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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요한계시록은 왜 기록됐을까, 그리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by 데오스앤로고스 2023.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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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로마의 선전, 권력, 부의 마법을 깨뜨리고 그리스도인들을 자유롭게 하여 로마의 비전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그는 제국의 범죄 속에서 비판과 저항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국 숭배와 로마의 종교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증인이자 그들을 “향한” 증인이 되도록 가장 강력한 용어로 도전합니다."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회장:김현광 박사, 성서대 교수)가 지난 11월 4일(토) 삼일교회에서 개최한 '제7회 국제학술대회'에 주강사로 참여한 데이비드 A. 드실바 박사(David A. deSilva, Ashland Theological Seminary 교수)의 주장이다.

 

이날 드실바 박사는 <요한의 회중과 함께 계시록 읽기:분별력과 저항의 문화 발전 시키기>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요한계시록, 오해 없이 제대로 읽고 있는가?

 

적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어떤 세계 강국이

'큰 바빌론'으로 등장할까?

휴거된 이후, 인류에게

7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까?

 

드실바 박사는 "위의 질문은 요한계시록과 관련해서 자주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진정한 의미가 세상의 정치나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이러한 질문들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의 목회적 의도를 크게 왜곡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통해 오늘날 전 세계 하나님의 교회들을 계속 양육하기를 원하는 의도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요한계시록의 기록과 전파는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행위였다. 요한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부족했던 분별력을 제공한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는 일곱 도시 전체에 그 덩굴을 뻗치고 있는 체제의 이면을 폭로하고, 교인들이 그 체제의 죄에서 가능한 한 완전히 벗어나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순종, 메시아 증거, 그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가치와 삶을 충실하고 온전히 나타낼 것을 촉구한다"라고 피력했다.

 

이와 관련해 드실바 박사는 요한계시록을 읽는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설명했다.

 

 

요한계시록, 그리고 3가지 오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apokalypsis, “베일 벗기기”)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계 1:1, 3–5).

 

 

드실바 박사

드실바 박사는 "첫째,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우리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1세기 후반 로마의 소아시아 지방(터키 서쪽)에 살던 몸과 피를 나눈 일곱 그룹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으며, 요한은 주로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따라서 우리는 갈라디아서나 빌립보서 같은 다른 신약성경 서신과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을 먼저 특정 고대 기독교 청중의 관심사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메시지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또한 "둘째, '요한계시록이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는 오해를 하는 것이다"라며 "구약성경의 예언서 전체를 읽어보면 성경의 예언에는 예측 요소가 포함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현재적 행동을 선포하거나 하나님의 백성 또는 그들을 다스리는 세력의 현재적 행위와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선포하는 데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언은 본질적으로 백성이 처한 특정한 상황에 개입하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드실바 박사는  "실제로 신약 성경 뿐만 아니라 구약 선지자들의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분명한 '상황적'인 말씀이다. 예언서의 말씀은 구약성경의 역사서, 특히 열왕기상부터 느헤미야서까지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역사서의 기록을 통해서 선지자의 청중이 처한 상황과 선지자가 언급하는 필요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라면서 "요한계시록은 예언으로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절대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요한의 청중의 신앙적 응답을 불러일으키는데 목적이 있다"라고 피력했다.

 

드실바 박사는 "셋째,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는 '요한계시록이 수수께끼와 같은 암호로 쓰여졌다'는 것이다"라며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에 해석되어야 하는 신비한 텍스트로서 보내진 것이 아니라, 일차 독자들의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요한의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열기 위해 특별한 '열쇠'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은 그들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에 신실히 반응할 수 있게 하는 열쇠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요한은 당시 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교회가 직면한 진짜 도전을 파악하고, 이 큰 그림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그 도전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자 했다"라며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 기독교인들의 눈앞에 그들의 평범한 현실과 그것의 도전과 그에 따른 선택지들을 '참된' 빛과 올바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더 큰 시간과 공간의 차양을 펼쳐준다"라고 덧붙였다.

 

드실바 박사는 "우리는 일차 독자보다 훨씬 덜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 요한계시록의 일차 독자에게는 매우 친숙한 풍경의 특징이 우리에게는 상당히 멀고 낯선 세계의 요소이기 때문이다"라며 "우리가 1세기 에베소나 버가모에 살았다면 요한이 일곱 머리 괴물을 탄 짐승이나 음녀 숭배를 언급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사본이 조금이라도 지능이 있는 로마 관리의 손에 들어갔다면 그 이미지에 로마 체제를 전복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까?

특히 드실바 박사는 "목회 서신으로서 요한계시록은 1세기 후반 로마의 소아시아 지방에서 성장한 일곱 개의 특정 교회에 대한 관심사를 다루고 있다. 또한 예언의 말씀으로서 요한계시록은 그 교회들의 성격과 도전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언약에 대한 충성을 확인하고, 언약에 대한 불충성이 나타날 경우 이를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한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묵시록으로서 요한계시록은 청중 앞에 공간과 시간 측면에서 “더 큰 그림”을 그려줍니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인들이 목도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명하고 해석하여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직면한 실제 도전을 식별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더 큰 그림'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그 도전에 대응하도록 방향을 제시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요한은 자신의 편지를 그들이 이해하게 하고, 그들의 일상적인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형성하고, 그들의 상황에 대한 특별한 반응을 이끌어내도록 의도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라디아서나 빌립보서처럼 요한계시록을 특정 고대 청중의 관심사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메시지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드실바 박사는 "우리를 요한의 신앙공동체 상황에 집어 넣으면 그들이 들었던 것처럼 요한계시록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요한이 그들에게 어떻게 도전을 주려고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더 신실하게 응답하게 만들려고 했는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다"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을 우리 상황 속에서 훨씬 더 실제적으로 들을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읽으라고 조언했다.

 

1세기 후반 로마 소아시아 지방의
일곱 도시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그들은 요한이 요한계시록에 널리
펼쳐 있는 유대인 성경과 예수 전통에
비추어 어떤 현실을
해석하는 것으로 이해했을까요?
요한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에 비추어
그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도록
도전하고 있습니까?

 

 

드실바 박사는 "성령께서 이 일곱 교회들에게 말씀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성령께서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환경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의 교회를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길로 인도하는지를 파악하게 한다"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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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녀 바빌론과 그 운명
왜 로마와 음녀를 연결했을까?

드실바 박사는 요한계시록 17:1~19:4절은 요한의 회중이 음녀와 로마를 연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17:3–6)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17:7, 9, 18) 

 

 

 

드실바 박사는 "요한의 회중은 음녀와 로마를 즉시 연결했다. 음녀(그리고 짐승)의 권위에 대한 묘사는 로마 제국에 대한 대중의 담론과 정확히 일치한다"라며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궁정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드(Aeneid)에서 제우스와 2세기 기독교인인 미누키우스 펠릭스(Minucius Felix) 모두 로마의 힘과 권위가 온 세상을 장학하면서 '오르비스 테라룸'(orbis terrarum), 즉 '세계 전도' 등 로마의 지중해 통합 등 땅의 왕들과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은 철저히 로마에 귀속돼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요한이 언급한 이 큰 도시가 자리 잡은 일곱 언덕은 로마의 잘 알려지고 널리 알려진 특징과 일치한다. 매년 수도에서 열리는 축제는 로마가 일곱 번째 언덕을 도시 경계 안에 두기 위해 확장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다"라며 "물론 로마의 일곱 언덕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서기 73년경에 주조한 세스테르시우스(고대 로마 화폐) 뒷면처럼 문헌과 주화에서도 기념되었다. 이 동전은 요한이 언급한 지방에서 로마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보여준다. 로마의 제국 통치가 가져온 질서, 법치, 평화 및 안정은 의인화, 실제로는 신격화되어 여신 로마로 묘사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 도시에는 모두 로마 황제 숭배를 위한 신전이나 성지가 있었다. 페르가뭄은 기원전 19년에 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여신을 위한 신전을 완공하여 1세기 내내 황제 숭배의 신전 관리인으로서의 명예를 누렸고, 클라우디우스 통치 시대의 이 동전에는 뒷면에 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숭배 동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신전이 그려져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에베소에는 아우구스투스와 로마를 위한 지역 신전이 시민 광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위대한 음녀 바벨론의 모습을 묘사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파괴 행위, 심지어 신성 모독에 해당하는 충격적인 행위로, 로마의 성격과 알려진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표현에 도전하고 모든 기독교인이 로마의 지배 체제에 대한 지지나 협력 관계를 철회하도록 도전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드실바 박사는 오늘날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읽으라고 당부했다.

 

요한은 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시내의 신전에서 묘사된 로마의 모습이 아닌 이런 식으로 로마를 바라보길 원했을까요? 로마의 힘, 부유함, 그리고 그 덫에 걸려 “놀라움” –경악, 감동– 을 느끼지 않는 것이 요한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요한은 왜 로마 이야기가 로마의 대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영원한 지배가 아니라 심판과 멸망으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할까요?

 

 

 

로마제국을 향한 요한의 고발

드실바 박사는 "요한은 하나님이 로마의 지배 행태에 자신의 눈을 크게 뜨게 하고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행태들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전 계시, 특히 유대인 선지자들이 오래 전에 로마 제국이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반하여 이기적으로 행했던 것에 반대한 계시와 예수 전통에 비추어 검사하게 했다"라며 "요한은 로마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관련된 내용을 전달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부당한 지배 체제를 지지하거나 이에 참여하지 말라고 촉구했다"라고 설명했다

 

즉, 요한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로마를 기소했다는 것.

 

1. 폭력,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사용한 폭력, 특히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계 17:6, 18:20, 24), 제단 아래 순교자들의 외침에서 가장 극적으로 표현됨(계 6:9-11)

2. 경제적 착취, 다수의 희생으로 권력자의 사치를 충족시키는 시스템을 육성하고(계 17:4; 18:3, 7); 지방을 궁핍에 노출시키는 대가로 수도의 생계를 유지하며(계 6:7-8; 18: 11-13); 로마와 한 “침대에” 누워 제국의 의제와 이익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에게만 번영을 가져다 주고(계 18:9, 15, 17, 19, 24); 궁극적으로 세계 전역에서 제국의 심장부로 운반되는 화물의 일부인 노예들의 등에 업혀 건설되고 유지됨(18:11-13) 

3. 주제넘음, 로마를 여신으로 숭배하는 것과 “영원한 로마(Roma Aeterna)”라는 신화에서 보여 지듯 로마가 세계에 대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주장하는 우상 숭배적 주제넘음(18:7-8), 역사의 모든 교훈 앞에서 로마가 겸손하지 못한 것과 유일신, 그의 정의, 혹은 인간 사회를 위한 비전에 대한 책임감 없음.

 

 

드실바 박사는 "요한은 폭력을 통해 제국을 유지하면서도 로마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 특히 폭력을 통해 하나님의 증인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죄를 상기시켜 주고, 빈곤 세계에서 사치와 과시적 소비를 일삼는 로마를 야하게 차려입은 창녀의 화려함 등으로 묘사하며 로마의 경제에서 발견하는 과욕과 방종에 대해 비판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요한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책임감, 그분의 의로움, 그분의 인간 사회에 대한 비전, 역사의 모든 교훈 앞에서 겸손함이 없는 로마 제국의 오만과 책임감의 부재에 대해서도 경고한다"라며 "요한은 로마가 멸망하는 비전을 통해 이러한 허세를 폭로함으로써 모든 인간 지배 체제는 결국 제 길을 간다고 말하는 로마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드러낸다. 모든 제국은 그 전성기에 얼마나 큰 번영을 누렸는지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폐허가 될 것이며, 로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계 18:2)"라고 강조했다.

 

요한계시록의 기록 목적

드실바 박사는 "요한은 로마의 선전, 권력, 부의 마법을 깨뜨리고 그리스도인들을 자유롭게 하여 로마의 비전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썼다"라며 "그는 제국의 범죄 속에서 비판과 저항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국 숭배와 로마의 종교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증인이자 그들을 향한 증인이 되도록 가장 강력한 용어로 도전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한은 또한 더러운 부보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을 요청한다"라며 "특히 사회에 진출할 때
로마의 지배 관행과 로마의 선전 아래 범죄를 은폐하는 행위에 적대하는 증인이 되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 공동체와 그 구조에 불어넣으셨을 만한 가치인 치유와 회복을 증진시키는 가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의 열매를 누리게 하는 가치, 그리고 슬픔과 고통과 죽음을 지속시키는 폭력을 종식시키는 행위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증거 하는 증인이 되라고 요청한다"라고 피력했다.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드실바 박사는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선포, 예수의 가르침과 모범, 그리고 로마 제국의 상황에 대한 요한의 비판에 비추어 오늘날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조언했다.

 

1) 우리나라의 경제적 관행, 정치적 얽힘, 이데올로기는 어떠해 보입니까? 

2) 우리는 제자로서 그리고 교회로서 어떤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내면화 했습니까?  

3) 우리는 거룩과 정의, 전 세계 믿음의 가족에 대한 충성, 하나님 나라를 우선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에 반하는 다른 어떤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4) 우리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지배 체제에 협력하고 심지어 그것을 유지하도록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드실바 박사는 "요한은 우리 사회가 정상적이고 심지어 선하고 유익하며 축복의 표시라고 생각하게 만든 불경건하고 이기적인 틀과 습관 및 관행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나오라'고 부르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자이자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섬기는 교회로 다시 만들 수 있도록 어떻게 우리를 그 거미줄에서 '나오라'고 부르는지 분별하기 위해 성경과 함께 그의 글을 활용하도록 초청한다"라며 "이것들이 요한이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힘주어 묻는 질문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기준이 되는 성경, 우리 상황의 실제 행위, 그리고 그것이 이 체계 안팎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두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드실바 박사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의 모든 것을 지불하도록 요구하는 값없이 주는 선물:바울과 그의 세계 속에서의 은혜와 의무>에 대해서도 강의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의무와 관련하여 바울은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 제자들에게 메시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덕의 척도에 따라 살아갈 것을 도전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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