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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원문]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신학적 성찰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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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박사 / 샬롬나비 대표

 

2014년 12월 1일 기사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신학적 성찰 / 김영한 박사

머리말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는 선진국 차원으로 질주하던 한국사회를 멈추게하고 경종을 울려주었다. 더욱이 특검법 제정을 둘러싼 유족측과 정부 사이의 갈등은 또 한번 우리 사회를 갈등의 위기에 내몰았다. 근 6개월 이상의 진통(陣痛) 끈에 여야 합의에 의한 특검법의 국회통과와 유족측의 동의로 어려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낸 것은 민주사회적 성숙과정이었다.

위기는 잘 선용하면 새로운 기회가 된다. 온 국민이 합의하는 해법을 내고 세월호 참사를 야기시킨 한국사회의 병폐를 고치고 우리 사회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4년 10월 6일 검찰은 “세월호 참사는 무리한 증축과 과적, 선원들의 운항 미숙 등이 직접적 원인이며, 해경과 해상교통관제 센터(VTS)의 미숙한 대응이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기업의 탐욕’ ‘정부의 무능’ ‘공직자의 부패’ ‘윤리의 타락’이라는 우리의 현실을 드러낸 게 세월호 참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 마음을 합하여 투명하게 선장과 승무원들의 직무유기, 정부의 무능과 부패…. 모든 분야에서 시스템, 사람들의 의식·가치관을 점검하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무고(無故)한 희생자들이 그런 계기를 만들고 갔다. 이들의 뜻을 따라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본 연구에서 신학적 관점에서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그 원인과 대책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I.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세상: 생명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탐욕 지배

1) 위험사회의 일상적 위험


“위험사회”란 독일 뮌헨대 사회학 교수 울리히 벡(Ulrich Beck)이 1986년 독일에서 출간한 그의 저서 『위험사회』(Risiko Gesellschaft)에서 규정한 것 같이, 성찰과 반성이 없이 근대화를 이루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따른 불안(不安)이 특징인 현대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대형사고가 발생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 이론이 주목을 받았다. 벡에 따르면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근대화 초기 단계에는 풍요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근대화 후기로 갈수록 위험요소는 더욱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즉, 위험은 성공적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며, 산업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고,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과학기술과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나타나며, 무엇보다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 세월호 참사 6개월 만에 안전불감증이 부른 안전사고가 다시 발생했다.
 
2014년 10월 17일 분당 판교 테크노벨리 유스페이스 야외공연장에서 지하주차장 환풍구 덮개 위에 올라가 고연을 보던 시민 25명이 18.7 미터 아래 4층 주차장 바닥으로 떨어져 16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14년 11월 15일 담양 팬션 야외 바베큐장에서 불이나 유독가스가 대학생들을 덮쳐 4명이 숨지고 명이 화상을 입는 안전사고가 일어났다. 우리 사회 곳곳에 안전위험이 일상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벡은 2014년 5월 6일 독일 뮌헨 연구실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세월호 사건은 인류학적으로 쇼킹(shocking)한 사건"이라며 "한국사회가 위험사회를 넘어 '재앙사회(catastrophic society)'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 국가적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특별한 위험 사회인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면서 “이번 사고를 한국사회가 총체적 변화를 도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은 전 세계에서 성장·발전의 대명사처럼 평가받던 한국의 민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며 “선진국의 반열에 든 줄 알았는데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압축적인 근대화를 겪었다. 유럽이 150년에 걸쳐서 근대화를 이룬 반면 한국은 15~20년 만에 근대화를 이뤄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했다. 그 안에 수많은 위험 요소가 포함돼 있었고, 유럽과 달리 한국 사회는 그것들을 해결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항공, 선박, 원전, 화학공장 등 기술문명은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조합이다. 그리하여 운영자, 승객, 시민, 미래세대가 재난의 대처가 쉽지 않는 고위험 시스템(high risk system)이다. 이번 재난이 일어나면 일본 원전 등에서 보는바 같이 수많은 생명이 당하게 된다.

한국이 중진국 문턱을 넘어선 1990년대 이후에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인재(人災)에 가까운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가 이어졌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14년 초에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져 대학에 갓 입학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4월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한국이 특별히 위험한 사회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독일 등 유럽 국가와 달리 전통 사회와 1차 근대화(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시기), 2차 근대화(근대화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시기)가 혼재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성공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해 다음 시기로 넘어가기에 앞서 필요한 경험을 쌓지 못한 것이다. 어찌 보면 빠른 성장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위기상황 속에서 정부기관의 전적 무능

세월호 희생자들을 구할 수 있었던 '골든 타임'은 30분-1시간 정도였다. 그 대부분이 세월호 선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 때문에 흘러가버렸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정부는 책임을 방기한 것이고, 내각책임제 같았으면 정부 전체가 책임졌어야 할 사안"이며 "이번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대 정권이 다 공동 책임져야 할 문제"다.

3) 개발, 성장 위주의 사회가 만든 부산물

배를 지켜야 하는 명예와 책임을 팽개친 선장이나 선원들은 큰 벌을 받아야 하지만 선장·선원은 어쩌다 돌출한 별종의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 문화의 산물'이다. '법과 규정을 안 지키는 것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있으며, 부정부패가 켭켭이 쌓이고 있다. 무사안일, 적당주의, 형식주의가 적폐된 사회에서 또 다른 안전사고가 시한폭탄처럼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는 경청할 부분이 있다. 기업의 지나친 이익 추구와 효율 지상주의, 비정규직 확산 등이 정상적인 통제가 작동하지 않고 모두가 자기 생존만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에 유념하여 고칠 부분을 찾아 고쳐야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원조라고 할 미국과 영국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측면이 핵심은 아니다.

고도성장을 위해 국민 안전과 연계된 사회 시스템의 구축을 외면했던 개발독재 시대가 낳은 기초의 부실을 민주인사들의 집권 기간 동안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태로 드러난 여러 문제는 이번 정권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 온 문제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내부에 크든 작든 '세월호'를 기르게 됐다. 따라서 지금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메카니즘을 점검해야 한다.

4) 관피아으로 인한 공직사회의 부패와 무능

'관(官)피아'로 상징되는 공직 사회의 부패와 무능이 심각하다. 대통령도 자신이 감당도 하지 못할 '국가 개조'를 하겠다고 한다. 참여정부 때도 국가적 위기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정권이 끝나면서 다 잊혔다. 우리도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하고 일부 정당 출신들이 행정부에 들어가지만, 관료 사회를 장악하지 못한다.
참여정부시절 공직개혁을 주도한 대통령정책실장 김병준은 다음같이 지적한다. "한마디로 정당이 엉터리기 때문이다. 관료 사회를 장악할 정책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정당에 없다. 내가 청와대에 있을 때에도 비서실에는 정당과 운동권 출신이 많았지만, 정책실에는 온통 관료들뿐이었다. 정당이 무능하니 국민도 정당 인사가 행정부에 가면 '낙하산'이라고 비판한다. 정당이 행정부를 장악하지 못하니 관료들이 정권의 주인이 되고 끼리끼리 문화가 생겼다. 공직 사회 개혁은 이들이 일하지 않는 구조를 만든 무능한 정당의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5) 탈법주의, 편법주의 사회, 직업윤리 부재: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본능이 지배

“세월호 대리 선장은 사고 당시 제복(制服)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규정대로 그가 제복을 입고 있었다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화물을 과적(過積)하거나 평형수를 채우지 않는 등 적당주의가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안전과 적당주의는 상극이다. 민간은 규정을 알면서 우기거나 대충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공무원들은 이를 봐줬다. 세월호 선장과 많은 선원에겐 살고 싶다는 본능적 욕망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수사기관에서도 "그때는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들의 사생관은 '내가 사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팽개쳤다.

총소리에 놀라 부하를 버리고 무기고 열쇠까지 갖고 달아난 동부전선 GOP의 도망친 중위 같은 군인 지휘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위는 전역을 두 달 남겨놓고 있었다. 많은 이가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들이 병역기피 하는데 누가 죽음을 무릅쓰겠느냐"고 토로한다. 우리 역사에 보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임금이 백성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를 고사하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한 것이 우리 역사의 수치이기도 하다.

 

 

6) 자기 집단의 유익만을 내세우는 미성숙한 사회

의견이 다르면 집단적으로 언어폭력을 하고, 자기주장을 위해 상대를 인격 살인하는 집단 떼 문화, 억지 떼 문화의 광기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야기시킨 사회의 풍토다. 이 현상은 강경파 유족과 이들을 조정하는 강경파 세력들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조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겠다는 강경파 유족자들의 요구에서 나타났다. 세월호 특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혼란과 갈등이란 우리 사회에 법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면 세월호 특검 논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상설특검법과 특검 규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협상이 10월 31일 타결됐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200일 동안 나라는 쪼개졌다. 국회는 정쟁(政爭)으로 날을 새우고, 국정(國政)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시피 했다. 참사 직후 대통령 입에서 나온 '국가 개조(改造)'라는 말은 어디로 종적을 감추었는지 찾을 곳이 없다.

세월호특별법 얘기가 나온 7월 이후 이 문제를 놓고 유가족들은 광화문에서 텐트를 치고 국회는 싸움질만 벌여 왔다. 나라 꼴이 파행(跛行)으로 치달은 부담은 정부·여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세월호 처리에 발목 잡혀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할 시기의 귀중한 반년을 날려보냈다. 야당은 야당대로 여권 뒷덜미나 잡는 정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나라가 위급할 때 제1 야당이 여당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이런 때일수록 정부와 협력할 것은 협력하며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조언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법치를 제쳐놓고 자기 편의 주장과 논리만을 앞세우는 인치의 사고가 득세하기 때문이다. 법치가 무시되는 이러한 인치의 사고가 쌓이고 쌓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II. 물질주의에 추종하고 생명을 방치한 교회

21세기에 닥치는 재난들 가운데 세월호 사태는 안전불감증과 책임감 부재에서 왔지만 그 근저에는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에 경도된 한국종교사회의 풍토의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역설의 희망을 통해서 세계 시민적 전환의 전기(轉機)를 포착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인간 가치에 대한 몰이해와 물질 숭배가 강한 현실에서 돌이켜 인간의 의미를 깊게 숙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 보는 현상학적 종교사회학의 통찰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한국교회는 자신에 대한 바른 비판적 성찰을 해야 한다.

1) 영혼의 생명보다 양적 성장에 치중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을 지상적 목표로 설정함에 따라 세계적 메가처지를 6개나 만들어 냈으나 그 이면에는 85%의 미자립 교회가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기형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한국사회가 고도성장을 겪으면서 안전 의식이 약했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교회도 이런 사회의 풍조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장단 맞추면서 성장제일주의에 빠졌다. 교회 건물 크게 짓고, 신자 수만 늘리는 게 부흥이라고 믿었던 것은 잘못이다.

 

 

2) 희생과 헌신보다는 성공과 번영을 설교

성공과 번영만을 지고의 가치로 보는 '유사(類似)유물주의'가 교회의 메시지를 지배했다. 신자들이 정직하게 살고, 자신의 일터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걸 소홀히 가르친 책임이 크다. 한국교회는 구조적 부패를 방조하고 그 시류에 편승하면서 침몰하는 부패된 사회를 만든 것과,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자들을 품고 상처를 치유하는 사명을 망각해 온 것에 대해서 철저히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 희생과 헌신의 메시지가 결여되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요즘 건강한 교회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3) 가난과 약함을 멀리하고 부와 권력에 편향

세계를 벼랑으로 끌고 가는 병든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하는데, 교회가 거기에 편승하여 부와 권력에 편향하였다. 세상이 이렇게 병들어 있는데 교회는 신자들이 정직하게 살고, 부와 권력을 지향하기 보다는 자신의 일터에서 가난과 약함을 체질화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막스 베버는 직업을 신이 주신 소명(召命)으로 해석, 기독교인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다. 기독교가 말하는 직업은 그 일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4)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어 빛과 소금의 맛을 상실

교권주의 금권선거와 물량주의는 한국교계와 교회연합기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심어주는 가장 큰 이유였다. 지난 25년간 한국 보수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인 한기총이 최근 3년간 교권주의와 금권선거를 자행함으로써 신뢰성과 투명성을 상실한 것이다. 죽어가는 어린 학생들을 버리고 홀로 탈출해나간 선장과 선원들은 바로 오늘날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한국교회를 만든 교회 지도자들을 표상한다는 여론의 비난을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III. 한국사회 혁신의 시스템 구축

1) 선진국형의 위험 관리시스템 구축

현대인들이 환경보호와 웰빙에 관심을 쏟고 각종 보험에 가입하는 행위도 결국 불확실성의 불안을 극복하려는 방안의 일환이다. 따라서 벡은 근대화 발전의 성공에 따른 경제적 풍요를 동반한 대형 사건ㆍ사고의 위험을 지적하면서, 지금껏 진행되어온 근대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근대성' 또는 '제2의 근대성'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과 산업의 부정적 위험성을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 '성찰적 근대화'의 방향으로 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험사회론은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한국이 1차 근대화에 성공했으나 이제 2차 근대화로 넘어가야 한다. 이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위험 관리 시스템(Risk Platform)을 구축하는 것이다. 위험 요소는 어디에나 있고 비슷하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산업계, 경제계, 정계, NGO 등이 함께 고민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지식을 가진 집단이 스스럼 없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정치인이나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으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

둘째, 전통을 현명하게 계승하는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유럽은 지금 굉장히 느리고 정적(靜的) 상황이다. 창조적 움직임이 없다. 한국의 움직임은 유럽과 비교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다. 이 때문에 무작정 글로벌을 외치는 대신 자기 성찰을 통해 한국만이 가진 장점을 계승하는 2차 근대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과 관련된 사업(운수, 건설, 토목 등)을 하는 개인들도 정부가 그렇듯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 개개인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경우 위험은 재앙으로 변한다. 세월호 사건의 1차 책임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개인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위험사회에서는 책임감 있는 개인들이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

<1> 재난을 망각하지 않음: 기억의 제도화

망각에 저항하고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억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망각에 빠지는 한 백약(百藥)이 무효다. 자신의 운명에 지극히 중대한 결정적 순간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어제 일처럼 환하게 기억한다. 사진기의 플래시가 터지는 것처럼 환하다 해서 '섬광(閃光) 기억(flashbulb memory)'이라고 부르는 기억 작용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국가적 위기의 아픈 경험과 기억들이 있었지만, 그 정권과 함께 소멸하면서 시스템으로 남지 못했다. 관료 사회를 장악할 정책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정당에 없다. 정당이 행정부를 장악하지 못하니 관료들이 정권의 주인이 되고 끼리끼리 문화가 생겼다. 공직 사회 개혁은 이들이 일하지 않는 구조를 만든 무능한 정당의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2>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여과하는 제도적 장치

피해자들에 의한 사적(私的) 소송, 사적 재판을 없애기 위해 국가와 제도가 만들어지고 법치주의가 성립된 것이다. 조사위에 수사권을 준다는 건 사적 소송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민간인에게 수사·기소권 준다는 건 사법체계 뒤흔드는 超헌법적 발상이며, 與野, 애초에 불가능한 걸 협상한 것이다. 근대 형사사법 제도가 정착하면서 문명 국가에선 자력(自力) 구제나 사적(私的) 복수는 금지되고 기소는 나라가 맡는 게 일반화됐다. 피해자가 개인적인 원한을 갖고 직접 가해자에게 복수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는 여야의 합의를 따르면서 수정되었다. 유가족의 요구가 지나치게 되면 국민의 외면(外面)을 부르게 된다. 진상 조사가 정쟁(政爭)과 진영 싸움의 대상이 되어버리거나 한풀이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이런 국민적 이해와 기대는 머지않아 실망과 무관심(無關心)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하지만 유족들의 인내와 절제심도 필요하다.

 

 

<3>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한 국가차원의 여야 국회 조사위원회 구성

민간 전문가들이 포함된 여야 동수의 국가차원의 여야 국회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철저한 사건 원인이 규명되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의 조사와 향후 대책 마련의 과정은 세월호 침몰부터 초기 대응, 부처 간 혼선과 갈등, 세월호의 편법과 위법을 묵인해 온 업계와 감독 기관의 유착 문제 등을 조사해야 한다. 그 조사는 비단 해운(海運) 분야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도사린 위험 요소를 규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론 국가 혁신과 국민 의식 변화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비극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근인, 대처 과정의 문제점 등을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둘째, 조사의 목적은 단지 처벌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처방전을 만들어내어야 한다. 셋째, 세월호 사고 조사와 사후 수습은 그 자체가 국민적 치유 과정이 돼야 한다. 세월호 침몰 이후 국민이 겪고 있는 집단적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는 심각한 상황이다. 원망과 불신, 돌발사고에 대한 두려움 등을 국가가 나서서 어떻게든 치유하고 다독여야 한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비롯해 각종 재난과 사건·사고에 대한 의회(議會)의 사후 정밀 조사가 확고한 문화로 정착된 나라다. 미국은 1년여 협의를 거쳐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를 여야 동수(同數)로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20개월에 걸쳐 10개국에서 1200명을 직접 인터뷰하거나 조사했고, 250만쪽에 달하는 정부 문서를 검토했다. 위원회가 조사한 사람은 사고 현장 건물 관리인부터 전·현직 미국 대통령·부통령이 모두 포함됐다. 미국 의회는 19일에 걸쳐 청문회를 열었고 증인 160여명이 출석했다. 이 과정을 거쳐 41개 항목의 건의 사항이 담긴 600쪽에 이르는 보고서가 나왔다. 우리의 세월호참사 진상조사 보고서도 해운 안전의 지침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4> 해양경비는 강화·개혁되어야: 기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운영의 문제

여야는 지난 10월 31일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해체한 뒤 새로 생기는 국민안전처 산하 '중앙소방본부'와 '해양경비안전본부'로 편입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했던 해경 해체 내용과는 달리 두 기관의 권한과 기능, 조직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게 됐다. 중국이 국가해경국을 신설하고, 일본이 행상보안청을 강화 확대하는 즈음 우리의 해양경비는 강화, 개혁되어야한다. 세월호 침몰 때 무능을 보여준 것은 기구가 아니라 해경종사자들이었다. 기구 운영자들을 개편해야 하면 된다. 기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운영이 문제다.

2) 새로운 공직자 정신: 공직사회의 책임의식

<1> 매뉴얼로 작동되는 사회

세계 유력 일간지 1면에서 '세월호'는 여전히 어처구니 없고 정신 나간 대한민국의 상징이 돼 있다. 세월호 사태에서 책상 행정, 전시 행정의 폐해가 드러났다. 현장에는 현장 지휘관이 없었다. 재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하고 정착화 시키지 못함으로 인해 재난 매뉴얼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이번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무원들은 괜히 나섰다가 자신이 책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윗선만 쳐다보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 공무원들은 현장에 가는 대신 전화를 붙들고 국장이나 장관에게 보고할 숫자부터 챙긴다. 모두가 뛰어야 할 상황에서 모두가 눈치만 본 것이다.

<2> 리더는 책임을 지지만 권한은 총리·장관·현장 지휘관에게 과감히 줘야 한다.

일본의 전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는 대장성 관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졸이고 당신들은 도쿄대를 나왔다. 그러나 나는 총리고 당신들은 내 부하다. 권한은 너희가 모두 가져가라. 책임은 내가 지겠다.” 이런 권한 위임이 공무원들을 움직이게 했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때 미국 백악관의 모습을 보면 제복을 입은 군인이 중앙에 앉아 작전을 지휘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다. 리더는 책임을 지지만 권한은 총리, 장관, 그리고 현장 지휘관에게 과감히 줘야 한다.
미국도 불과 9년 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우왕좌왕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허리케인 상륙 닷새 만에 주민 대피에 필요한 버스 제공을 승인하는 등 엉망이었다. 미국의 힘은 고치고 다듬고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나온다. 카트리나를 통해 미국은 시스템을 바꾸고 매뉴얼을 다시 만들어 '적재적소(適材適所) 지원'을 강화했다. 최근 토네이도 피해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과거에서 배운 것이었다.

 

 

 

<3> 공직자들의 공적 가치에 대한 인식 중요시

일찍이 구소련의 붕괴를 보며 『역사의 종언』이라는 논문을 써서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승리를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근의 저서 『정치 질서의 기원』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성공하려면 국민에 대한 정부의 ‘설명책임’이 불가결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또 하나의 중요한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들(대런 애쓰모글루 외)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의 차이를 결정짓는 것은 궁극적으로 합리적 정치제도의 운용 여부이다.

이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바는 오늘날 좌우 정치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국가가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국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정치지도자들이 공화주의적 덕목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화주의적 덕목이란 국가는 특정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유물이 아니라 공화국, 즉 전체 구성원의 공유재산(commonwealth)이라는 인식에 철저한 인간만이 정치가가 되고, 국민의 대표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비전과 전략을 갖춘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한 것이다. 지도자는 국민의 분노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시간이 걸려도 문제의 뿌리를 찾아 해결하자'며 인내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포퓰리즘이 아니라 공적 가치에 충실하는 것을 말한다. 공적 가치란 전체 구성원의 합의(consensus): 민주, 자유, 평등, 개인적 창의성, 인간 존엄이라는 공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4> 정부, 민간의 높은 투명성

정부·민간의 투명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국민 행복도와 함께 국가 경쟁력도 높다는 사실이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조선일보의 공동 조사에서 확인됐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싱가포르가 국가 경쟁력 세계 3위, 투명성 세계 5위에 각각 오르며 최상위권에 들었다. 싱가포르는 지난 1952년부터 공직 사회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부패 행위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부패행위방지국을 총리 직속으로 설치·운영해 왔다. 부패로 이룬 재산은 몰수하고 부패 사범의 재산을 압류·동결하는 고강도 반부패 법률도 지난 1980년대부터 시행 중이다. 싱가포르의 1인당 GDP(2013년 기준)는 5만2900달러로 일본(3만9300달러), 한국(2만3800달러) 등에 비해 높다.

한국의 투명성은 세계 175개 국가 중 46위에 올랐다. 상위 30% 안에 들기는 했지만 아시아권 경쟁 상대인 홍콩(15위)·일본(18위)·대만(36위) 등에 비해 투명성이 떨어졌다. 한국은 부패가 경제 성장에 연간 최대 1.4%포인트의 손실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가의 투명성을 높이려면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정부·민간이 보유한 각종 정보를 국민 앞에 철저하게 공개하는 게 첫걸음이다. 정부가 민간에 대해 사실상 모든 것을 간섭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과도한 규제 시스템이 부패의 근원이다.

서울대 명예교수 김광웅(金光雄)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보 공개 수준은 주방을 손님이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는 동네 식당만도 못한 수준"이며, "아직도 관료가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를 무기로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부패 행위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는 "국가 전체의 투명성을 높이려면 정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일정 직급 이상 고위직에 대해서는 사(私)생활까지 공개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독일은 ‘부패단속법’(Gesetz zur Bekämpfung der Korruption)을 제정하여 수십 년 전부터 대가관계와 상관없이 직무수행과 관련한 금품 등의 수수 행위를 이익수수죄로 규정하여 형사처벌하고 있다. 이 법은 독일이 통합되고 청렴한 사회가 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국회에 계루(係累)되어 있는 부패방지법, 공무원이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김영란법'이 통과되어, 이제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투명성 기준을 법률로 새로 정하고 앞으로 이를 어기는 사람은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우리 스스로 선언하고 지켜나가야 할 때가 도래했다.

 

 

<5> 선비정신, 공익(公益)을 우선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한영우는 우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 옛 선비 정신의 계승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식민사관 영향으로 우리 전통과 조상은 나쁘다는 선입관이 생겼다"면서 "조선이 500년 이상 오랜 기간 지속한 까닭은 국가의 철학이 백성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으로 본다. 한영우는 "선비 정신의 핵심은 공익(公益)을 우선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이라고 했다. 그 원형을 단군신화에서 찾았다. "신화에 담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은 모든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고 도와주자는 공동체 정신으로 우리 문화의 정신적 바탕"이었고, "고조선 때부터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군자국(君子國)'이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표현할 만큼 우리의 선비 전통은 주목을 받았다." 한영우는 "홍익인간 이념을 정치에 반영한 것이 민본정치이며, 이는 조선에서 최고로 발전했다"고 본다.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정옥자 역시 선비 정신을 수기치인(修己治人), 지행일치(知行一致)로 정의하였다. 조선시대 선비란 성리학을 주 전공으로 하여 그 이념을 실천하는 학인(學人)이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근본으로 사대부(士大夫)가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는 존재다. 인격과 학문을 도야하는 '수기'가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치인'으로 갈 수 있다. 치인이란 남을 지배한다거나 통치한다는 권력 개념보다는 자신을 닦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군자가 되어 백성(民)을 위하여 이바지하는 봉사 행위를 의미했다.

세월호 참사는 선비 정신이 침몰한 때문이라는 역사학자들의 지적은 주목할만하다. 돈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생명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생각에서 온갖 폭력과 불법, 부정과 비리가 싹튼다. 유럽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 있고, 미국에는 청교도 정신과 개척 정신이 있다. 서양에서도 배워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전통에 있는 좋은 유산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3) 새로운 사회윤리와 가치관

<1> 자기 직업에 충실한 윤리의식의 각성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과연 이게 국가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편으로는 희망도 봤다. “자기 일을 제쳐두고 자원봉사에 나선 분 등을 보면서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죽지 않았고, 위기마다 하나가 되는 힘은 이번에도 대단했다"는 것을 느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는 승객을 내팽기치고 자기 목숨 구하기 위하여 달아나는 선장과는 달리 직업의식을 실천한 선원들이 있었고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은 거의 90도로 기울어진 배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 말을 전했다. "배가 많이 기울어졌다. 통장에 있는 돈은 아이 등록금으로 쓰라"고 했다. 그는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내가 "지금 상황이 어떠냐"고 묻는다. 양 사무장은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 해. 끊어"라고 했다. 그게 유언이 됐다. 그도 살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지켜야 할 자식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가족의 안위만큼이나 중요했던 무엇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달아나고 싶고, 살고 싶은 본능을 향해 '그래도 그럴 수는 없다'고 붙잡은 것은 마음 밑바닥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양심일 것이다. 배에 있는 학생들이 여승무원 박지영에게 "왜 언니는 구명조끼 안 입어요"라고 물었다.

박지영은 "너희가 모두 탈출하면 나도 나갈거야"라고 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구명조끼를 남에게 주는 것은 죽음까지 생각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박지영의 죽음으로 학생 20여 명이 생명을 건졌다. 양대홍이나 박지영, 삼호주얼리호의 선장 석해균과 같은 사람, 포탄이 쏟아지는 연평도 부대로 되돌아가다 전사한 해병대원이나 한주호 준위 같은 군인은 자기의 양심이 말하는 직업의식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전쟁터에 나간 미(美) 여군의 얘기가 있다.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아버지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가 있느냐를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이것은 미국이 세계 1등국가임을 말해주는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입대하는 자식에게 "네가 가는 길은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는 사생관을 말해주는 부모가 많아야 한다. 진정한 역사는 숭고한 가치관을 지닌 자들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다.

무능한 수습과 더딘 구조를 비난하기에 앞서, 선장·선원들에게 돌을 던지기에 앞서, 나는 여기서 자유스러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국가 위기가 도래했을 때 생명을 걸고 지키려는 헌신과 애국심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국가 개조'란 말을 했지만, 문제는 국가 체계가 아니라 사회의 도덕적 바탕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다. ”희생당한 분들에게 속죄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 사회의 원칙과 기본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번 만큼은 ‘법과 제도의 외양간’ 뿐 아니라 ‘의식의 외양간’까지 반드시 고쳐야 한다. 사회를 이뤄가는 원칙과 책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문제이고 공공의 삶을 지키는 문제”다.

<2> 생명중시 가치관

세월호 참사는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윤리를 외면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만약의 사태에 위협받을 생명 가치를 무시함으로써 도덕을 외면한 것이다. 선박 회사나 '관(官)피아'나 모두 결국 돈과 생명을 바꾼 것 아닌가? '생명 중심 사회'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는 방향 제시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존엄성 사상은 과학 기술주의나 자연주의에서는 찾을 수 없다. 자연주의나 과학주의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 생명의 기원을 보기 때문에 다른 물질적 존재와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다름이 없다고 본다. 인간이란 단지 진화 과정 가운데 가장 이성적 기능이 발전한 존재에 불과하다. 이러한 진화론적 자연주의 입장에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란 나오지 않는다. 불교나 범신론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나 만물이나 본질적으로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하나님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만물을 돌보는 청지기직을 부여하셨다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치고 있다.

<3> 상생하는 가치관

소설가 복거일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역설한 바 같이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세우려는 시민의식의 성숙이 필요한 때"다. 자유시장에서 도덕이 나온다. "정부 규제가 줄고 개인의 권한이 늘어나면 도덕심도 커진다. 개인들이 시장에서 공동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며 신용을 쌓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정부 권한이 크다 보면 개인들이 작은 이익을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게 된다. 부패의 제도화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신이 커지면 협력이 부실해지고 도덕이 약해진다."

상생 윤리가 강조되어야 한다. "시장만으로 도덕 사회가 이뤄지진 않는다." "개인이 각자 할 일을 다하면서 플러스 알파까지 행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사람들 사이에 협력 정신이 되살아나야 한다. 이번에 세월호가 침몰하자 주변에 있던 어선들이 다 몰려와서 많은 사람을 구해냈다. 어민들은 상부상조 전통이 몸에 배어 있어서 생업을 팽개치고 사고 현장에 달려왔다. 어민들의 도덕심이 발휘된 덕분에 대부분 생존자를 살린 셈이다.”

각자 생업에 충실하면서 이웃을 돌보고 배려하는 게 플러스 알파라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선 공무원이 서류 하나 처리하는 데 공정가격이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부패의 제도화가 관행이 됐다. 이걸 깨뜨리려면 시민이 고발하고 저항해야 한다. 사회를 뭉치게 하는 요소는 혈연과 협력이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면서 혈연보다 타인과의 협력이 더 커졌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타인과 거래하면서 신용을 쌓고 정직해진다. 시장에서 개인의 경제활동이 도덕을 향상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4) 사회 통합을 추구

<1> 세월호 이용하는 사회 분열 세력 경계


세월호 참사를 어느 누구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민주화 운동을 하다 사망한 김주열군과 박종철 열사에 비유하는 동영상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추모 동영상은 다음 내용도 담고 있다.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막말 배틀을 하는 나라, 너희들의 삶과 죽음을 단지 기념사진으로나 남기는 나라, 아니다, 이미 국가가 아니다.” “그러니 이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에 의한 타살.”

전교조가 이런 내용의 추모시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세월호 침몰 사건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가 미흡한 초동 대응으로 학생들을 제대로 구해내지 못한 점 등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사 단체가 이처럼 정치적 색채가 강한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유족들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유족들을 더 괴롭게 하는 것이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뜻있는 방향으로 승화시켜 나가야지 갈등을 부추겨서 사회 분열을 만들고 혼란을 만들면 안 된다.

<2> 참사를 사회분열로 이끌려는 반체제 세력: 유언비어(流言蜚語) 유포 경계

참사의 대략은 이미 검찰과 언론보도를 통하여 밝혀졌음에도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나―세월호의 진실』이라는 서적이 발간됐다. '진실을 요구한다'는 표현은 자신들이 그렇다고 믿는 진실을 미리 정해놓고 그걸 인정하라는 압박처럼 돼버렸다. 이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의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를 전면 부정하면서 이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또 다른 세월호의 진실이 있다고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가 급선회하던 4월 16일 8시 52분 32초 무렵, 세월호의 동남쪽 200~300m 지점에 100m가량 되는 괴물체가 레이더에 잡혔으며 이 괴물체가 잠수함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에 이어 세월호 침몰에도 '미 잠수함 충돌설'이 등장한 것이다.

책자가 지목하는 또 다른 혐의자는 국가정보원이다. "박근혜 정권의 2012년 대선 부정선거 의혹을 집요하게 파고들자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세월호를 내부에서 폭발시켜 침몰시켰다는 가설도 있다"면서 "국정원은 사건에 대한 각종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756개 단체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부터 한ㆍ미 FTA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 등에 빠지지 않던 단체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든 세월호 문제를 정부·여당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끌고 가기 위해 각종 선동을 일삼고 있다.

<3> 개인의 원한 충족보다 사회의 화목이 우선

지난 11월 7일 참사 205일 만에 세월호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날 통과된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와 유가족이 합의한대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최대 18개월 활동할 수 있는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11월 11일 세월호 참사 209일만에 정부는 실종자 가족 요청으로 “수색종료”를 선언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나머지 시신 9구에 대한 수색중단에 동의함으로써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국가적 비극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상황을 피하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실종자 가족들이 세월호 참사를 이용하려는 세력에 함께 휘둘렸다면 나라는 더 깊은 수렁에 빠졌을 것이다. 시민들의 의식과 공직자 정치지도층의 의식의 혁명적 변화가 오지 않으면 대한민국호의 침몰까지 발생할 수 있다. 선진시민의식이란 “양심에 따라 진리에 감사하는 의식체계, 즉 선진시민의식(善眞施民意識)이며, 사랑과 공평으로 행하는 의식이다.

2014년 8월 25일 흑인 청년이 거리에서 백인 경관에게 사살되면서 촉발된 미국 미주리주(州) 퍼거슨시(市) 소요가 숨진 마이클 브라운(18)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잦아들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외에도 "차분해지자"는 희생자 가족의 호소가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숨진 브라운의 아버지 마이클 브라운 시니어(36)는 장례식 전날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뿐"이라며 "그것이 내가 요청하는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도 폭력 사태가 발생하자 "멈춰라. 사건의 초점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했고, 인종차별 논쟁을 벌이던 정치권에는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평정을 유지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방송 CNN 인터뷰에선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은 폭력"이라며 "폭력은 아들의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더럽히는 것. 그런 짓을 하려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당신의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의 화목을 요구하는 태도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필요하다.

브라운의 장례식은 알 샤프턴 목사가 주도했다. 그는 마틴 루서 킹, 제시 잭슨으로 이어지는 미국 흑인 인권 운동 흐름의 주류(主流)에 있는 인물로서 인종 문제만 터지면 시위를 주도하는 인권 운동가로 유명하다. 샤프턴 목사는 이날 장례식에서 "브라운은 (자신의 일이) '폭동'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치안 유지 과정을 변화시킨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브라운의 이름을 말하지 마라. 이것은 당신의 일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성에 관한 일"이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사회통합을 위한 태도가 세월호 참사로 분열된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4> 법치(法治): 이성과 합리, 순리(順理)와 상식 추구

희생자들의 죽음을 뜻있는 방향으로 승화시켜 나가야지 갈등을 부추겨서 사회 분열을 만들고 혼란을 만들면 안 된다. 참사 초기엔 전 국민이 유가족들과 비통함을 함께하며 괴로워하고 분노했지만, 지금은 다수 국민 사이에 유가족들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등 돌리는 분위기마저 생겨났다. 유가족들은 왜 세월호 선주(船主)나 선장을 비난하지 않고 정부와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만 몰두했느냐는 지적도 많다. 정당, 언론, 학계, 시민단체, 노조 등 국가 경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세력은 개인이나 특정 그룹보다는 사회와 국가 전체를 먼저 생각해야한다. 분노보다는 구조적이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법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이성과 합리, 순리와 상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여론이 이러할 때 갈등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길이란 유족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접고 사회구성원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뜻을 굽히는 것이 사회가 통합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선진사회란 정당한 국가법과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사회다. 구성원들이 질이 높은 규범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다.

<5> 통합된 부패 방지법 입법화와 확실한 동기 후보자 공직자 채용 정책

부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경,관 그리고 권력과의 구조적인 유착과 부패에서 그 원인을 추적할 수 있는 반부패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반부패의 독립적이고 통합적인 통제 메카니즘(intergrated control mechanism)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패방지법은 거의 모든 부처에 설치되어 있어서 다원적 체계이며 완벽한 제도적 장치인 것처럼 보이나 효과성이 결여된 정책이다. 최근 제안된 김영란법도 부패방지법의 하나로서 공직금품의 비대가성도 처벌한다는 내용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김영란 법은 부패처벌 위주이며 방지에 초점을 둔 법으로는 미흡하다. 한국부패학 초대회장 김영종은 통합된 부패방지법의 입법화를 제시한다. 이는 부패 교육, 예방과 사후 처벌의 양면 정책이다. 이러한 부패방지망과 더불어 사회부패망을 치유하는 길로 동기가 확실한 후보자를 공직자로 채용하는 정책전환을 제시하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IV. 한국교회의 새로운 태도: 사회의 근본 가치관의 보루 각성과 실천

이러한 재난 대책에는 단지 사회학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실존적 상황과 연결된 종교적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인간이 스스로 쳐 놓은 의미의 거미줄망이 있는데, 그 망의 원천은 종교이기에 종교를 깊이 생각해야 하고, 이런 성찰을 잃어버리면 카오스의 세계로 떨어진다. 글로벌 재난의 시대에 재난과 죽음의 현실을 깊이 성찰하면서 종교가 가진 역할인 치유의 힘과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사회적 투명성은 신학적 명제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기독교 공동체 교회의 핵심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태도가 성찰되어야 한다.

 

 

1) 새로운 가치관, “탈바꿈” 제시

2014년 7월 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해방적 파국, 기후변화와 위험사회에 던지는 함의'라는 주제 강연에서 “탈바꿈”(Verwandlung)이라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제시하였다. 벡에 의하면 오늘날 인간들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정 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 변화의 시대에서, 근대화는 진보에 관한 것도 아니며, 대재앙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잘못된 대안일 뿐이다. 그것은 “중간(in-between)”에 관한 것이다. 기후변화는 우리들에게 해방적 파국(Emancipatory Catastrophism)을 가져왔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는 전(全)세계의 탈바꿈 또는 획기적인 변혁인 “탈바꿈”의 개념을 제안한다. 탈바꿈은 위협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을 통해서 과거가 다시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위협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을 통해서 과거에 결정을 인도하였던 규범 및 책무가 문제로 제기되어, 재평가되고 있다. 그것으로부터 자본주의, 법률, 소비자 중심주의, 과학 등에 대한 대안적 구상, 예를 들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IPCC,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등이 이어지고 있다.

사소한 도덕률을 지키려는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가래침 뱉지 않기, 공원에서 삼겹살 굽지 않기, 공중목욕탕에서 물 아겨쓰기, 음식점에서 아이들 뛰어다니지 못하게 하기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도덕 법규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 사회는 도덕 재무장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번처럼 아파트 공동난방비 부담 불균형에 대하여 지적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옆에서 한마디 거들어주기라도 하면 된다. 샬롬나비가 이러한 운동이 확산되도록 하나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생명 존엄성 사상

예수님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천하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소자, 소외자의 인격과 인권을 소중하다고 말씀하신다. 지극히 작은 자들의 천사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고 천명하신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그래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소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신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으로 말씀하신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b). 사도 바울이 로마로 호송될 때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 위기에 몰렸다. 바울은 먼저 짐부터 바다에 버리라고 요구했다. 결국 모두를 살린 것은 생명을 가장 먼저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울이었다.

<2> 십자가 신앙

희생자 유족들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또는 "하필 왜 내 자식을 데려갔느냐"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번영과 성공의 신앙으로는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하나님, 왜 날 버리십니까?'라며 항의를 했다. 하나님은 침묵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아들과 함께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울고 계신다. 이러한 사실은 죽은 예수가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보여졌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아들 가운데 보이지 않는 침묵 가운데서 계신 것이다.

 

 

2) 소금과 빛의 리더십 실천

<1> 교회 지도자들의 솔선수범과 언행일치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이번 방한한 교황으로부터 솔선수범과 언행일치의 리더십을 배울 필요가 있다. 교황은 그렇게 스스로 검약을 실천하면서 교회와 성직자, 수도자 등 '집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희가 제 역할을 똑바로 하고 있느냐"고 질타하였다. 그는 양(羊)에게는 따뜻하고, 목자(牧者)에게는 따끔한 리더다. 공자가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哀而不傷)'고 했듯이, 우리는 너무 슬퍼하지만 말고 다시 삶을 계속해야 한다. 루스벨트가 대공황이 닥치자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한 것이야말로 이번에 우리가 참고할 만한 태도이다.

<2> 중재의 리더십: 절대 갈등의 당사자가 되지 않는다

교회는 여태까지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이 보여준 것 같이 스스로 갈등의 당사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함께 평화를 고민할 여지를 남겨야 한다. 그리하여 중재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너무 좌로 치우쳐 사회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며, 극단한 보수주의자들은 너무 우로 치우쳐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3> 슬픈 자들과 울어줌

한국교회는 슬픈자들과 같이 울어주어야 한다. 세월호법 통과가 진통을 겪은 이유는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구조과정에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신뢰상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철수 멘토'로 불린 윤여준 전의원의 멘트도 참작할만하다. “근본적으론 불신 때문이다. 유족이 정부를 안 믿는다. 큰 사건 날 때마다 새누리당이 필사적으로 진상규명 안 하려고 하는 걸 국민들이 다 봤다. 세월호 침몰 때도 국가가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고 수습 과정에서도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조했지만 그렇게 진상규명에 애쓰는 모습을 안 보이니까 분노하고 불신하는 것이다. 이래선 끝없는 평행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수습의 과정은 의회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서 해야 한다.“ 앞으로 특별법 시행과정에서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조금은 양보, 포용하는 생각을 해주면 좋겠다.

3) 개혁주의 시민정신, 사회의 기본 가치관 심기

품위를 갖추고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는 '기독교 양반'이 한국 기독교인의 모델로서 필요하다. "기독교인은 영성과 도덕성, 공동체성을 고루 갖춰야 한다. 교회는 나오는데 도덕성은 예전과 다름없고, 사회에서 비윤리적으로 산다면 이건 잘못된 믿음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정기적으로 종교 신뢰도 조사를 하는데, 기독교가 바닥이다. 교회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책임감, 윤리의식을 갖춘 의인들을 길러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물질을 나누는 사랑의 성례전 행위를 해야 한다.

4) 건전한 시민운동 지원: 19세기 영국의 클라팜파(派)(the Clapham)

교회는 사회를 향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단지 설교단과 교회내의 봉사단에 그치지 않고 보다 사회구조의 변혁을 위하여 기독교 시민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도 경실연(1989), 환경연합(1993), 참여연대(1994) 등 시민단체들이 설립되어 반부패법, 환경법, 경제정의법 등의 입법과정에서 사회투명성을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함으로서 시민단체의 존재와 기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시민단체는 국가와 기업 사이에 제3의 기구로서 국가의 권력과 기업의 탐욕이 결합하는 정경유착을 견제하여 사회적 투명성과 부패망 방지의 역할을 한다. 이들 시민단체들이 국가나 기업의 지원을 받으면 투명성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이해관계와 무관한 교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 영국의 클라팜파(派)(the Clapham)은 웨슬리 다음 세대인 월버포스(William Wilberforce)를 정신적 지주로 하는 복음주의 정신을 지닌 사회운동모임였다. 당시 클라팜파는 부유한 귀족들이었으나 기독교 신자들로서 의회와 언론에서는 성도당(聖徒黨, the saints)이라고 조롱을 받았다. 영국의 클라팜파 친구들은 “점차 놀라운 친밀함과 유대감으로 굳게 밀착되었다. 그들은 결코 해산되지 않는 위원회처럼 계획을 세우고 일했다. 이들은 클라팜(Clapham) 지역의 대저택들에서 공동의 관심사의 욕구를 지니고 모였는데, 그 모임을 자신들의 ‘내각회의’라고 부르면서 조국의 치욕인 악과 불의에 대해, 그 의를 확립하기 위해 치러야할 싸움에 대해 논했다.”

이들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을 느끼게 하고 실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은 강한 복음주의 신앙이었다. 이들은 후한 자선을 베풀었고, 노예문제 외에 형벌와 의회법 개혁, 주일학교, 소책자, 크리스천 옵저버 신문 발간 등 대중교육, 식민지 인도에 대한 영국의 의무, 성서공회와 교회선교회 설립지원, 공장에 관련된 법률제정, 결투, 도박, 음주, 동물을 이용한 잔인한 스포츠 금지 캠페인 등을 벌렸다. 이들이 한 결정적인 공헌은 1807년 노예매매제도를 폐지시키고, 1820년 노예들을 식민지에 등록시키고, 그로 인해 1833년 노예밀매매가 종식되고 마침내 노예들이 해방된 것이었다. 이들의 노력에 의하여 19세기에 노예제와 노예무역이 폐지되었고, 감옥제도가 인간다워졌으며, 공장과 광산의 환경이 개선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교육을 받게 되었고, 노동조합이 생겨났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새로운 사회적 양심에서 유래했으며”이 사회적 양심은 “생동감있고, 실제적인 기독교의 복음주의 부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샬롬나비운동이 오늘날 이러한 사명을 감당했으면 한다.

5) 사회 통합의 역할

<1> 트라우마(trauma)에 깊이 빠져 있지만 말고 새로운 사회 건설로 이끌자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哀而不傷)'고 한 공자의 말처럼 슬픔이 너무 격해지고 오래가면 건전하지 못하다. 사람들이 정부 관계자들 탓을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 참사에서 사회 건강 회복으로 논의의 방향을 옮기는 게 바람직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 전체가 아주 몹쓸 세상, 희망 없는 세상이라는 절망감만 있다." "이 절망감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에겐 친구를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기꺼이 벗어준 학생들, 자신보다 승객을 먼저 생각한 박지영씨 같은 의인들이 있다".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 덕분에 이 나라가 이만큼 지탱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웃과 사회에 대한 헌신과 봉사, 책임감으로 무장한 의인(義人)들을 키우는 터전이 돼야 한다"

<2> 증오하지 말고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이끌자

세월호 참사 후 진도 팽목항 부근에 민주노총의 선전물이 등장했다. '슬픔을 넘어 분노하라.' '이런 대통령 필요 없다.' 한 철학자는 신문 기고에서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고 자극했다. 직업윤리를 내팽개친 선장과 선원, 부실 항해를 조장한 해운사, 구조 활동에 무능력했던 공권력은 모두 분노의 대상이다.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지 않으면 무기력이 사회를 지배할 따름이다. 그러나 분노는 증오(憎惡)와 다르다.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분노는 필요하지만 분노가 증오로, 폭언과 폭력으로 번지면 세상은 더 황폐해진다. 희생자들도 그걸 바라진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이들과 그 가족들이 진정 바라는 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서로 사랑하고 돕고 책임지는 사회가 아닐까.

가라앉는 세월호 안에서 희생자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도 비슷했다. '엄마, 내가 말 못 할까 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 '왜? 나도 아들~~ 사랑한다.' '어떡해, 엄마 사랑해.' '우리 진짜 기울 것 같아. 애들아 진짜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다 용서해 줘. 사랑한다.' '사랑해, 고마워.' 증오의 언어는 내려놓아야 한다. 사랑의 언어가 힘이 더 세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불의에 저항하고 낮은 자들을 섬기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도덕적으로 침몰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바른 윤리의 지향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청소년들을, 지금의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미래를 여는, 건강한 정신을 소유한 꿈나무들로 세우는데 앞장서야 한다.

<3> 공공성 의식 각성하고 실천: 책임윤리

현대 사회에서는 나의 행동이 미칠 영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동기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비도덕적인 것”이다. 동기도 좋아야겠지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윤리(책임윤리, responsible ethics)를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공성”이다. 신앙이 자기 구원으로 끝나지 않고 이웃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윤리가 공공성으로 나타나야 한다. 더욱이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적인 가치관과 생활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변칙을 재주로 생각하고 그것을 영웅시하는 풍조를 지양하고 땀을 흘려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성공하고 인정받는 풍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것을 사회적으로 앞세우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

 

 

맺음말

지난 10월 31일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협상이 타결된 후 그동안 200일의 비합리, 비정상 상황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를 한 걸음 앞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작업들을 차분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거의 대부분 드러났다. 돈에 눈이 먼 선사(船社)의 불법 증축과 과적, 운항 미숙이 사고를 불렀고 선장과 선원, 정부와 해경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고 수습이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데도 유족들이 거듭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에 국민이 동의하는 이유는 한 점 의혹도 없게 하자는 뜻에서다. 지나치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참사를 정치적 문제로 변질시킬 수 있다. 이제 매듭 짓고 망각해서는 않된다. 아픈 기억 놓아버리면 '알츠하이머 사회'로 굴러가며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기억을 제도화시키야 한다. 사회의 시스템을 투명한 법치로 바꾸어야 한다. 참된 정의가 실현되는 윤리적인 토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안전사회의 길이다.

시스템과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수준 이하의 사회 구조를 방치해 온 지도층의 통절한 자기반성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어려운 시기에 고통을 분담하고 단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질 우선이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한국사회를 인치가 아니라 법치의 투명한 사회로 혁신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민주화 이후 20년 넘게 공리공담(空理空談)과 정파적 이해에 사로잡혀 선진국 진입에 필요한 사회적·정신적 토대를 쌓는 데 실패했다. 이에 예언자 사명을 감당해야 할 한국교회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에 광야의 한 목소리로 5년 전에 샬롬나비 시민운동이 출발한 것이다. 그리하여 '압축적 근대화'의 부정적 유산을 넘어서는 혁신 운동에 앞장서는 것이 나라를 절망의 늪에서 건져올리는 길이다. 그들이 이념과 당파의 차이를 넘어 "내 탓이오!" “감사, 나눔, 섬김”이라는 시민운동을 전개해온 샬롬나비의 정신을 확신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위의 내용은 샬롬나비가 2014년 11월 28일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을 주제로 개최한 제9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주최 측의 자료 제공으로 서비스하지만 해당 게시물의 저작권 및 법적 권한은 제공자 측에 있음을 밝힙니다. 내용의 원할한 게재를 위해 각주 및 참고문헌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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