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장례예식 갱신의 방향성 / 안선희 교수(이화여대)
2014년 8월 18일 기사
한국교회 장례예식, 죽은 이와 이별하고 애도할 수 있는 장이 거의 없어
“기독교 장례예식은 수행자들에게 그들의 세계를 질서지우고, 해석하는 능력을 부여해야 할 임무를 지닌다. 그럼에도 실제의 기독교 장례예식은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을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 케리그마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애도의 장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의례수행자를 위한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기독교 장례의식은 의례수행자의 삶과 점점 유리되고 있다.”
안 교수는 한국 교회 장례예식이 지닌 문제점들은 크게 세 가지라고 분석했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애도의례의 부족’, 내용적 측면에서는 ‘케리그마와 의례의 갈등’, 실행적 측면에서는 ‘언어와 수행의 비인격화’라는 것.
# 애도의례의 부족
장례예식이 당면하고 있는 개인의 상황이란 죽음이 유발한 상실과 당혹감, 그리고 슬픔의 현실이다. 의례수행자가 여기에서부터 실존적 전이를 경험하는 예식이 곧 장례예식이다. 하지만 개신교의 경우 전통적으로 형성된 망자를 위한 기도조차 꺼리는 분위기로 인해 장례예식은 단지 죽은 자를 매장하는 기능적인 예식으로만 기능하고 있다는 것.
안 교수는 “기독교 장례예식은 살아남은 주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별하고 애도하는 예식이지만 실제로 한국기독교 장례예식에는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이와 이별하고 그를 애도할 수 있는 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한국기독교 장례예식은 대부분의 경우 교단별 예식서에 근거해 거행되고 있다. 하지만 교단별 예식서를 검토해도 애도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애도라는 표현조차 기록돼 있지 않다. 결국 한국기독교의 장례예식은 애도로부터 상당한 정도로 차단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진정으로 장례예식이 남은 자들에게 위로를 주고자한다면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당면한 상실의 고통에 끝까지 파고들 수 있도록 해주고, 그들의 상처가 어느 지점에서 최고로 깊었는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지적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애도는 상실로 인해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애도자가 주어진 현실을 인식하고 조정과 타협의 과정을 거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남은 자들이 섣부른 위로를 받기보다 애도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케리그마와 의례의 갈등
케리그마의 선포가 지배적이어서 장례예식의 참여자와 죽은 자의 관련성이 고려되지 못한 채 비인격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케리그마의 선포가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장례예식이 참여하는 개인들이 죽은 자와 관련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 결국 보편적이고 공식적이고 일반적인 언어로 구성되는 선포로 인해 기계적인 장례예식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구원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의례수행자의 신념과 생활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케리그마에 대한 상황적합적인 자해석이 시도되고 의례수행자의 욕구의 충족이 실현돼야 한다”며 “기계적 수행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황과 관계에 따라 적절한 본문과 언어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피력했다.
# 언어와 수행의 비인격화
집례자의 수행태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목회자가 기독교 예전을 집례할 때 그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목회적 민감성이다. 하지만 죽음의 상황은 다양하고 인간의 정서적 동요와 반응도 광범위하기에 집례자가 죽음의 상황과 그에 따른 정서적 동요 및 반응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
안 교수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례자가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수행태도를 보이는 것은 장례공동체와 유족들에게 진정성을 의심받기 쉽다”며 “집례자는 예식의 기획가 거행과정에서 해당 장례공동체의 신앙경륜과 관습을 인지하고 적절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장례예식의 변화
이와 관련 안 교수는 장례예식의 변화를 위해 우선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함으로써 애도의 장을 마련할 것, 케리그마의 선포를 재해석하고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장례예식을 인격화할 것, 의례가 진정성 있게 수행되어야 할 것 등을 제안했다.
안 교수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호명(呼名)의식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성찬의 거행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성찬은 먹고 마시는 행위를 통해 구원사건을 경험하는 성례전인데 먹고 마시는 행위는 오직 살아 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따라서 성찬은 삶과 죽음을 극명하게 구분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점에서 성찬은 호명의식과 더불어 죽음의 현실성을 명확히 선포할 수 있는 의례적 장치가 될 수 있다”며 “이외에 약력보고와 조사를 설교 이전에 배치하고, 그 내용과 형식을 재편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조문시 기록하는 방명록에 고인과의 관계 등을 밝히고 메시지를 남기는 일은 좋은 의례적 장치일 수 있다”고 피력했다.
* 한편, 위의 내용은 한국실천신학회 학술지 ‘신학과 실천’(제36호, 2013. 가을)에 실린 ‘한국기독교 장례예식 갱신의 방향성’(안선희 교수, 이화여대/예배학)이라는 연구논문(p135~158)을 정리한 것이다. 연구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들어가는 말
Ⅱ. 장례예식의 문제점
1. 장례예식이론의 흐름
2. 애도의례의 부족
3. 케리그마와 의례의 갈등
4. 언어와 수행의 비인격화
Ⅲ. 장례예식 갱신의 방향성
1. 애도의 장으로의 변화
2. 상황적 의례언어의 사용
3. 진정성의 구비
Ⅳ. 의례적 장치들
Ⅴ.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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