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성 박사, “과잉의 활동보다 중단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당부
2015년 7월 1일 기사
“목회자가 가진 탈진의 문제는 자발적 착취와 억압의 요소를 함께 갖고 있다. 교회의 숫적 성장을 위한 근무시간의 불분명, 사회적 페르조나의 과도한 남용 등의 자발적인 착취가 있는가 하면, 교인의 기대에 대해 ‘아니오’ 혹은 어떤 거절을 하지 못함으로써 증상은 악화된다. 목회자의 우울과 탈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과잉의 활동을 멈추고 안식을 찾고 누려야 한다.”
고려신학대학원 하재성 교수는 목회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한편으로 과중한 자아부담의 결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회의 숫적 성장과 영적 부흥에 대한 부담을 최전방에서 홀로 담당하고 있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어깨에는 한결같이 보이는 사람들의 요구와 보이지 않는 자기 착취에 의해 소진과 우울증의 위험스런 짐들이 지워져 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목회자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방치할 때, 그 피로는 탈진을 일으키고, 또 하나의 폭력이 되어 목회자 개인과 공동체와 친밀감을 파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시대의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이나 소진 증후군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한병수 교수의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9,000원)는 목회자들이 처한 고통을 통찰력 있게 서술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해 준다며 “이것은 분명히 맹목적인 일중독과 소진의 위험에 처한 목회자들에게 주는 지성의 경고”라고 피력했다.
# 목회자들, “나는 피로하다, 고로 나는 우울하다”
아내는 남편에 의해, 목회자는 성도들에 의해, 그리고 부교역자나 그의 가족들은 담임목회자에 의해 소진되거나 우울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목회’라는 특수한 구조가 가진 힘의 원리 때문이다.
하 교수는 “전통적으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죽음을 각오하는 목회’를 하나의 이상적인 목회자상으로 받아들여 왔다”며 “교회의 사례나 처우에 대해서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여전히 덕스럽고 존경할만한 목회자의 덕목이다.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시간이나 자원이 얼마나 있건 상관없이,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우선 교회를 돌보는 것이 목회자의 바른 이상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목회자의 탈진이나 우울증은 때로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가 되었다는 것. 자타로부터 비롯된 걸러지지 않은 무언의 기대에 부응하지만 자신은 더 이상 기대나 요구를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탈진하는 목사들을 만든다.
여기에 근무시간의 불분명, 사회적 페르조나(‘가면’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써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외적인 인격체로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지고 싶은 것)의 과도한 사용,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는 탈진의 구조가 큰 몫을 담당한다.
하 교수는 “지시와 경쟁, 성도들의 기대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틈에서 부교역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담임목회자들보다 훨씬 취약한 생존 구조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목회자의 소진과 우울증은 하나님의 부르심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졌다”고 경고했다.
# 목회자의 피로와 자기 착취
하 교수는 우울증을 한 시대의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는 나름의 한계를 갖고 있지만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우울 내지 탈진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사역은 대부분 강요나 강제 대신 철저하게 자발적인 소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소진과 탈진이 주로 다른 사람을 돌보거나 경청할 때 일어나는 피로 혹은 좌절의 상태이고, 그에 따른 ‘적응 능력의 과대 사용’, ‘지각 능력의 상실’ 등과 관련이 있다면 긍정성의 과잉 내지 포와 상태와 직결된다.
하 교수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우울하게 하는 첫 번째 요인이 교회의 숫적 부흥에 관련된 것이고, 교인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부담과 스트레스를 가장 크게 받고 있다면 ‘할 수 있음’이라는 성과의 패러다임과 생산성 및 효율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목회자들의 내적 목표는 궁극적으로 목회자 자신들을 약탈하고 있는 셈”이라고 피력했다.
이러한 자기약탈의 대표적인 증상 혹은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목회자의 불확실한 업무시간이기도 하다. 소위 성과주체로서의 자신을 표방하는 목회자라면 자신 혹은 함께 사역하는 동료 목회자들의 과도한 책임이나 업무에 대해 더 이상 부정적으로 지각하지 않는다.
그는 “과도한 지방이 몸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게 하듯, 경계선 혹은 거절이 없는 과도한 사역은 자신들이나 교인들에 의해 긍정적인 것으로 인지될 뿐,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는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경계선이 없는 사역의 시간은 목회자들에게 면역학적으로, 타자 내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목회자들의 소진, ‘적’이 아니라고?
목회자들의 소진은 그들에게 더 이상 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외려 교회를 위한 ‘자신을 돌보지 않는 헌신’으로 추앙된다. 하 교수는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소진의 포화상태는 긍정으로 간주되고, 교회를 위한 목회자의 탈진은 덕과 이상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소진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람들로부터 칭찬되고 감사된다. 하지만 결국 목회자를 고갈시키게 된다.
무엇보다 업무시간의 불확실성은 고갈 그 이상의 것들을 내포한다. ‘죽음을 각오하는’ 순교자적 목회 정신은 역설적으로 교회 사역에서의 긍정성의 과잉, 즉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즉, 목회자는 성도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요청에 대해 ‘NO'라고 말하는 것은 목회자의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 교수는 “업무시간의 불확실성은 목회자의 가족들에 대한 희생도 요구한다”며 “자신과 가족, 그리고 교회의 사역 사이에 필요한 경계선을 설정하지 않을 때 우울증의 경험이나 공포가 발생한다. 목회자의 경계선 설정 실패는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자신의 가정을 우선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목회자가 가정을 위해 공공연하게 경계선을 설정한다면 특히 한국 교회의 환경에서는 이기적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가족을 희생하고서라도 일부러 경계선을 희미하게 헤쳐 버린다”며 “그 결과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신체적 증상, 정서적 증상, 그리고 영적 증상, 사역적 증상 등의 유형으로 스트레스와 탈진을 경험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하 교수는 흥미로운 한 가지 예외도 있다고 설명했다. 즉, 교회의 규모가 크고 숫적 성장이 진행 중인 교회의 목회자일수록 성도들의 요청에 대해 잘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교회들의 경우 여러 부교역자들로 인해 업무가 분산돼 있고, 사역자의 독립된 입지가 다소 보장되기 때문이다.
반면, 소규모 교회의 목회자들일수록 교회 성장에 대한 부담도 크고, 성도들의 요청이 상대적으로 중요해 그것을 거절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성과사회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당사자가 ‘아니오’라고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소진과 우울증의 처방: ‘중단하라’
하 교수는 목회자들이 소진과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에 따르면 중단은 곧 사색적인 삶을 가져온다. 중단은 어떤 활동과잉보다 더 활동적인 주체적인 행위다. 외부의 자극에 이끌려 다니기보다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정신적 탈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와 탈진에 대한 목회자들의 일차적 처방은 바로 ‘안식’이다. 하 교수는 “너무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목회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중독에 빠질 수 있다”며 “일중독은 단순한 질병이나 정신적 습관 그 이상의 신학적인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소진된 목회자들의 마음에는 자신의 쉼 없는 노력으로 교회가 그나마 제대로 운영된다고 하는 착각까지 일어난다. 이것은 곧 일과 자신에 대한 심각한 우상숭배와도 같은 것이라고 하 교수는 주장한다.
수고하지 않은 용서와 참으심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도 받지 않으며, 일을 섬기는 종교, 그리고 모든 일을 자신의 권능으로 해낸다고 하는 환상을 우상숭배적으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 교수에 따르면 ‘소진증후군’은 탈진한 자아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다 타서 꺼져버린 탈진의 영혼의 표현이다. 따라서 탈진해버린 영혼을 위해서는 안식과 쉼은 절대적이다.
그는 “목회자들은 소진증후군의 대처를 위해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역사의 통치자와 주인도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모든 직무를 행한 후, 그 결과를 마땅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한다”며 안식과 서사성의 회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안식과 서사성의 회복
피로가 쌓이게 되면 일단 교회를 떠나라는 것이다. 사업과 행사 중심의 열광주의적인 목회를 잠시 멈추고, 자신의 내면을 대면하고, 안식과 침묵 가운데 하나님과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목회자들이 가장 중요한 위로와 치유의 시간으로 여기는 하나님과의 1:1 시간은 자신을 스트레스와 탈진으로부터 보호하는 최선의 장치다.
하 교수는 “따라서 목회자는 우선 하나님과의 서사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가운데, 목회자들의 깊은 심층의 감정이 이야기가 되어 하나님 앞에 풀어져야 한다. 마치 사방이 막혔을 때 다윗이 하나님께 찾아가 자기 마음을 쏟아낸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목회적 삶의 서사성은 목회자의 친구 관계에까지 이어진다”며 “목회자들에게는 반드시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서로 경쟁자로 보이는 친구가 아닌 순수하게 자기 문제를 말할 수 있고, 이야기하며 나눌 수 있는 멘토로서의 친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삶의 이야기에 의한 서사성이 회복될 때, 목회자는 비로소 피로에 의한 내부적 폭력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것이다.
풀러신학교 심리학 교수인 Archibald Hart는 목회자들의 주일의 과도한 에너지 사용이 월요일 아침에는 ‘단기 우울증’에 빠뜨린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월요일에는 결코 교회나 개인을 위한 중대한 결정을 내0리0거나 만나기 불편한 교인을 만나 갈등을 이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차라리 목양실의 책상을 정리하거나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하는 등 단순하고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것이 또 다른 한 주간을 준비하는 좋은 휴식기간이다. 하지만 월요일에 쉬지는 말고, 목요일이나 금요일 중에서 자신이 기운이 회복된 시간에, 특히 가족을 위한 온전한 하루의 시간을 갖도록 하트 교수는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님의 교회를 위한 목회자의 헌신은 분명히 고귀한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소진을 ‘거룩한 희생’이라고 합리화하거나 그에 대해 면밀하게 경계하지 않는 것은 해로운 것에 대해 면역저항을 유발하지 않는 소진증후군의 목회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교회 사역에서 성도들의 비언어적 기대나 소원조차도 ‘알아서’ 맞춰주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들이 느끼는 부담”이라며 “하지만 적어도 목회자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부담이야말로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이며, 이로 인해 ‘심리적 경색’임을 인식하고, 탈진과 우울증을 초래하는 성과에 대한 압박의 문제를 반드시 심각하게 다루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목회자는 건강에서 오는 적신호와 영적 불안의 증상들을 신속히 인지하고, 하나님의 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스스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며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결핍과 상처를 결코 소홀하게 여기지 말고,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고통스런 자신을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단과 안식의 시간은 필수적이다”라고 피력했다.
한편, 위의 기사 내용은 한국복음주의상담학회 논문집인 ‘복음과 상담’(제23권, 1호/2015)에 실린 ‘목회자의 우울증과 탈진:’거룩한‘ 자기 착취의 성과’(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라는 연구논문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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