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는 구원의 은혜들이 동시에 주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신학적 논리순서로써 소명-중생-(믿음-회개)-칭의-성화-영화를 제시한다."
"바빙크는 신비적 연합 개념을 가지고 신비주의의 바른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했으며, 구원협약과 은혜언약을 신비적 연합으로 연결하면서 신비적 연합을 인간학적 차원을 넘어서게 했다. 또한 신비적 연합을 그리스도의 모방으로 연결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힘과 동력을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에서 찾았다."
"그리스도의 모방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의존성 안에 나타나는 창의와 자율성이 존재하는 뒤따름이다."
김선권 박사(장신대 교수)는 헤르만 바빙크의 '신비적 연합' 사상을 분석하면서 "바빙크는 개혁파 신학의 토대를 놓은 칼뱅의 신비적 연합 사상을 수용하지만 더욱 발전시켰다"라며 "칼뱅은 신비적 연합을 신자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원 사건에서 찾았지만 바빙크는 이를 넘어 영원성에 뿌리를 두고 그 관점에서 전체 신학을 관통시켰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언약신학자로서 바빙크는 구원협약과 은혜언약 모두를 강조하며 둘을 연결했다"라며 "내재적 삼위일체의 구원협약이 경륜적 삼위일체의 사역으로 나타남을 주장하는데, 후자는 은혜언약에 관한 것이다. 선택과 구원협약에 이미 존재했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의 유대를 신비적 연합과 교제로 묘사했다"라고 설명한다.
* 이 글은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가치 있는 소중한 연구 결과물을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김선권 박사의 <헤르만 바빙크의 신비적 연합>, 한국조직신학회, '한국조직신학논총', 제67집(2022.03).
신비적 연합, 신비주의 아니다
김선권 박사는 "신비적 연합과 신비주의는 하나님과의 합일(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그 속에 나타난 종교적 특징과 현상에서 차이가 있다"라며 "바빙크는 신비주의를 범신론의 결과물로 여겼다. 이점에서 신비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은 대부분 비판적이다"라고 설명한다.
신비주의와 신비적 연합에 대한 바빙크의 입장을 설명하는 김 박사는 "신비주의에 대한 바빙크의 또 다른 비판은 그것이 가진 영적 엘리트주의다"라며 "바빙크에 따르면 신적 은혜의 특별한 도움으로 일반신자가 행하는 것보다 더 높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에 도달하기 위해 여전히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신비주의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주로 수도사와 같은 특별한 영적 지위를 가진 일부 사람들만이 '그리스도를 뒤따름'을 취득할 수 있는 특권인 것처럼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바빙크에게서 신비적 연합은 신비주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신비주의는 궁극에서 자아가 사라지고 하나님에게 '나는 당신이다'라를 말하지만, 신비적 연합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존재론적 구별 가운데서 '나는 당신의 것이다'를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신비적 연합이란 무엇인가?
신자와 그리스도 인격 사이의 교제인 '신비적 연합'과 관련해서 바빙크는 칼뱅의 신비적 연합을 수용하면서 더욱 확장하고 심화시켰다고 주장하는 김 박사는 바빙크의 신비적 연합 사상에 대해 부정과 긍정의 방법으로 설명한다.
먼저 부정의 방법으로 신비적 연합이 아닌 것을 설명한다.
첫째, 신비적 연합은 그리스도의 육체 자체가 내려와 연합하는 직접적 연합이 아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신자의 혼합이나 동일시가 아니다.
셋째, 신적 실체가 흘러넘쳐서 연합된다는 실체적 연합이 아니다.
넷째,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이 갖는 본질적 일치는 아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연합과 같은 위격적 연합이 아니다.
여섯째, 합리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성향, 의지, 목적에 있어서 단순한 동의가 아니다.
또한 긍정의 방법으로 신비적 연합을 설명한다.
첫째, 영광스러워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즉, 부활 후에 영광을 받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둘째, 그리스도가 신자 안에,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성령에 의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적인 연합이다.
셋째,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를 포함한 연합이다.
넷째, 그리스도와 신자의 구별이 존재하는 인격적 연합이다.
김 박사는 "바빙크는 이신론(초월성의 오류)과 범신론(내재성의 오류) 사이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해한 것이다"라며 "존재론적 구별 안에서 존재론적 차원에서 연합이 일어나는데, 신자는 그리스도의 신성뿐만 아니라 인성, 말하자면 그리스도 전체와 성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합한다"라고 주장한다.
신비적 연합과 구원 순서
바빙크의 구원협약과 은혜언약의 관계 안에 있는 신비적 연합에 대한 관점을 분석한 김 박사는 신비적 연합과 관련한 바빙크의 구원순서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김 박사는 "바빙크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구원과 구원의 모든 유익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구원론에 선행한다"라며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 없이는 그리스도의 유익을 향유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신비적 연합을 갖기 전에는 구원 서정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바빙크의 입장이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바빙크는 믿음 안에 있는 칭의와 중생 후에 신비적 연합이 온다고 주장하는 루터파처럼 신비적 연합을 인간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것. 바빙크에 있어서 신비적 연합은 인간적인 모든 것에 앞선다는 것이다.
특히 "구원의 적용 순서도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사역이기에, 구원의 획득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라며 "따라서 바빙크에게서 구원의 순서란 은혜언약에 근거한 중보자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합에서 흘러나오는 유익들에 참여하는 순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는 구원의 모든 유익은 성령을 통해 나누어지고 적용된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그 자신과 그가 가진 모든 유익을 부여하면서 구원을 적용한다. 이런 이유에서 바빙크의 성령론은 기독론적 성령론이다. 즉, 성령은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직무를 가지며 그리스도의 사역과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객관적으로 이룬 속죄와 칭의를 신자에게 적용한다"라고 강조한다.
김 박사에 따르면 바빙크는 결국 구원의 은혜들이 동시에 주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신학적 논리 순서로써 소명-중생-믿음-회개-칭의-성화-영화를 제시한다.
첫째,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제하도록 부르는 소명이다. 이 소명은 외적 소명(말씀을 통한 소명)과 내적 소명(성령의 특별한 부르심과 증언)이 포함된다.
김 박사는 "부르심이 효과 있기 위해서는 성령의 특별한 부르심과 증언은 필수적이다"라며 "성령은 자신을 외적인 말씀에 묶어놓고, 영원성에 기초한 신비적 연합 안에 있던 자들, 다른 말로 하면 선택된 자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신다. 죄인들이 믿음을 갖기 훨씬 전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 사이에는 은혜언약과 신비적 연합이 존재했다"라고 설명한다.
둘째, 중생이다.
김 박사는 "바빙크에 의하면 소명과 중생은 끊을 수 없는 관계로 맺어져서 소명은 중생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성령이 외적인 말씀을 신자의 양심에 조명하면서 중생을 일으킨다. 신자는 수동적 신비적 연합을 통해 성령으로부터 거듭난다. 중생은 오직 하나님의 창조 행위로 성령의 특별한 초자연적 활동의 산물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중생은 때가 될 때, 믿음과 회심의 행위들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바빙크에게 효과적 소명과 중생은 순전한 하나님의 행위라면 중생 후에 따르는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행위가 된다"라고 강조한다.
셋째, 칭의다. 칭의 교리는 교회의 생사가 걸린 문제 곧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문제다.
김 박사는 "바빙크는 성경을 따라 칭의를 윤리적 행위가 아닌, 하나님이 오직 중보자의 인격과 사역에 근거하여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는 법정적이며 사법적 행위로 이해한다"라며 "믿음을 통한 칭의는 죄인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고 죄인의 죄를 덮는다.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바빙크에게 칭의는 의의 전가이다"라고 설명한다.
넷째, 성화다. 바빙크에 따르면 성화는 아버지 뜻에 대한 예수의 완전한 순종에서 나타난다. 즉, 예수 자신(삶)이 성화였다.
김 박사는 "칭의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관계가 회복이 되고, 성화 가운데 회복된 관계 안에 있는 자의 본성이 갱신되고 죄의 더러움에서 해방된다"라며 칭의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고,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 자신이 자신의 영을 통해 우리 안에 내주하며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새롭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바빙크는 다른 구원의 순서와 마찬가지로 성화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근거시킨다"라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교제함 없이는 성화에서도 그리스도의 유익에 참여할 수 없다"라고 피력한다.
교의학과 윤리학
예수를 따른다 = 그리스도 모방
바빙크는 그의 <개혁파 윤리학>에서 교의학과 윤리학의 차이에 대해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내려오는 반면에, 윤리학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올라간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것인 반면에, 윤리학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개혁교의학1>에서는 "교의학은 사람을 위해, 사람에게, 사람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들을 기술하는 것이며, 윤리학은 새롭게 된 사람이 이제 그 하나님의 행위를 근거로, 그 능력 안에서 행하는 행위들을 기술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 박사는 "바빙크에 따르면 윤리는 그 사람의 믿음과 존재를 규정한다. 윤리학의 출발점 또한 교의학과 마찬가지로 성경이다. 성경은 신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윤리적 지식을 제공한다"라며 "하지만 기독교의 윤리에 있어 규범이나 외적원리로써 성경이 필수적이지만, 내적차원인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는 보다 근원적이다. 윤리학의 핵심이 영적인 삶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김 박사는 바빙크는 윤리를 그리스도의 모방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봤다고 분석한다.
김 박사는 "그리스도의 모방은 바빙크 평생의 주된 관심사였다"라며 "그리스도는 신자가 따라야 할 본이요 이상이었다. 바빙크는 신자의 그리스도 모방을 신자 자체의 능력과 힘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신자와 그리스도의 신비적 연합이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힘이었다"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모방은 어떻게 나타날까?
첫째, 그리스도의 모방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나온다.
둘째,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한다.
셋째,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를 따라 형성하게 한다.
김 박사는 "결국 그리스도의 모방은 그리스도를 도덕적 삶의 본으로 두고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 형성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바빙크는 그리스도가 살아온 방식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형태에 대해서는 비판했다"라며 "그리스도의 모방은 예수의 삶의 방식, 가난, 순결, 순종, 죽음 등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있지 않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복제하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모방에 있어서 다양성과 자율성과 창의성을 인정한다"라며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삶 그 자체를 그대로 따르는 것을 모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이 우리의 가르침에 유용함으로 마음에 새겨야 하지만 모든 말씀과 행동이 그 자체로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한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바빙크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신분을 받고 그 새로운 신분에 따라 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다"라고 설명한다.
[연구논문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의 신학적 배경
1. 신비주의에 대한 비판
2. 칼뱅의 신비적 연합 수용
3. 신비적 연합은 무엇인가?- 부정과 긍정의 방법으로의 접근
III. 구원협약(pactum salutis)과 은혜언약(foedus gratiae)의 관계 안에 있는 신비적 연합
IV. 신비적 연합과 구원순서(ordo salutis)
V. 신비적 연합과 그리스도의 모방(imitatio Christi)
VI. 나가는 말
RISS 검색 - 김선권 박사의 국내학술지논문 상세보기
<ⓒ데오스앤로고스 / 무단 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 > 교리와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운동, "이제는 갱신되고 변화해야 한다" (0) | 2022.10.18 |
---|---|
조엘 비키 박사, "구원의 확신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0) | 2022.08.23 |
마틴 로이드 존스 구원론의 세 가지 원리 (0) | 2022.05.08 |
팬데믹 시대의 기독교 생사학,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0) | 2022.02.11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복음주의 기독교의 과제는 무엇인가? (0) | 2021.1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