 저지됐다. 이사야 7장과 열왕기하 15장에 언급돼 있다.

하지만 시리아 정복은 가능했다. 기원전 722년 경에 타이글라쓰-필러저의 계승자인 쌸매니저 5세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하지만 그는 사마리아 포위공격이 완성되기 전에 전사했다. 사마리아 성은 722년 사르곤(Sargon) 2세에 의해 접수됐다. 열왕기하 16~17장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비록 쌸매니저의 계승자인 씨너체립(Sennacherib) 왕의 통치 하에 앗시리아인들이 또 다시 유다에 압제를 행했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행하심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열왕기하 19장).

신-앗시리아 제국은 쎄너체립 통치 이후에 점차적으로 약화됐다. 그리고 기원전 7세기 동안 이전보다 중요하지 않은 강국으로 남게 됐다. 이 기간 동안 바벨론은 스스로 기상하기 시작했고, 신-바벨론 제국이 모습을 갖춰갔다.

# 신-바벨론 제국

신바벨론 제국의 진정한 최초의 지도자는 나보폴라싸르(Nabopolassar)였다. 그는 기원전 626~605까지 다스렸다. 기원전 612년 수도 니느버(니느웨성)가 파괴당하고, 신바벨론 제국이 패배했던 때가 그의 통치 동안 있었던 일이다.

나보폴라싸르의 뒤를 이너 느브갓네살 2세가 기원전 605년 권좌에 오른다. 그런데 그는 거의 즉각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확고한 지배력 확립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유다 왕국(기원전 605~586)의 마지막 20년을 통틀어 느부갓네살 왕은 끊임없이 유다에 압력을 행사했다.

비록 유다 왕국의 왕들은 바벨론에 대항해 이집트와 교제하기를 추구했지만 이런 정치적 책략은 궁극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예루살렘과 성전은 기원전 586년에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기원전 562년 임종할 때까지 계속 통치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 무너졌을 시기인 기원전 562년과 539년 사이에 바벨론은 네 명의 꽤 유명한 통치자들이 연이어 다스리고 있었다.

 

 

# 페르시아 제국

페르시아 군대가 싸이러스(Cyrus)의 통솔 하에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을 멸망시켰다. 결국 신바벨론 제국은 페르시아 사람들에 이해 무너졌다. 그리고 그 다음 2세기 동안 유대인들이라 불리웠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단지 의존국에 불과한 신세로 지냈다.

싸이러스는 바벨론 유수를 당했었던 국가들이 그들의 조상이 살았던 고향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허용했으며, 이에 필요한 재건축을 위한 약간의 기금도 제공해 주는 정책을 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축되어지고, 기원전 516년에 재건축 작업이 완성됐다. 그 다음 세기에 에스라와 느헤미야 선지자가 사역할 시기에, 예루살렘 성벽들이 재건축 되어졌고, 모세의 율법에 밀착해 살기를 원했던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구별된 백성으로 그들 스스로 구별하는 삶을 살았다.

# 페르시아 제국에서부터 신약성서까지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330년 경에 알렉산더 대제가 페르시아 군대에 승리를 거둠으로써 종말을 고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32세의 나이, 기원전 323년에 예기치 않게 죽었다. 그의 서거 후, 페르시아 제국은 네 개의 안정된 왕국들로 분열됐다.

성경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세 왕국은 이집트의 프톨리메이익(Ptolemaic) 왕조, 메소포타미아의 쎌루씨드(Seleucid) 왕조, 그리고 지중해 동부 가장자리 지역이었다.

쎌루씨드 왕조 통치 하의 유대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알렉산더를 뒤 이은 왕국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지배하는 지역을 그리스화시키는 정책을 추구했다. 유대 지역에서 이런 정책은 기원전 160년대에 안티오커스 에피페인즈(Antiochus Epiphanes)의 통치 하에서 극도로 악화됐다.

유대인들을 그리스화 하고자하는 그의 잔인한 접근은 매커비어스 폭동(the Maccabean revolt)을 선동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쎌루씨드 왕조의 기간은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품페이 왕이 쎌루씨드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를 패배시킴으로써 종말을 고했다. 그 시점부터 신약성서 기간의 마지막 시기까지 옛 유대(팔레스타인 남부 지역)는 로마의 지배 하에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에게 미움받도록 그들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점이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파괴를 가져온 주요 원인이었다. 그 사건 이후 뒤 따라 주후 130년 경에 일어난 바르 코크바(Bar Kochba)의 로마 패배가 있었다. 그 패배가 우리들을 성경 시기의 끝으로 인도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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