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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보수화, ‘반공ㆍ자본주의ㆍ신학 부재ㆍ세속화’가 원인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8:36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형원 원장, 한국교회 연중포럼서 발표

 

 

<한국 교회 보수화의 원인과 결과>

 

1. 이데올로기의 영향

 

한국 교회 보수화의 첫 번째 원인은 반공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반공주의>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촉발된 좌우 대립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항일운동도 좌우가 각자 전개했고,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에 들어온 미국 출신의 선교사들은 미국의 반공주의적 성향을 그대로 한국 교회에 이식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목사나 신학자, 기독교인 출신의 사회정치적 지도자들도 역시 반공주의에 영향을 받아 좌우 대립국면에서 우익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해방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할 통치는 극심한 좌우 대립을 불러왔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빠르게 안정됐지만 남한에서는 양쪽 모두 테러와 암살을 자행하며 타협할 수 없는 대립으로 치닫게 됐다. 결국 이승만에 의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반민특위가 친일파와 우익의 합작으로 무산되면서 남한 사회는 반공주의 색채를 강하게 띠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전쟁은 남한 사회에서 공산세력에 대해 극단적인 증오심을 낳게 했고, 그들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악마의 세력으로 규정됐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공산주의 세력은 악마와 같은 존재가 됐다.

 

한국전쟁 와중에 공산주의 세력들에게 직접적으로 처형당하고, 고난을 당했던 경험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세력을 거의 적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다. 전쟁 후 남북 대치상황이 지속되면서 반공주의는 한국기독교의 신조처럼 자리잡게 됐다.

 

남한의 기독교회는 공산주의와 유사한 그 어떤 체제(사회주의 계열)나 그런 체제를 지지하는 세력(진보적 세력)을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배척하게 됐다. 지금도 이들을 무조건 ‘빨갱이’나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는데 동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반사회주의와 친 자본주의>

 

북한에 대한 반대는 북한이 채택하고 있는 공산주의적 경제체제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고, 그 결과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면서 공산주의와 유사한 사회주의적 흐름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를 택한 나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큰 틀에서는 자본주의를 유지하지만 점차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 폐해들을 교정해나가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들과 한국 교회 보수 세력들은 사회주의와 대립하던 시절의 자본주의, 화석화된 자본주의에 집착하는 등 맹목적인 상황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자연스럽게 경제를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게 되고, 경제 발전에 도움이 안되거나 장애가 된다고 인식되는 다른 가치들은 무시하게 된다. 결국 진보적인 사회사상보다는 보수적인 사회사상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치적 보수 세력과 결탁>

 

반공주의와 친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동일한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수구적인 친일-독재 세력과 동질의식을 형성하게 했고, 그들과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게 됐다.

 

첫째 단계에서는 반공, 친미, 자본주의라는 매개체로 하나로 결합됐다. 이승만은 남한만의 정부를 수립하면서 그것을 반대했던 김구를 비롯한 상해 임시정부 인사들을 배제하기 위해 친미, 친일 세력들과 손을 잡고, 그들을 사회 모든 부문의 요직에 끌어 들였다.

 

남북으로 분리된 한반도의 상황을 자신을 세력 확장의 도구로 삼기 위해 강한 반공을 기치로 내세웠으며, 한국전쟁 후 그들의 독재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역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이승만이 등용한 친일 세력들을 여전히 중용했다. 강한 반공정책을 내세우면서 북한과 무한 대립경쟁을 펼쳤다.

 

이들에게 가장 우호적인 집단은 김일성 공산주의 세력의 탄압으로 월남한 이북 출신의 기독교인들이다. 반공은 이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교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서 반공주의를 내건 세력들은 민주 정부든, 독재 정부든 상관하지 않고 지지할 준비가 됐다.

 

이렇게 해서 수구적인 반공-친일-독재 세력과 한국 보수교회의 강한 유대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둘째 단계는 반공-친일-독재 세력과의 밀접한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서 한국 보수교회는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한국 교회를 지키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그 결과 거의 맹목적으로 보수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입장을 갖게 됐다. 그 결과 반민주적 독재와 수많은 부정부패, 그리고 정의를 파괴하는 불의를 눈감아주는 행태를 초래했다. 지나친 ‘진영 논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 보수교회는 정권의 불의가 극심한 결과로 위기에 몰릴 때마다 보수 정권의 적극적인 지지자요 보호막으로 자처하고 나선다. 사사오입 개헌을 지지하고, 유신 헌법을 지지하고, 전두환과 국보위를 축복하고, 광우병 촛불집회를 비판하고, 4대강 사업을 지지하고, 세월호 참사로 궁지에 몰린 정부를 보호하려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종북으로 몰아넣고 있다.

 

셋째 단계는 반공-친일-독재 세력이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권력집단을 형성하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때로는 함께 발을 맞췄던 한국의 보수교회는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나눠 갖는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보수교회 내에서 이미 이들과 더불어 권력집단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유학의 기회를 얻어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해방 후 친미주의자였던 이승만이 정권을 잡자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저인 위치를 점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권력층으로 부상했다.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사회문화적으로 선도적인 그룹이 되면서 한국 사회의 중상류층이 교회 내로 많이 유입됐다.

 

교회도 몸집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교회 성장과 교인들의 사회적 계층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권력집단으로 부상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집단에 의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반공이라는 기치로 하나가 됐기 때문에 보수 정치세력은 보수 교회의 지지를 받은 만큼 보수 교회를 도와줬다. 대형 교회와 교단의 유력한 목사들이 보수적 독재 정권과 결탁하면서 기득권층을 형성했고, 두 세력은 서로의 이익을 채워주고, 지원해주고, 나눠 갖는 ‘이익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됐다.

 

2. 신학적 요인

 

한국 교회가 보수화가 된 데에는 신학적인 요인도 있다.

 

<내세적 천국관>

 

한국 보수 교회에서 가르쳐 온 천국은 멸망할 이 세상을 떠나서 가게 되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곳이었다. 이 세상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아 하늘로 들어 올려서 어디인지 잘 모르지만 이 세상이 아닌 멋진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나라 신학에 대해 최근까지도 거의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다. 하나님나라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장소로만 생각한다. 하나님나라를 내세적 장소로만 생각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염세적 현세관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사람을 구원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사회적으로 무관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됐다.

 

결국 내세지향적이고 현실을 부정하는 신앙은 현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고, 그것은 변화를 의미 없다고 여기는 보수적인 사상을 따르게 만든다. 한국 교회 다수의 모습이다.

 

<창조신학의 부재>

 

모든 창조물은 귀한 존재다. 그 나름의 목적이 있고, 가치가 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과 만물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와 유사한 것이 된다. 모든 피조물은 일종의 형제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가족처럼 공존하고, 상호 의존하는 존재들로 만들어졌다.

 

창조신학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현재 한국 교회가 견지하고 있는 인간중심적 창조신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다른 피조물을 얼마든지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 등이 모두 하나님의 창조신학과 어긋난다. 이런 신학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보수주의와 만나게 된다.

 

즉,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얼마든지 자연에 손댈 수 있고, 경제 발전이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만물을 얼마든지 이용하고, 변형하고, 파헤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고귀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권력자들은 무한한 욕심으로 사회에서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들을 차별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고, 그 결과는 멸망이었다.

 

한국 교회도 기본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고위층의 인간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만 고귀하게 여기며, 그래서 그들만 구원하셨다고 생각하면서 타종교나 타종교인을 무례하고 모욕적으로 대한다. 또한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본인의 능력 탓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우리 모두가 서로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 원리를 근간으로 삼고, 능력에 따른 차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적 사회관을 낳는다.

 

모든 인간이 고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종과 성별과 빈부의 차이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의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정부권력의 속성과 정교분리에 대한 오해>

 

한국 보수 교회는 정부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롬 13:1~7, 벧전 2:13~14절을 근거구절로 자주 인용했다. 어떤 형태의 정부든, 정의롭든 불의하든, 그 권력은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권력자에게 무제한의 복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부 권력의 속성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가르침이다. 성경은 정부의 권위에 대해 인정하지만 그 권위는 하나님에 의한 범위가 제한된 권위라고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의 행사는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권력의 범위와 조건을 제정하셨다.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정의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다. 국가의 권력은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을 구원하고,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벌주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세워주신 목적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정부는 더 이상 하나님의 권위를 주장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정부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과 짝을 이루는 가르침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오직 종교적인 일에만 관심을 쏟고,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정교분리 신학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그리스도인이 사회-정치 문제에 관여해서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원론적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정교분리의 정확한 의미는 정치와 종교의 야합으로 인한 권력의 절대화를 방지하고, 특정 종교에 대한 정치적 우대나 억압을 막으며, 종교 선택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종교가 정부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침묵으로 동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항거할 수도 있는 것이며, 그런 행동이 정교분리라는 이름으로 정죄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한국 보수 교회의 신자들은 여전히 정부에 무조건 복종하고, 정부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 이런 가르침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 선교사들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후 조선총독부는 독립운동에 관여한 선교사들을 내쫓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오직 종교적인 활동만 하겠다고 약속한 선교사만 남겨뒀다.

 

결국 그들은 다수의 한국 교회 목사들과 더불어 정교분리 신학을 가르쳤다. 이것이 독재시대에도 계속 이어졌고, 신자들은 어떤 잔악하고 불의한 정권이라도 지지하고 순종해야 하며, 그들이 펼치는 정책에 동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수십 년에 걸친 보수 독재 정권과 한국 교회가 결탁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죄에 대한 왜곡된 신학>

 

한국 교회는 죄에 대한 신학이 편향돼 있다. 거의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의 죄다. 그러나 성경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죄에 대해서도 많이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개인적인 죄만을 강조하면 성경이 죄라고 말하고 있는 사회적인 불평등과 억압, 정치적인 박해, 경제적인 불공평, 가난한 자들을 착취해 부를 축적하는 것과 같은 내용을 죄의 목록에서 제거해버리게 된다.

 

개인적인 죄만 강조하고,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가르쳐왔던 죄에 대한 신학이다. 죄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면 세상의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면서 사회구조적 모순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가난의 문제도 개인의 문제로만 파악하고, 평화도 개인 사이의 관계로만 이해하며, 정의도 범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하는 응보적 정의만 생각하면서 사회적 차원의 공평함인아 구조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교정해야 한다는 관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

 

<보수적 교회관>

 

외부에서 볼 때 교회는 매우 권위적이고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집단으로 비친다. 그러나 교회 내부의 입장에서 볼 때, 특히 목사의 눈으로 볼 때는 교회의 이런 형태는 성경적으로 보인다.

 

오히려 교회 외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에 대한 요구나 인권신장에 대한 노력들을 교회에 위협적인 것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교회가 안정을 유지하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보수적인 모습으로 머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교회의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상이다. 목사의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적으로 교호를 운영하도록 요구하고, 교회 내 여성의 인권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교회의 일꾼들도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요구에 대항해 보수적인 교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신본주의를 거부하는 인본주의적 우상으로 간주한다. 인권에 대한 요구도 신권에 대한 도전이며, 인간의 죄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추비하면서 이런 것들은 신학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보수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사회윤리의 부재>

 

한국의 보수 교회는 윤리적 삶에 대한 강조가 약하다. 개인윤리만을 강조하던 경향이 심했던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윤리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인다.

 

정의로운 경제시스템의 구축, 빈곤층을 위한 복지제도, 평화를 위한 활동, 자연환경의 존중 등 구조적이고 적극적이며 사회적인 윤리는 영혼 구원이 아니라 사회를 구원하려는 시도로 인식한다.

 

사회윤리적인 이슈들은 사회에서 주로 진보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의제들이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정의에 대해 거의 강조를 하지 않는다. 이를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교회들이 왜 사회에서도 보수주의자들로 나타나고, 왜 보수주의자들과 손을 잡게 되는지,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이유를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3. 세속화

 

한국 교회가 보수화의 길로 간 세 번째 요인이 바로 세속화다.

 

한국 교회는 교회 성장이라는 벽 앞에서 빠르게 세속화의 길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진보적인 교회들이 사회정의와 민주화에 힘을 쏟는 동안 보수 교회들은 경제일변도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제적 성공, 건강, 가족의 평안함 같은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욕구를 채워주는데 힘을 기울였고, 큰 성장을 이뤘다.

 

이렇게 세속화 전략을 통해 부흥을 이루어낸 교회에는 교인수가 많아짐에 따라 돈도 모이게 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힘이다.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돼 돈이 많아진 교회는 세상에서 권력이 생긴다.

 

권력집단으로 변한 교회는 더욱 권력의 확대를 꾀하고, 한번 쥔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회의 변화를 싫어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변하게 되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보수화를 초래한다. 교회 성장 전략과 더불어 돈과 권력의 생성은 한국 교회를 보수화의 길로 몰아가는 주요한 원인이 됐다.

 

어떤 종교든 세력이 커지면 예외 없이 권력의 길을 가게 된다. 교회 성장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교회성장주의는 기복신앙을 더욱 촉진하게 된다. 교회가 마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물건을 파는 상점으로 변하는 것이다.

 

성공, 출세, 부유함, 건강, 야망의 실현, 가족이기주의, 편안한 삶, 물질주의, 과시욕구 등은 이제 세상 사람들의 특징이 아니라 교회 내 익숙한 풍경이 됐다. 특별새벽기도회라는 이름으로 기복신앙을 부추기고, 축복대성회라는 이름으로 욕구 충족을 내세우며,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를 통해 정화수 기도를 현대적으로 부활시켰다.

 

결론적으로 기복신앙으로 대표되는 교회의 세속화는 교회를 보수적인 집단으로 이끌어갔고, 세상 속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의 동지가 되게 만들었다.

 

4. 보수화의 결과

 

첫째, 한국 교회 보수화는 교회 타락의 원인이다. 한국 교회 보수화는 세속화, 권력화, 물질주의화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진행됐다. 필연적으로 한국 기독교의 기복신앙화를 초래한다.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기려는 욕구이며, 혼합주의적 시도다.

 

보수주의는 현실주의와 맞닿아 있다. 현실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한국 교회가 교인수를 늘리고, 돈을 더 끌어 모으고, 세상에서 더 많은 권력을 쥐려고 할 때, 그들은 철저한 현실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나라의 이상은 뒤로 밀려난다.

 

호화 예배당 건립, 목사들의 재정 비리, 교회 세습, 부정부패에 연루돼 지탄받는 장로들의 양산과 같은 온갖 폐해들은 교회 세속화, 보수화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둘째, 한국 교회 보수화는 기독교 쇠퇴의 원인이다.

 

교회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유해지고 권력을 행사하려고 결심하는 순간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현재 한국개신교의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는 여전히 보수적 행보를 가속화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의식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자기 이익을 위해 권력지향적이고 물질적인 행보를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선교의 문이 막히고 있고, 교인들에게도 환멸을 느께게 해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선교를 해야 할 주체가 선교의 장애물로 전락한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성경이 강조하는 것을 동등하게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핵심 메시지를 살피고, 성경을 겸손하게 연구한 결실인 신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의 모습과 그 사회를 지탱해야 하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재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치들로 세상의 이데올로기와 세속화의 흐름을 판단해야 한다. 그럴 때 진영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세속적 욕심을 벗어버리는 해방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회복하는 길이며, 한국사회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방안이고, 교회에 등을 돌렸던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돌려세울 수 있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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