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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구약과 신약시대의 십일조, 성경은 '십일조'를 어떻게 바라볼까?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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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하면서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것이 있다면 헌금이다. 그중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단연 '십일조'.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욕하고, 비판하기 딱 좋은 단골 메뉴가 십일조다.

 

물론 십일조는 교회 안에서도 가타부타 말이 많다. 하지만 십일조는 구약의 창세기로부터 시작해 신약 초대교회,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앙생활의 규범으로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한국교회 성도는 '봉'인가?

 

십일조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총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금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 교회의 경우 십일조를 신앙원리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경우, 신앙원리보다는 '성경적 기준' 혹은 '성경적 규범'을 내세워며 유독 강조하다. 세금을 내기 전 '전체 소득의 십일조', 세금을 제외한 '실제 수입의 십일조', 물질도 내야 한다는 '소산의 십일조', 용돈이나 생활비 등 '생활의 십일조', 심지어 '대출금의 십일조'까지 주장하면서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조차 십일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십일조는 율법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많다. 그렇다면 십일조는 성경에 언급되는 만큼 반드시 해야 하는 헌금일까? 아니면 성경적 근거에 따른 '신앙적 행위'로 인식하면서 자발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헌금일까?

 

'십일조' 논쟁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십일조 문제를 고찰했던 논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연구자의 연구논문은 '십일조'의 성경적 근거보다 성경적 사건 중심으로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지만 '십일조' 자체도 크게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 

 

 

* 이 글은 목회현장에 직접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소중한 연구 결과물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썼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김근수 박사의 <십일조의 성경적 이해>, 칼빈대학교, '칼빈논단', 제31권(2011년).

 

십일조의 의미

 

김근수 박사에 따르면 '십일조'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에서 히브리어 '마아셀'이란 어휘에서 기원되었다. 이를 신약 헬라어에서는 '데카테에'라고 번역하였고, 영어에서는 '타이쓰'라고 번역하였다. 주로 이 십일조 연보는 성직자들의 생활비와 교회 유지비에 충당되었다.


김 박사는 "구약시대에는 의무적으로 십일조를 하게 함으로써 일종의 종교세와도 같았다. 마치 영국이나 일부 구라파에서는 '교구세' 또는 '종교세'로 수입의 십 분의 일을 징수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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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김근수 박사의 글에 담긴 주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구약시대의 십일조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1. 성경에서 십일조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연합한 왕들을 격파하고 돌아올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기록이다(창세기 14:17-20)

 

2. 살렘 왕 멜기세덱은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멜기세덱의 제사장 계열이 아론의 계열보다탁월하다고 밝힌다(히 7:4-10). 그러므로 그는 구약시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된다. 여기서 십일조는 인간 제사장에게 바친 것으로 되나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밝혀진다.

 

구약시대의 십일조
(야곱)

 

 

3.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 형, 에서를 피하여 화란으로 도피할 때에 광야에서 하나님이 다시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4)고 축복하시자 야곱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으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고 서원한 것이다(창 28:20-22). 이같이 족장시대의 십일조는 의무가 아니라 축복과 은혜에 감사하는, 자원하는 차원의 시행이었다.

 

 

구약시대의 십일조
(모세)

 

4. 하나님께서는 땅과 곡식과 과실과 우양 등의 십분의 일을 '여호와의 성물'로 성별하고 의무적으로 헌물 하도록 계명으로 규정하였다(레 27:30-33). 이스라엘 백성은 이와 같은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바쳐야 하고 또한 레위인은 십일조의 십 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바치도록 규정하였다.

 

5. 가나안 입국 이후 레위인에게는 육신의 기업을 분배해 주지 않고 종교적인 회막의 일만 하도록 요구하였다. 따라서 십일조가 그들의 생활비가 되었다(민 18:24). 제사장 역시 레위인이 바치는 '십일조의 십일조'로 생활하도록 규정하였다.

 

6. 이 밖에도 매 3년마다 구제를 포함한 종교적 목적으로 십일조를 시행하도록 요구하였다(신 14:28-29).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은 물론 특히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십일조로 구제하는 것은 십일조의 사용 규범을 확실하게 해 주었다. 물론 그 우선순위는 구제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구약시대의 십일조
(왕정시대)

 

7. 사사시대 말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앙집권적인 왕정을 당시의 종교와 정치의 지도자였던 사무엘에게 요구하였다. 이때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그가(왕) 또 너희 곡식과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너희 양떼의 십 분의 일을 취하리니"(삼상 8:10-18)라고 순수한 종교적 목적이 아닌 또 하나의 십일조가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8. 특히 이스라엘이 왕정시대로 들어가면서 왕들의 통치하에서 십일조는 더욱 강조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십일조의 정신은 시들어지면서 형식화되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9. 그러나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고 다윗을 책망했던 사실은, 내용보다 형식에 흘렀던 그 시대정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십일조가 감사가 원인이 되어 자원하는 형태로 시행되지 않으면 십일조의 근본정신이 타락하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10. 십일조가 제도화되면서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기에"(대하 31:5)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의 전 안에 방(창고을 예비하게 하고 십일조 헌물을 보관하게 하였다(대하 31:5-6).

 

구약시대의 십일조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

 

11.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십일조의 시행이 잘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 정경 선지자였던 말라기 선지자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8-9)라고 책망하였다. 이것은 진정 엄중한 경고이다.

 

12. 더욱이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고 신앙적 원리와 규범으로 되돌아가도록 요청하고 있다.

 

김근수 박사는 "구약시대의 십일조 제도는 당시에 나타난 일시적인 관습이 아니라 영속적인 성경적 원리로 구약시대 전체에서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신약시대의 십일조
(바리새인들의 십일조)

 

13. 복음서에서 십일조가 처음 언급된 것은 바리새인의 십일조 관습이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십일조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일조의 근본정신이 약화되었음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셨다. 그들은 '소득의 십일조'는 물론이고, 심지어 채전에 조금씩 심는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까지 바쳤다고 했다.

 

14. 그러나 그들은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눅 11:42)라고 책망받았다. 바로 이 점이, 율법적 형식주의
에 매여서 십일조의 형식은 취하되 그 근본적인 내용인 '공의와 사랑'의 정신은 망각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15. 더욱이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눅 11:42)고 말씀하심으로써 형식의 십일조와 내용의 십일조를 다 같이 공존시켜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

 

신약시대의 십일조 개념

 

16. 로마서 10장 4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하였다. 여기에 채용된 '율법의 마침'이란 말은 헬라어로 '텔로스 노무우'인데, '마침'에 해당하는 '텔 로스'는 삼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다. 그 의미는 '마침(termination), '목표'(aim),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의미로서 '성취'(fulfillment)란 뜻이다. 

 

17. 율법의 마침'이란 말과 관련해서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율법의 마침으로 5대 제사가 마침이 되었듯이 십일조도 마침이 되었다며 모든 율법은 모두 폐기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지금도 많은 율법들이 준행되고 있고, 예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하신 말씀을 보면, 율법이 폐기된 것은 아닌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8 '율법의 마침'이란 번역보다 '율법의 성취'라는 표현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구약의 5대 제사에 있는 성경들이 폐지되고 그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있고 유효한 것임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19.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 동물의 피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대속의 어린 양으로 단번에 완전하게 피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의 한 성취(fulfillment of the Law)일 뿐이다. 율법의 최종적인 완성(consummation of the Law)은 과거에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장차 주의 재림과 더불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 십일조를 규정한 율법이 죽었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김 박사는 "그렇다고 해서 왕정시대 이후에 나타난 십일조 시행의 형식주의, 초대교회의 바리새인들과 같은 의식주의나 외식주의 타성에 젖어서도 안된다"라고 당부한다. 

 

 

신약은 끊임없이
헌금(연보)을 가르친다

 

김 박사는 "신약성경에서는 끊임없이 연보에 대하여 가르친다. '억지로 하지 말고 즐거움으로 하라'고 했다(고후 9:5-7). 또한 후한 연보를 하되 '이를 얻은 대로' 하라고 했다(고후 9:13).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다(고전 10:31)"고 설명한다.

 

그는 "이와 같은 가르침에 따라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는 유무상통의 헌신생활을 한 적도 있다. 바나바뿐만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밭과 집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충당하였다(행 4:34-36)"고 강조한다.

 

김 박사는 "이런 면에서 볼 때, 형식주의적 십일조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 그리고 '정의, 긍휼, 믿음'(마 23:23)의 원리에서 재물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청지기 정신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며 "십 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남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필요에 따라서 십의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물질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 해당될 것이다"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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