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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하나님 나라의 실종에 대한 신학의 책임과 응답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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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교수, 연세신학 100주년 기념 ‘진리와 자유포럼’에서 강연

 

2015년 2월 12일 기사

 

“교회 공동체와 개별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실천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진단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의 같은 신학자들이 필요하다.”

김회권 교수(숭실대)는 지난 2월 9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연세신학 100주년 기념 진리와 자유 포럼’(주최:연세대 신과대학ㆍ연합신학대학원 / 주제:2015년 한국사회와 기독교정신 / 장소:신학관 예배실)에서 ‘한국 교회의 신학의 현주소:하나님 나라의 실종에 대한 신학의 책임과 응답’이란 제목으로 강연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의 강연 내용을 일부 정리했다.

 


# 성경과 목회의 중심, 하나님 나라

성서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의 통치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부터 아예 왕으로 등장하신다. 왕이 아닌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다. 왕이신 하나님의 왕적 권능은 무질서와 혼돈의 원시우주에 질서를 부여하시는 창조행위다.

창조 자체가 하나님의 왕적 통치행위의 시작이다. 말씀으로 현실을 창조하는 자는 왕이시다. 지상의 모든 왕들은 불완전하고 강압적인 결점가득찬 모조품왕이다.

 

 

모세오경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에 복종하는 한 나라와 공동체를 형성하시려는 하나님의 분투를 다룬다. 여호수아-열왕기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운영되는 영토적인 하나님 백성 공동체를 세우시려고 하지만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좌절을 겪으시는 하나님과 그 나라의 이야기다.

가나안에서 이뤄진 하나님 나라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예언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하나님의 열망이 좌절됐는지 규명한다. 예언서는 하나님의 천상보좌에서 파견된 예언자들이 인간왕정을 향도하고 타개하고 극복하려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야기다.

그것은 인간의 실패와 불순종을 넘어 계속되는 하나님 당신 자신의 절대주권적인 희망과 미래를 노래한다. 시편은 하나님 나라의 흔적이 사라진 현실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는 눌린 백성들의 기도문이자 하나님의 응답이야기다.

성문서는 이 세상 질서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통치현존을 깊이 사색하고 반성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현실에 회의하고, 하나님 나라의 부재에 저항하고 냉소하는 이야기다. 묵시문서인 다니엘서는 하나님 나라의 대적자인 악의 원형적 세력들이 성도들을 죽이는데까지 승리하는 악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죽은 너머까지 확산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다.

역대기상하와 에스라-느헤미야는 두 번째 시도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야기다. 예언서의 희망과 위로에 기대를 걸고 다시금 하나님의 통치가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도록 대망하는 메시야 대망 공동체의 영적 분투와 좌절을 증언한다.

 

 

이처럼 구약은 철두철미하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다. 나사렛 예수는 구약을 단숨에 하나님 나라 이야기로 읽어내셨고, 구약의 구원사가 완전한 순종자인 독생자에 관한 예언임을 선포했다.

하나님 나라는 영토적, 공간적 실체를 가리키기보다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자체를 의미한다.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인격, 가정, 조직체, 국가, 그리고 국제질서, 피조세계 전체에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관철되는 사건이요 상태다.

하나님 통치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실현될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성취되기로 예정된 나라다. 그것은 죄악된 권력집단들과 개인들의 집단적인 반대와 완강한 저항을 감수해 가면서도 소수의 남은 하나님 자녀들의 부단한 순종과 간결한 실천을 통해 완성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즉, 예
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특정한 시공간의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건축되어져 가는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덧없는 ‘특정한’ 시대의 과업을 통해 건축되어져 간다.

 

 

# 한국 교회의 위기진단과 대책

한국 교회는 현재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광풍에 직면해 야웨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맘몬과 바알신으로 혼동되는 지경에 당도했다. 이익 추구, 물질적 풍요를 우상시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한 명의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일은 한 명의 공산주의자로 살아가는 일보다 더 어렵고 위험에 찬 일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경의 중심 주제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종교권력에게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배제된 성경 사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득권자나 권력 체제를 향해 항구적인 자기 갱신과 자발적 변혁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개인들에게는 급진적 전향을 요구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라는 성경의 중심 메시지는 패역하고 음란한 세대에 살면서 고독을 느껴 보지 못하고 불안에 떨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다.

2000년 교회사를 보면 이스라엘 본토에서 시작된 기독교 복음이 유럽 문명에 이식될 때, 기독교 신은 본래의 체제 변혁적이고 급진적인 신선함을 잃고, 기존 세계의 상류층 문화에 길들여진 채 전파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제왕들과 영주들의 종교로 전락했고, 기독교회는 적어도 1500년 이상 세상 정치권력과 종교, 경제적 권력의 최상층부에 자리잡은 사람들에 의해 대표되는 귀족들과 왕후들의 지배자 종교가 되어버렸다.

이런 시점에서 다시 한번 기독교 신앙이 거룩한 문화 창조의 에너지도 발출하기 전에 세속화의 위협 아래 굴러 떨어진 한국 교회의 앞날을 걱정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묵상해보고자 한다.

 


# 한국 교회의 일곱가지 위기

한국 교회의 위기는 일곱가지로 정의해볼 수 있다. 물론 아직도 희망적인 양상도 있다. 그 희망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아직도 복음주의적 열혈 청년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다 △교파간 및 교단간 교회일치 운동이 여러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회정치 등에서 점점 민주화, 투명화의 방향으로 진일보하고 있다 △한국 교회 평신도들이 세상 한 복판에서 발휘하는 신앙적 지도력이 점증하고 있는 추세다 △일각에서 양적 성장에 치중한 지난 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신학적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남북 문제, 민족화해 문제에 점점 더 각성된 사명감을 가짐으로써 남북한의 화해운동에 투신하고 있다 등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밝고 긍정적인 전망을 일시에 흐리게 만드는 부정적인 양상들도 줄을 이어 발생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대형 교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아주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진실들이 도전을 받거나 흔들리는 현상들이 교회 안팎에서 발병하고 있다.

① 많은 수의 도시형 중대형교회들은 여전히 교회성장학적 교회운영에 치중한 나머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흐리고 있다. 오순절의 성령역사로 인하여 하루에도 제자의 수가 3천명이 증가될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는 양적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들어온다고해서 그것이 오순절의 성령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교회 강단은 아직도 4영리 단계의 초신자 수준의 설교들로 채워지고 있다. 태권도 홍띠나 청띠 정도의 신앙만을 가르치고, 훨씬 수준 높은 9단 수준의 신앙단계로 성장하려고 갈망하는 기독교인들을 바르고 훈육하는 프로그램은 아직은 태부족이다.

따라서 고귀하고 품격높은 제자도나 수도사적인 자기단련의 신학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영성신학이 등장해 이런 양적 성장주의가 가져온 폐해의 일단을 교정해 보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한국 교회는 대형화에 대한 환상에 집착하고 있다.

 

 

② 대형 교회의 기업화(세속화), 세습왕조화 추세는 심각한 폐단으로 지적된다. 교회의 왕조적 세습화는 어떤 명분으로든 정당화되기 어렵다. 세습금지법이 통과되고 종교인과세법이 국회통과를 앞둔 시점에서 아직도 적지 않은 중대형 교회들이 부자세습 체제를 이루었거나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재정비리로 소송에 휘말린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도 많은 목회자들이 할 수만 있다면 부자세습을 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용기가 없어서,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아서, 혹은 당회 장악력이 모자라서 세습체제를 구축하지 못할 뿐이다. 현재도 많은 개신교지도자들이 자신의 아들이나 사위 혹은 부인에게 사실상 자신의 지위를 넘겨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③ 한국 교회는 아직도 개교회주의 동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목회자가 한 교회를 20~30년씩 목회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모험이다. 모든 개별적인 목회자는 자신의 한정된 은사와 재능을 갖고 목회에 임한다. 강단의 교류나 영적 지도자들 간의 광범위한 은사와 재능의 교류가 제도적으로 장착돼 교우들에게 균형적인 신앙지도를 베풀 수 있을 것이다.

④ 소위 당회장 목사라 불리는 교황급 담임목회자의 전횡과 독재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우민화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개신교 교회는 가히 루이 16세급 독재권력을 휘두르는 1인 담임목회자의 리더십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

다행이 목회자의 인품이 훌륭하고 신뢰할만하면 그 담임교역자의 독재는 이른바 연성(軟性) 독재가 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수완있는 독재적 목회자는 평신도 교인들의 노예근성과 제휴하기 쉽고, 그들의 마조히즘적 감정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늘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에 의해 조장되는 평신도 우민화는 시급하게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에게 오로지 믿고 순종하는 아멘형 우민이 될 것을 강요하는 교회 내의 반민주적 반성령적인 폐해는 혁파되어야 할 것이다.

 

 

⑤ 한국 교회는 아직도 사회의 가장 복합적이고 강경한 쟁점들을 다룰만한 신학적 훈련이나 소양을 결여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 교회의 위기는 신학의 위기다.

한국의 개신교회 신학은 구약성경이 다루는 절실한 문제들-세상의 실제적인 구원,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실현, 피조물의 미래에 대한 문제들-을 다소 외면하고 있다.

영성신학이나 목회상담학의 왕성한 인기는 그리스도인들의 내면 치유에 대한 다급한 수요를 잘 증명한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내적인 붕괴와 손상을 가져오는 사회의 외부적인 법, 제도, 관습, 경제체제 등 이른바 딱딱한 쟁점 등을 잘 다룰 수 있는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많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내면의 상처와 망가짐도 이런 외적인 사회정치적, 문화적 및 인류학적 쟁점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제 한국 교회도 이러한 포괄적인 전망을 갖춘 신학적 해답을 추구해야 한다.

⑥ 교회의 세속화는 교회와 세상 사이에 있는 본질적인 차이점에 눈멀게 했다. 누가 보더라도 선명한 윤리, 도덕감을 고양시키는데 실패하고 있다.

⑦ 한국 교회의 인적 구성의 편향성이다. 한국 교회가 도시빈민이나 농어촌 지역의 주변화된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 등 기성 종교 밖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혜택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 무기력한 한국 개신교 신학의 현주소

한국 교회 위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 보좌 통치신학의 실종에서 비롯됐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실종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 보좌통치의 실재를 불신하는 불신앙, 불순종을 초래했다.

한국 교회는 신학의 무시, 신학과 신앙의 전통 무시, 이론적 사유 무시, 타종교 무시와 몰이해, 신학교육의 무시 등으로 보여줌으로써 한국개신교 신학자들의 비상한 각성을 촉구하는 면이 있다. 한국 교회가 2천년 간 누적된 기독교신앙 유산을 무시한 결과 생긴 적폐들은 적지 않다.

첫째, 개신교 교역자의 교황화다. 개신교 신학교 교수들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영적 권위에 눌려 독자적인 신학연구 업적을 산출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 교회 목회자가 신학교수들의 사역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령충만한 신학교수들의 루터적, 칼빈적, 츠빙글리적 기상 상실도 문제다.

둘째, 한국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교회적 위계질서, 사제와 평신도의 위계질서, 평신도 내의 위계질서, 남녀노소의 위계질서 등으로 경화돼 성령의 역사에 무감각하다.

한국 교회의 말씀주경신학, 교의학 등의 권위가 서지 못하여 교회의 정치, 행정, 선교전략 등을 효과적으로 돕지 못하고 있다. 신학자들의 교회관여나 봉사, 사역기여가 적어서 기존 교회나 노회에서 모든 신학교수들을 초청해 목회에 깊이 관여시키지 않는다면 신학과 목회의 분리는 계속될 것이다.

셋째, 한국 교회는 중보자 집단이 되기보다는 중산층 지향의 교회, 동질성 집단의 상호견인적 관성으로 도시중산층 교회로 경화됐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대신에 동질성 집단원리에 의한 교회성장학이 교역자들에게 더욱 더 귀에 솔깃한 복음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학자들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도시교회의 성장정체 현상은 목회자들의 고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신학자들의 부담스러운 연구주제가 되어야 한다.

 

 

넷째, 한국 교회는 주류 이데올로기(시장 전체주의), 기업적 운영 등에 의해 왜곡된다. 타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배척 무시 또한 심각한 현상이다.

조직신학자들과 선교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문화변혁적 사역을 가르치는 문화변혁신학, 선교신학, 말씀신학이 교회를 돕고 하나님 나라 중심의 목회를 실제로 적용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타종교에 대한 건전한 이해를 도와주어야 하며, 기독교 복음의 압도적 위엄과 진리성을 가장 평화롭고 자애롭게 증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다섯째, 예언자적 교정사역, 왕적 사회통합사역, 제사장적 희생사역을 상실했다. 교회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2천년 교회사 공부를 통해 교회가 사회에 대하여 삼중적인 사역을 왕성하게 펼친 사례를 발굴해 가르쳐주어야 한다.

여섯째, 2천년 교회사의 신학유산을 외면했고, 500년 된 종교개혁 유산은 더욱 상실했다. 교부신앙, 중세의 그리스도 겸비와 가난실천영성, 그리고 말씀과 성령에 노출돼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유산을 외면했다. ‘오직 성경’을 외면한 대신 종교체험, 교회경영학적 만담이 주일 강단에서 선포되기도 한다.

일곱째, 교리문답 교육을 통한 삶과 말, 신념과 가치의 통일을 이루는데 실패했다. 교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핵심과업은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등을 자세히 가르쳐 어떤 점에서 신자의 삶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여덟째, 교회력 중심의 성도 영성관리와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데 실패했다. 예배학 교수와 같은 실천신학자들은 일상생활을 교회력 중심으로 디자인하고 경영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공중보건의와 같은 신학자 필요

개신교 신학자들은 교회를 섬기는 신학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산출해야 한다. 전공신학의 파편화, 구획화, 전문화를 극복하고 교회의 신앙실천을 돕는 통합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신학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신학자는 근본적으로 목회자임을 자각하고, 설교강단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 교회는 교회 공동체와 개별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실천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진단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와 같은 신학자들이 필요하다. 이 공중보건의들은 성령의 활동궤적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자각력과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신학적 공중보건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신학전망을 가지고 교회의 신앙실천을 점검하고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공중보건형 신학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관점에서 교회의 신앙실천을 늘 상대화한다.

이 신학은 또한 교회가 사용하는 온갖 이론들과 그것이 참여하는 실천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성서해석과 교회활동을 지배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세력들과 구조들, 세계관들과 인생관들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역할까지 감당한다.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이 터를 닦은 개혁신학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빛 하에서 교회의 신앙실천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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