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의 신학과 윤리 / 한국기독교윤리학회, 본회퍼 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
2015년 4월 15일 기사
한국기독교윤리학회(회장:유경동 교수, 감신대)가 지난 4월 11일 ‘세월호 이후의 신학과 윤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디트리히 본회퍼 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한편,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한국 교회의 신학과 윤리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세월호 이후 한국 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10여 편의 연구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발표된 연구논문의 일부를 '본회퍼에게 듣는다' 시리즈로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주>
오늘의 위험은 근본적으로 탐욕을 공통분모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탐욕을 부추기고 확대, 재생산하는 사회구조의 변혁이 절실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의 위기와 자화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세월호 참사의 여러 이슈 중에서 지겹도록 들어온 ‘관피아’ 문제는 탐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절실히 보여준다. ‘관피아’가 시사용어로 자리 잡흔 현실(관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조직 마피아처럼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 그 자체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이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쌓인 관행과 부패 등의 폐단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널리 써였다. 세월호 이후 국민안전에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고, 사고발생과 수습 과정에서 공무원은 관피아로 지목돼 지탄을 받았다.
사실 본회퍼의 제자윤리에서 탐욕에 대한 고발은 재물의 문제를 넘어 지배와 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탐욕의 문제가 인류보편의 숙제라는 점에서 탐욕의 집요함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본회퍼의 문장들은 탐욕이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고, 사람됨의 근본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탐심을 품은 자는 세상의 재물을 탐한다. 탐욕을 품는 자는 지배와 권력을 원하지만 세상의 노예가 된다. 그의 마음은 세상에 붙잡히고 만다.”(‘나를 따르라’ 중에서)
물론 본회퍼의 관점이 오늘의 한국사회가 직면한 안전과 위험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진단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안전과 위험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상징적 위험의 문제를 직시하게 한다는 사실에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제자의 길은커녕 세상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그의 진단은 오늘날 교회에 깊은 자성을 촉구한다.
# 어떤 제자이어야 하는가?
‘탐욕의 길’의 대안은 ‘금욕의 길’일까? 사실 탐욕에 대한 성찰은 윤리학의 오랜 주제 중 하나이며 인류보편의 문제다.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으로 간주됐다가 번영의 동력이 되기까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탐욕의 통제 혹은 절제는 오랜 과제였으며, 완벽한 해법을 찾아내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다. 고대로부터 현대게 이르기까지 탐욕과 관련된 절제, 금욕에 대한 고민은 도덕철학의 주요관심사였다.
그렇다면 본회퍼의 윤리에서는 탐욕을 너어설 대안으로 금욕을 말하고 있을까? 흑은 금욕이란 탐욕을 넘어서야 하는 제자의 길을 규정하는 여러 요소들 중의 하나일까?
이에 대해 본회퍼는 “금욕은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다. 그것은 능동적 고난이지 수동적 고난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금욕은 상당히 위험하다. 금욕에는 고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불경스러운 소원이 숨어 있다. … 금욕은 대단히 완고하게 자신을 과시한다. … 남에게 보이기를 원한다. … 금욕은 남에게 보이기를 원함으로써 과시를 통해 이미 상을 받았다.”(‘나를 따르라’ 중에서)라고 말한다.
금욕을 통해 자기 의에 빠지기보다 제자됨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본회퍼의 제자윤리의에서 탐욕의 대안은 탐욕의 극복 내지는 금욕이 아니라 제자됨이다. 심지어 제자의 길은 금욕을 통해 탐욕을 기여내는 것보다 더 어렵고 좁은 길이다.
“제자의 길은 좁다, 이 길에 이미 들어선 자도 이 길을 지나치기 쉽고, 이 길을 혼동하기 쉬우며, 이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이 길은 찾기 힘들다. 이 길은 참으로 좁고 양쪽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다. 제자는 비범한 일을 하도록, 즉 좁은 길을 가도록 부름을 받았다.”(‘나를 따르라’ 중에서)
이렇게 보면 ‘탐욕의 길’은 ‘제자의 길’에 대조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만이라도 탐욕의 길에서 벗어나 제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인가? 하지만 ‘번영의 복음’이 교회 안에서까지 탐욕의 길을 부추고 있는 한국적 정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탐욕의 대안세력으로 제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오히려 제자의 길에 대한 통렬한 재인식이 절실해 보인다. 본회퍼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일한 길은 세상 속에서 사는 길이다.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다.
본회퍼의 질문,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의 우리에게 있어서 누구인가?”의 문제는 그의 삶과 신학의 주제다. 탐욕의 문제에 있어서도 다를 것 없다. ‘자기 의’에 입각한 금욕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제자도의 구현과 탐욕의 극복에 대해서도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재조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탐욕의 시대에 금욕을 넘어 그리스도의 제자됨,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교회교’로서의 기독교를 넘어 혹은 ‘번영의 복음’에 길들여지고 집착하는 오늘의 한국기독교가 재조명해야 할 제자윤리다.
# 어떻게 제자가 될 것인가?
본회퍼가 제자의 길을 엄중하게 제시했고, 순교함으로써 제자윤리를 실천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의가 크다. 탐욕의 길을 질주하는 현대사회에서 본회퍼가 말한 제자의 길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현대인 모두가 자성의 관점에서 깊이 관심가질 필요가 있다.
본회퍼는 악한 세상을 그리스도의 세상으로 바꾸기 위한 싸움에 나서 제자의 대리적 고난과 죄책의 수용을 통해 책임윤리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제에서 두 가지 실천과제를 제안할 수 있다.
첫째, 제자의 길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오늘의 기독교는 어떻게 제자의 길을 구현할 것인가가 문제다.
윌라드(Dallas Willard)는 현대의 교회가 제자도를 상실했다고 진단하면서, 그 원인을 진정한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잃어버린데 있다고 말한다. 본회퍼가 말한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상당부분 유사한 것일 듯 싶다.
윌라드에 따르면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는 손쉬운 기독교 혹은 값싼 은혜를 질타한 명저임에 틀림 없지만 이 책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 있다. 제자도를 값비싼 영적 잉여물, 특히 ‘수퍼 크리스천’의 전유물로 간주하는 그릇된 시각이 여전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교회마다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깊은 자성이 필요해 보인다. 누구의 제자를 육성하려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다. 목회자의 제자를 삼기 위한 것인지, 혹은 직분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곡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둘째, 제자의 길을 사회적 책임의 구현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탐욕의 길을 극복하고,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의 제자가 걸어야 할 길을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 실천의 방식은 히틀러 시대의 본회퍼와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
최근의 신학적 관심들을 동원해 말하자면 ‘공공신학’은 제자의 길을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통로가 될 것 같다. 본회퍼의 신학에 공적 책임에 대한 단서들은 충분해 보인다. ‘타자를 위한 존재’, ‘세상 속에있는 제자’ 등의 개념은 현대적 의미의 공공신학과 동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공공성 함양을 위한 관심과 노력은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과 실천의 관점에서 의의가 크다. 시민사회 속에서 교회가 공공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적극적인 실천을 보여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관피아’로 상징되는 공직자의 탐욕을 방지하고, 그들의 집단이기주의적 카르텔을 해체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긴요한 과제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공직문화 및 안전문화를 비롯한 사회의 문화적 변혁을 통해 공적 신뢰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공공성 구현의 관심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제자의 길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 듯 싶다.
제자의 길. 두말할 필요 없이 절실하다. 한국교회는 본회퍼가 구현한 '제자의 길'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실천적 관심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탐욕이 문제시되는 한국사회에서 금욕의 길을 넘어 제자의 길을 모색하는 자성적 성찰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탐욕의 길 VS 제자의 길:본회퍼 윤리의 한 응용 / 문시영(남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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