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연구(10) *
정장복 박사, “말씀의 주인이 없는 설교사역은 이미 탈선을 시작한 것”
2014년 11월 25일 기사
“참된 설교사역은 부르시는 분의 말씀을 그대로 손상하지 않고, 아름답고 정확하게 운반하는 일이다. 그래서 설교자를 ‘성언운반’(聖言運搬)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회장:김상구 교수, 백석대)와 개혁주의생명신학실천신학회가 지난 11월 24일 오전 10시30분 과천소망교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복음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성언운반(聖言運搬) 일념으로서의 설교사역 이해’를 주제로 공개강연을 진행한 정장복 박사(한일장신대 명예교수)는 한국 교회 강단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올바른 설교사역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설교자의 양심이 의심스럽다
정장복 박사는 우선 한국 교회 설교사역에서 나타나는 설교자들의 양심이 의심스럽다고 진단했다. 그는 “설교자는 소명자로서 자신을 부르신 분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는지, 아니면 책망을 받고 있는지 섬세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며 “설교자가 하나님과 정확한 교감을 통해 얻은 메시지가 없다면 그는 홀로 설교의 무대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말만을 갖고 무대를 장식하면서 시간을 이어가는 슬픈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소명을 받은 설교자에게 양심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 설교자의 양심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최근 ‘설교를 작성해 주는 일’이 상혼과 연결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박사는 “돈만 내면 그 주일의 설교를 위해 수 편의 설교를 실어 보내는 일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선악과가 유혹할 때, 설교자가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설교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설교자가 아니라 남의 설교를 읽고 있은 대독자로 변신한다”며 “그때부터 회중들은 자신의 현장과는 무관한 말씀을 듣게 된다. 어느 상업인이 사무실에 앉아서 수많은 설교집을 펴놓고 짜맞춰 보낸 그 설교를 먹는 회중들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 상당수의 설교자들이 소명을 받은 자로서의 임무수행을 소홀이 여기고 있다”며 “설교자가 주어진 말씀의 뜻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애쓰는 눈물이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오히려 설교를 목회의 방편으로 삼아 선한 양들을 오도하는 현실 속에서 한국 교회 강단은 병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말씀의 주인의 바뀐 설교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설교를 할 때, 그 말씀의 주인인 하나님이 나타나야 하는데, 설교자들이 ‘나’를 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한국 강단에서는 지적인 수준이 낮은 설교자들에 의해 보여진 자기 개방의 정도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며 “자신의 과대선전은 비정직성과 접목돼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조그마한 느낌을 거대한 계시로 포장하여 회중들을 현혹하는 무서운 범죄행위가 교회에서 얼마나 잔인하게 난무했고, 지금도 혼돈을 일으키는 것을 끊임없이 목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교자들이 ‘나’를 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주장을 말한데 맛을 붙이면 그 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함정에 발을 내딛게 되면 말씀의 성실한 석의나 주해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의도를 말하는 것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고,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설교자는 스스로 교주의 길을 걷게 된다는 지적이다.
정 박사는 “한국 교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설교사역이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설교 현장에서 성령의 역사를 설교자가 막아서고, 자신의 최면적인 행위를 성령의 역사로 오도하는 설교자는 이미 ‘탈선’을 시작한 것과 같다. 이 탈선이 지속될 때 설교자는 교만과 방자함과 무례한 자태에 젖어들게 되고, 성령이 사용하시는 도구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운반해야 한다
그렇다면 설교자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정 박사는 ‘성언운반’(聲言運搬)으로서의 사역을 설교자가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참된 설교사역은 부르시는 분의 말씀을 그대로 손상하지 않고, 아름답고 정확하게 운반하는 일. 곧 성언운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 박사는 “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말씀의 운반자로서 설교자가 하나님 안에서 ‘성육신’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인간의 수고로 끝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진정한 성언의 운반자는 오직 주시는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실히 운반하려는 일념만을 갖고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강단에 올라야 한다는 것. 정 박사는 “기독교 설교역사를 시작했던 사도 바울이 ‘내가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라는 고백하면서 스스로를 메시지의 운반자로 한정했던 것을 오늘의 한국 교회 설교자들은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성언운반자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기 점검을 해야 할까? 정 박사는 성언운반자로서의 소명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확인 작업을 수시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오늘의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소명은 자신의 야망이나 탐욕, 이기적인 욕심에서 이룩될 수 없다는 전제를 두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진지한 마음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그 백성들을 말씀으로 먹이려는 열망 가운데서만 들려지는 질문과 대답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어 “성언운반자로서 설교자는 말씀을 전하는 시대를 잘 관찰하면서 자신이 말씀을 운반하는 방법과 형태에 민감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회중들이 처한 시대의 상황의 변화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떤 언어 형태에 의한 의사소통을 즐겨 찾는지 알아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성언운반 일념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주의를 당부했다. 자칫 하나님의 말씀만을 운반하려고 할 때, 오늘의 삶의 장을 외면할 수 있다는 점, 설교자가 당연히 갖춰야 할 지적인 추구를 외면하고, 오직 성경만을 읽고 명상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운반하는 자로서 자칫 인간 이상의 권위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점 등이다.
정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언운반자로서의 사명은 설교자로서의 위치를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확립하게 되면서 그 정체성에 따른 책임 있는 삶을 스스로 찾도록 해준다”며 “신실한 성언운반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석의와 함께 성언이 참되게 운반되는 순간 설교자는 감추어지고 말씀의 주인이신 성삼위 하나님이 나타나게 함으로써 설교자의 본분을 지키도록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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