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 샬롬나비 상임대표)
2015년 4월 20일 기사
성매매특별법 존속에 대한 신학적 견해(하)
IV. 성의 문란은 사회적 몰락의 징조: 역사적 예
성매매를 찬성하는 이들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직업을 무슨 수로 막느냐며 고개를 젓는다. 성매매를 화장실에 비유하기도 한다. 화장실이 더럽다고 없애지 못하듯 성매매도 그렇다고 한다.
탈세도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예수에게 구원받은 삭개오의 직업이 세리장(稅吏長)이다. 그런데 어떤 법으로도 탈세를 막을 수 없으니 탈세를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역사 이래 도둑질이 법의 금지로도 막을 수 없으니 도둑질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상에서 그 시대의 몰락은 성의 문란과 더불어 왔음을 성경은 보여준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늘로부터 유황불의 심판이 있기 전에 성적인 방종이 극에 달했으며, 노아시대에 대홍수가 일어나 당시의 인류가 멸망되기 전에도 성적 문란이 극에 도달했다. 희랍말기에 로마의 말기에도 동성애와 성적 문란이 극에 도달하였다. 오늘날 현대 인류문명도 동성애에서 감염되는 에이즈(AIDS)를 비롯하여 각종 재앙이 성적 문란과 더불어 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지난 2월 27일 국가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더 이상 죄로 인정하지 아니한 위헌판결은 우리 사회에 성적 문란을 부추기는 신호탄으로 보아진다. 헌재는 개인의 성적 자유권을 근거로 내세웠는데 이는 인본주의적 세속주의 인간이해에 근거한 잘못된 결정이다. 이것은 헌법 재판관의 생각과 사상이 오늘날 21세기를 지배하는 세속주의에 의하여 철저히 세뇌되어 성적 문란을 더 이상 사회적 범죄로 인정하지 않게 되는 “미끄러운 언덕길 논증”의 시작이다. 간통이 법의 금지로도 막을 수 없으니 간통에 대한 법의 처벌을 폐지하자고 결정한 헌법재판소 법관들에게 앞으로 다가오는 역사가 준엄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V. 성(性)의 신성(神聖)함
성경에 의하면 성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다. 성을 통하여 남녀는 사랑을 나누고 행복의 절정을 체험하고 가정을 이루며, 자손을 열매로 갖게 된다. 이것은 창세기에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근거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둘은 결혼으로 한 몸이 되고 가정을 이룬다.
그런데 간통이란 한 몸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으로 하나님과 배우자와 자녀들에 대한 하나된 공동체(영과 몸의 공동체) 언약을 깨뜨는 것이다. 성매매, 매춘 역시 배우자를 속이는 것이며 혼인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다. 간통이나 성매매하는 자는 한 몸의 약속을 깨뜨리는 것으로서 인격의 분열을 경험하는 것이다. 간통에는 금전이 반드시 개입되지 않으나 성매매에는 성이 상품화됨으로써 신성한 가치인 성을 물량화(物量化)함으로써 더욱 죄의 심각성은 더 하다고 볼 수 있다.
창세기 언약에 근거하면서 잠언은 성(性)의 바른 사용을 자기 집 우물에서 물을 마시라는 비유를 통해서 교훈하고 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잠 5:15-20).
본문에서 샘물과 도랑물을 혼외관계에서 써버리지 말아야 할 남자의 정자(精子)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자들도 있으나 “샘물”이나 “도랑물”은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함께 나누는 성(性)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성의 향유에 있어서 아내나 남편이나 서로에게 성실해야하며 서로간에 소홀하여 샘물(성)을 다른 남자나 여자에게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본문은 성의 배타성(排他性, exclusiveness)을 교훈하고 있다. 성이 신성하고 내밀한 특성을 지니는 것은 성이란 인간 종족과 가정을 이루는 신성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이란 부부관계에서만 나눌 수 있으며, 근친이나 친구나 이웃이나 타자와 나눌 수 없는 것은 성이 지닌 남녀(부부)간의 정신적 신체적 하나됨을 깨트리기 때문이다. 성이 지닌 내밀성(內密性)은 부부간에만 나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배우자 아닌 타자와 나누는 것은 자신의 몸의 정체성을 깨트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VI. 성윤리는 생명윤리와 직결
성은 인간존재의 기원과도 관련되는 신비한 영역이다. 성은 인간의 생명 탄생과 직결된다. 생명이 상품화될 수 없는 것처럼 성은 상품화 될 수 없다. 성의 오용은 후손의 생명을 오용(誤用)하는 것과 같다. 무차별하게 뿌려진 성의 오용으로 태어난 생명 그 자체는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인데 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면서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인격이 훼손된다. 이러한 결과는 한 개인과 그 가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며 사회가 병드는 일이다. 이러한 성의 오용 결과는 항상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다가오며, 그 자신과 후손의 인격에 일생동안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과 달리 성은 생명과 같이 취급되어야하고 성은 생명처럼 다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향락주의적 사회에서는 성이 단순히 쾌락의 도구로 취급되고 있다. 성 사용의 결과에 대하여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성을 마치 하나의 일회용 물건처럼 취급될 때 사용하는 자의 존엄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점차 비인간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생을 오용하는 남녀 모두가 인간 존엄성과 가정의 존엄성과 자신 인격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고귀한 인격)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생명은 몸을 통하여 존재한다. 그러나 나의 생명이 단지 하나의 물체일 수 없는 것은 그 속에 나의 변함없는 인격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 성에는 그의 정체성인 인격이 항상 동반되어 있다. 성의 오용은 인격의 오용이요,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생명은 자기 정체성인 인격과 결부되어있다. 이러한 자기 인격이 들어 있는 성의 사용은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에 성의 사용은 생명을 다루는 윤리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성윤리와 생명윤리는 직결된다.
VII. 성(性)의 인권 차원
사람에게는 동물들과 다르게, 인권과 인격과 인성이 있다. 지난 달 열네 살 여자아이가 가출했다 돈이 궁하자 성매매 늪에 빠졌다. 서울, 구미, 포항으로 끌려다닌 아이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 도망갈 수 없다"며 도와달라 했지만 탈출하지 못했다. 여자 아이는 살해되었다. 피의자는 "아이가 무성의해서" 죽였다고 했다. 20년 동안 성매매 여성 상담과 치유에 힘써 온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멀리사 팰리는 "빈곤과 차별, 성폭력과 인신매매는 한 고리 안에 묶여 있다"고 했다. 성매매는 물론 장기·혈액·난자 매매가 불법인 것은 인간 존엄을 해치기 때문이다.
독일의 도덕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인간은 타인의 이익을 위한 성적(性的) 만족 대상으로 자기 몸을 쓸 권한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내 몸이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존재는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양심이 명하는 정언명법(categorical imperative)에 의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적 결합이란 단지 몸의 결합만이 아니라 정신의 결합을 말하기 때문에 결혼 밖의 성적 결합이란 자기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성을 팔고 사는 자는 자기 몸을 팔고 사는 것일 뿐 아니라 자기 영혼을 파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마치 파우스트가 세상의 열락과 쾌락을 얻는 대신 악마 메스토페렐스에게 자기 영혼을 내어 주는 것과 같다.
VIII. 성은 상품화될 수 없음
성이란 가정을 이루며 부부가 한 몸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남자나 여자가 그것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둘이 이룬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되며 이것은 그의 인간됨의 정체성과 인격성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멀리사 팰리는 미국, 콜롬비아, 독일, 터키 등 9개국 성매매 여성 900명을 만나 성매매에 대한 정신심리학 분석을 처음 냈다. 그녀의 분석연구에서 다음같이 피룍하였다. "성매매 여성은 전쟁·강간·고문·가정폭력 피해자에게서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그대로 겪는다." "하루 5~15명씩 낯선 남자를 상대하느라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자기 학대에 익숙해진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다음같이 음행을 자기 몸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 15-18). 성매매 내지 음행(淫行)이란 하나님의 성전인 인간의 몸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자기 몸을 비인격화하고 물체화, 즉 쾌락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존엄과 관련된 것은 상품화될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다. 사랑, 의리, 정직, 헌신, 희생, ,순결, 행복 등 가치나, 부모와 형제, 부부, 자식의 관계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성이란 이러한 인간의 신비와 기원과 관련된 영역이다. 이를 상품화한다는 것은 인간 정체성에 대한 파산선고다. 파산된 성관계에서 나온 자녀들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라. 이는 일생동안 자녀들의 불행과 관련된다.
성을 상품화하여 영리 목적에 이용한다는 것은 인간다움의 측면에서와 사회 통념상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성을 매매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정과 상업주의를 충족키 위해, 인간 고유의 품성과 도덕과 윤리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상업주의란 거대한 인류문명사의 흐름으로 모든 것이 물질화되며, 그 속에서 인간과 성도 수량화되며 물건화되고 있는 가운데 하나의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존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가정의 행복에는 돈이 필요하긴 하나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 더욱이 기독교 신자는 자기의 몸을 거룩하게 보전해야 한다.
신자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증언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인간의 존엄 가운데 필수불가결한 성(性)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IX. 매춘(賣春)행위에 대한 사회적 단속망: 강한 처벌이 요청됨.
매춘행위란 가정의 질서를 깨뜨리며, 한 개인의 인격적 통합성을 분열시키는 자기 인격과 정체성의 파괴행위다. 이런 행위에 대하여 국가는 강력한 단속이라는 울타리를 통하여 인간 본능의 순간적인 일탈을 막아야주어야 한다. 매춘 행위에 대하여 보다 강력한 법적 제제가 가해져야 한다. 우리 한국의 경찰 입장에서 볼 때 성매수(性買收)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너무 약하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내도 기소율은 낮고, 상당수 기소유예나 벌금 정도만 받는다.
초범은 대부분 재범 방지 교육(존스쿨 교육)을 받으면 기소 유예다. 그러니 성매매가 나쁘다는 인식 자체가 희미해진다. 단속에 적발돼도 대부분은 ‘재수 없이 걸렸다’는 식이다. 성매매 업소들도 ‘다 하는데 왜 우리만 잡느냐’고 한다. 성매매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보다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벌이 강해야 범죄 억제 효과도 강해진다. 이러한 사회적 법적 도덕적 울타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가 이러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도적으로 제공해 줄 때 국가라는 제도를 만드신 창조자의 목적에 기여하게 된다.
IX. 매춘여성에 대한 사회적 약자 재활(再活) 대책: 직업교육과 인성교육
극단의 환경을 호소하는 매춘 여성들의 처지, 즉 살기 위해서는 성매매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은, 그 호소에 동정해야 하는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 예외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속자들에 의하면 모든 성매매 여성들이 하나같이 “먹고 살려고 나왔다”고 한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보호는 필요하다. 현행법상 성매매는 엄연히 범죄의 영역이고, 성매수자를 단속하면서 성매매 여성을 단속하지 않을 수도 없다.
국가는 이들 생활고 때문에 매춘을 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위하여 철저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이들 여성에 대한 국가의 철저한 재활교육과 생활대책이 필요시된다. 국민의 값진 세금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들을 위하여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국가와 교회는 이들 중 심리 치료가 필요한 자들에게는 심리상담과 치료를 해주고 생계형일 경우에는 이들에게 직업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이들에게 성의 신성함과 내실성을 가르치는 등 인성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며, 안일한 직업이 아니라 직업과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쳐야 한다.
바른 직업과 노동에 도둑질이나 성매매나 사기나 폭력이 들어갈 수 없다. 이는 사회윤리와 공공질서를 해치기 때문이다. 건전한 직업과 노동이란 사회의 질서와 통합에 이바지 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회의 풍기를 향상시키는 일에는 교회가 이 일에 복음전파와 더루어 힘쓰야 한다. 한국교회는 초호화판 교회당 건축에 교회 재정을 소모하기 보다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절박한 사업, 특히 성매매 종사자 여성들의 재활사업(심리치료와 직업교육)에 성도들의 귀한 헌금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며 사회적으로도 실추된 위상을 되찾는 사업이 될 것이다.
맺음말
필자는 지난 2월 헌재에 의한 간통죄 폐지가 잘못된 것으로 본다. 성을 개인의 자기 결정 권리에 맡긴다는 논리는 가정의 깨어짐을 방치하는 정부의 무책임한 자유방임적 태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성적 결정권을 개인의 자율권에 맡긴다는 것은 인간의 부패성을 지지하게 고려하지 아니한 무책임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의무론적 도덕론을 제안한 칸트는 인간이 양심이 명하는 도덕적 정언명법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고 자기 속에 있는 경향성이라는 극단한 악성(the radical evil)에 따라서 행동한다고 보았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of humans)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헌재가 위헌심사하고 있는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결정이 또 하나의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다. 아직도 미국의 21개 주(州)에서도 성에 대하여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간통죄를 유지하고 있는데 성매매특별법 존속여부에 관한 결정에 있어서도 한국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성적 문란이 가정 파탄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는 오늘의 풍조에서 가정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 한국교회는 주일에 찾아오는 교인들에게 거룩한 예배만 집전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사회로 나아가 우리의 이웃들에게 올바른 윤리와 바른 성과 결혼의 길을 선도해야할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앞서 본바 같이 미국에서는 1910년 경까지 매춘이 규제가 없는 합법화였는데 1910년-195년 사이에 교회여성연합단체의 매춘 규제운동에 힙입어 불법화되었다. 그런 미국이 최근에는 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동성애가 교회 안에서 합법화되는 가운데 과거에 쌓아 놓았던 사회적 도덕적 법적 안정장치가 하나 둘 씩 무너지고 있다. 우리 한국사회가 미국과 유럽의 잘못된 윤리까지 모방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 여성들과 남성들은 깨어나 순결운동을 일으키고 이 시대에 새로운 사회 윤리도덕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 위의 글은 김영한 박사가 본지 이외에도 일부 교계 언론사에게 전달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기고] 성매매특별법 존속에 대한 신학적 견해(상)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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