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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목회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어야 한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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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서울 퓨리턴 컨퍼런스-[강좌1] 청교도 신학지도 그리기와 한국교회

 

2014년 9월 24일 기사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큐리오스 인터내셔널, 워싱턴 트리니티연구원은 지난 9월 22일(2014년) 신반포중앙교회에서 ‘퓨리턴 신학과 한국 교회-퓨리턴과 에드워즈를 통해 본 한국 교회’를 주제로 2014 서울 퓨리턴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한국교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치유와 회복, 갱신과 개혁의 방향이자 영적 나침반으로서 퓨리턴의 신앙과 신학을 재조명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한 발제자들의 발표문을 일부 요약 정리했다. <편집자 주>

 

청교도 신학 지도 그리기와 한국 교회 / 서창원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예배 연출자’까지 생산하고 있는 오늘날의 예배. 설교보다 한 편의 드라마나 공연이 더 감동을 준다며 성도들의 눈과 귀를 끌만한 예배연출을 리허설까지 하며 실행하고 있는 오늘날의 예배모습을 청교도들이 본다면 기절초풍할 것이며, 사이비 집단으로 오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청교도 운동은 1558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즉위와 더불어 시작되어 1661년 찰스 2세의 종교통일령에 의해서 종식된 종교개혁운동이다.
 
이전까지 대륙에서나 잉글랜드 및 스코틀랜드에서 추구한 개혁운동은 거의가 왕권이나 세도가들로부터 평민에게 이르는 하향식이었다면 이제 청교도들은 개 교회의 목회를 통해서 일반 시민들로부터 시작해 당국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상향식 개혁을 시도하게 됐다.
 
청교도주의 역사는 순수하게 영적 성장과 교회 문제에 관한 교회개혁운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정치적 야망이나 권력투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건한 교회와 경건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순수한 신앙인들의 종교부흥운동 혹은 교회개혁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  청교도들의 신학적 특색
 
1. 칼빈주의 신학적 근거:성경
 
청교도들은 전반적으로 칼빈주의 신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청교도들 역시 교회개혁의 기준을 무엇보다도 성경에 두었다.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권이 어떠하든 그들은 이미 성의논쟁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성경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청교도들은 ‘성경제일주의자’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교회의 모든 제도나 가르침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영역에 있어서도 성경이 판단의 유일한 기준이었고 방향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명시돼 있는 그대로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목회가 무엇인지, 양무리를 어떻게 양육하고 돌봐야 하는지, 교회가 무엇인지 설교사역은 어떤 것인지, 바른 예배는 무엇인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교회의 영적 독립성은 어떤 것인지 그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을 성경에 근거해 바르게 제시하고자 한 목회의 모범생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청교도들의 성경제일주의라는 신학적 특성은 교회사역에 있어서 설교사역을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했고, 이것이 곧 탁월한 설교자들을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이 소유하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2. 설교사역의 중요성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목사의 직무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설교사역이었다. 목사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이 그것이다. 청교도들에게 설교라는 단지 청중들을 감동 감화시키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변화를 일으켜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속되게 하는 도구였다.
 
청교도들은 그 어떤 시대의 사역자들보다 설교사역을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직임으로 간주하고 실천한 자들이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주된 사역이었고 사도들의 주 임무였다.
 
오늘날 설교사역의 중요성이 많이 희석돼 가고 있다. 감성의 시대라고 해서 듣는 것보다 보여주기 위해 안달이 난 사람들처럼 강단에 스크린이 없는 교회가 없다시피 됐다. 듣고 생각하고 결단하게 하기보다는 보고 느낌이 좋으면 성공적인 예배인 것처럼 착각하며 기상천외한 발상까지 해서 소위 ‘예배 연출자’들까지 생산하고 있는 시대다.
 
한 편의 드라마나 공연이 더 감동을 준다고 하면서 실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교회의 모습을 청교도들이 본다면 기절초풍할 것이며, 사이비 집단으로 오해하고 남을 것이다.
 
설교사역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임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증거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참 설교자가 할 최우선적인 임무다. 존 오웬은 목사에게 필요한 자질을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첫째, 목사에게는 복음의 비밀과 관련한 영적 지혜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목회는 기술이 아니라 사명이요 은사다. 말씀에 무지하거나 전달할 은사가 없는 목사는 목회자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
 
둘째, 목사는 설교하는 진리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설교를 가장 잘 하는 목사는 먼저 설교자 자신의 영혼에게 설교하는 자이다. 설교자 자신이 먼저 맛보거나 그 속에 젖어들지 않는 설교는 그저 독이 될 뿐이다.
 
셋째, 목사는 말씀을 옳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끊임없는 말씀연구를 통해 청중들의 영혼을 위해 실제적이고도 근본적인 양식을 제공해 주는 실제적인 지혜를 요하는 일이다.

 

 

넷째, 양들의 영적인 상태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돌보는 자여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강한 열정과 사람들의 영혼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청교도들은 실천적 경건신학의 정수를 보여줬다. 리차드 백스터의 참 목자상은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도 여전히 심금에 메아리치게 하는 울림을 안겨다 준다. 청교도들의 삶 전체가 성경을 달성하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의 거룩한 복음의 선생들과 같이 살았다. 이러한 경건생활을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자기 점검이다.
 
리차드 백스터는 목사들이 받는 세 가지 유혹을 말했다. 첫째는 직책과 관련해 자만심과 사람들의 칭찬과 과시욕이다. 둘째는 설교준비와 관련해 연구의 나태함과 충분하지 못한 설교준비다. 셋째는 세속적인 흐름에 영합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리차드 백스터는 목사들의 자기 점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말했다. 첫째, 목사가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목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목사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유혹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목사에게 많은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목사의 죄는 다른 사람의 죄보다 파급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여섯째, 목사의 직무는 다른 일보다 더 큰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주님의 영광과 그 분의 거룩한 진리의 명예가 다른 누구보다도 목사에게 더 많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덟째, 회중들의 영혼과 사역의 성공이 자기 점검에 따라 많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상의 이유가 말하는 것은 성직자의 삶이 평신도의 복음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목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죄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허물과 실수 역시 드러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은 일종의 정기적인 규칙생활이 요구되는 것이다.
 
청교도들이 목사에게 요구하는 자질 중에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탁월한 경건생활을 하는 자여야 함을 그토록 많이 강조하고 실천한 이유는 목회사역의 효력이 여기에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윌리암 퍼킨즈는 목사의 말하는 일과 관련된 두 가지 임무를 말하면서 말씀선포와 기도사역을 지적했다. 즉,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사람들의 이름으로(개개인의 문제를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사는 설교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대변인이며, 기도에 관해서는 사람들의 대변인이기 때문에 청중들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탄원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3. 가정교육의 중요성
 
종교개혁운동으로서 청교도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어도 신앙부흥을 위한 청교도 운동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교육의 중심지를 교회로 여기지 않고 가정에 두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에게 교회가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이를 실천하도록 고무하는 청교도 신앙의 근원지라면 가정은 구체적인 신앙훈련의 학습장이었다. 특히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강화하는 그리스도의 학교였고, 사회생활을 배우고 훈련받는대로 살면서 열매를 거두게 하는 과수원과 같은 곳이었다.
 
가정예배 시간에 부모는 성경을 읽은 후에 목사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과 같이 자녀들에게 문답식 교육을 행했다. 매일 가정에서 신앙생활의 실천사항들은 즉흥기도와 시편찬송, 및 성경읽기가 포함됐다.
 
# 한국의 개혁파 교회를 위한 제언
 
한국의 개혁파 장로교회가 나아갈 길은 무엇보다도 먼저 옛적 길에서 선한 것으로 찾아 믿음의 선진들이 물려준 개혁신학과 신앙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성경의 무오성과 충분성을 굳게 신뢰하고 기록된 성경말씀 밖으로는 넘어가지 않는 교회여야 한다.
 
강단에서의 외침이 성경이 전부여야 하고, 성경이 전하는 오직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여야 한다. 예배신학이 교회성장의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교회 성장학의 폐단을 버리고 구속함을 받은 자들의 특권인 예배가 신앙고백적 교훈과 지침에 따라 실행되는 보편적 교회를 구현해야 한다.
 
청교도들이 굳게 붙든 설교사역, 경건생활, 가정예배를 통한 자녀들의 교육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구현되어야 할 실천사항들이다. 이와 같은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 개혁파 장로교회 지도자들은 정기적인 만남과 교류를 해야 한다. 또한 개혁파 교회 성도들의 연합과 친교도 필요하다. 성경에 충실한 보편적 교회 세우기에 앞장서는 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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