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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갱신과 개혁의 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7 18:34

혜암신학연구소, ‘종교개혁의 만인사제론과 평신도의 사명’ 주제로 ‘제4회 공개강연회’ 개최

 

 

 

# 교회 갱신과 개혁을 위한 변혁의 힘은 평신도들에게 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위기 상황에서 교회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모두가 입을 모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교회 갱신과 개혁을 가능하도록 추진할 변혁의 힘은 목사들이나 전문 신학자들에게서 나오리라고 기대하기보다는 신실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나온다. 특히 평신도들의 참여와 공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 교회 개혁의 성패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절감하는 평신도 지도자들과 평신도 전체의 대거 참여의식, 그리고 ‘책임과 권리’를 담보하는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열매 없는 무성한 나뭇잎들의 ‘소리잔치’로 끝날 위험이 많다. 따라서 ‘만인제사장’으로서의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튼 루터의 교회론 핵심은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교회 개념이다. 루터의 만인제사직론은 이 교회론 위에 서 있고, 그 교회론 위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루터의 만인사제론이 말하려는 핵심은 “교회의 모든 직분들은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단지 각자가 받은 은사와 기능에 따라서 구별될 뿐이다. … 사제계급과 평신도의 계급적 구분이 철폐되었고, 성속의 이원론적 구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신도의 권리만이 아니라 그만큼 책임이 더해진다. 교회 부패와 타락은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특히 오늘날 개신교 타락의 원인 중 하나는 목사들의 성직자로서의 자기의식이 구약시대 제사장들의 자기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중세 성직자 계급 못지않은 특권의식, 사목적 권력행사, 전제적 지배체제 구축과 교회운영, 비판을 불허하는 신성불가침주장 등의 허위의식에 있다.결국 루터의 ‘만인사제직론’의 신학적 담론의 명제는 소극적으로 루터 당시 가톨릭 교회의 부패한 성직자들의 특별사제직을 거부하는 논쟁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교직자(안수받은 성직자)에게 맡겨진 구별된 책임(설교, 성만찬 집례, 성경교육 등)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신도들의 공동책임이요, 공동권리이지만 그것을 교직자는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신도공동체를 ‘대리’하여, 그리고 신도공동체의 ‘위임’을 받아 수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는 교회운영의 성직자 독단과 비리 부패, 목회자의 성적 타락과 도덕성 피폐, 교회대형화에 따르는 세습과 성직매매 현상, 헌금으로 조성된 교회재정의 불투명성과 오남용, 개교회 중심주의와 교파분열 및 배타적 선교정책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

한국 교회는 깊은 병에 걸려 있는 중환자 같다. 각종 집회에서 신앙적 회개 다짐, 성경과 하나님 신앙으로 돌아가기, 성직자 맘 비우기 등 원론적인 이야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처방과 실천 대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 교회 개혁 가능성의 효율적-실천적 대안으로서 루터의 ‘만인사제직론’에 근거해서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개혁참여가 필요하다.

첫째, 교회개혁 주체로서 평신도 권리강화가 시급하다. 평신도는 목회의 대상이거나 영적 교육의 피교육자만이 아니다.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핵심주체로서 보편적 사제직, 혹은 공동사제직을 갖고, 교회 개혁과 성장과 쇄신에 주인공으로 나서야 한다.

둘째, 교회조직 구성의 평신도 참여의 제도적 보장이다.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신도, 청년, 여성, 남녀 성비에 따라 각 회의에 구성적으로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고, 발언과 정책결정이 가능한 구조로 개혁되어야 한다.

셋째, 평신도 지도자 교육과정을 신설해야 한다. 만인사제직론은 안수받은 교직자(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서 권리다툼하는 이론이 아니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동반자이다. ‘만인사제직’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 각 교단은 평신도 지도자 교육과정을 제도적으로 강화하고, 준비된 평신도들을 육성해야 한다.

넷째, 목회자의 교회재정 관여 금지다. 교역자는 복음증언의 설교, 성만찬의 바른 집례, 은혜로운 성경교육 등 본무에 전념하게 하고, 일체의 교회 재정운영과 헌금관리에 관여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다섯째, 성직자 재위임 제도 정례화다. 교직자와 교회장로들의 7년 마다 재신임을 묻는 교회법 제정을 일반화해야 한다. 성직자의 목회위임제도는 주님으로부터는 ‘대리’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는 ‘위임’의 성격이 짙은 것이다.

여섯째, 에큐메니칼 교회론 회복이다.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라는 교회의 본래 표지 혹은 본래 속성을 회복해야 한다.

일곱째, 잠재적 평신도 인적 자원 활용이다. 한국 교회 안에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귀중한 인적 자원이 많다. 그들의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동원하고 결합해 ‘계몽시대 이전 상태에 머물고 있는 한국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희망공동체’로 변혁시키는데 공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경재>

# 한국 교회 문제에 대해 성도들도 공동의 책임의식 가져야

루터는 당시 로마가톨릭 교회가 구약 유대교의 제사장 개념을 끌어와서 성직자(제사장)의 신분과 특권을 강화하고, 교황과 사제들의 직분을 계급화하고, 하나님의 복음사역 공간에 평신도의 역할을 소외시킴으로써 직분의 특권을 남용하고 있을 때, 만인제사장 교리로 그 직분의 왜곡과 남용을 바롷 잡아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만인제사장 교리는 성경적 근거(출 19:46 / 사 61:6 / 벧전 2:5, 9 / 계 1:5~6, 5:9~10, 20:6 등)를 갖고 있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한다.

루터에게서 이해된 종교개혁의 만인제사장 교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다 제사장들로 부름을 받은 신적 신분과 권위를 지닌 동등한 존재들임을 전제하고 있으며, 특히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의 동등성과 함께 그 직분의 역할은 교회를 중심해 전개되어야 하는 말씀사역에 집중된 다양한 활동들로 이해됐다.

만인제사장 교리는 이신칭의 교리와 함께 종교개혁이 보여준 중요한 기독교구원 교리에 속한 신학적인 주제이지만 역시 교회라는 목회현장을 통해 활동해야 하는 교회직분자의 역할과 관계된 것으로써 실천신학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만인제사장 교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세례를 통해 얻게 되는 제사장으로서의 신적 신분의 은혜를 말한다. 제사장 직분의 개방성은 교회 내적으로 성도 간에, 또는 목사의 직분이나 그 외의 구별된 다양한 직분자들과의 관계에서 제사장적인 기능수행이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난한 자들을 돕는 선행 등의 일들에서 만인제사장직의 개방적인 역할은 실현될 수 있다.

만인제사장 교리가 보여준 실천신학적인 또 하나의 의미는 직분의 동등성이다. 종교개혁은 잘못된 교회의 직분구조에서 파생되는 직분의 수직적, 계급적 구조를 개혁하고, 직분의 동등성의 의이를 밝혀주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 내에서 가장 큰 갈등구조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목사와 장로, 집사와 권사와 일반 신도와의 신분 관계가 여전히 계급적이며, 수직적인 관계로 이해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교회 직분의 대의는 ‘교회 내에 있는 하나의 직분을 섬기기 위해 여러 직분을 세운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목사와 평신도의 관계는 협력관계가 되어야 한다. 목사와 평신도의 관계가 더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려면 목사가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겸손히 인격적인 의사소통의 리더십으로 서로를 섬기는 관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 제사장 직분의 남용은 교회의 수적 성장을 지향했던 성장제일주의 목회철학에서부터 비롯됐다. 교회성장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샤머니즘에 뿌리를 둔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것이다. 목회자는 예수를 잘 믿으면 돈, 권력, 명성 등 세속적인 것들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믿게 했다.

그리고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회자를 비롯해 교회의 태도가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교회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목회자에게는 교회의 수적 성장이 목회 성공이고, 성도들에게는 개인의 부유함과 강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풍토가 생겨났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목사는 축복기도의 주인공이 됐다. 목사의 기도는 신령하며,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자로 부각됐다. 목사는 축복을 하는 자, 평신도들은 축복을 받아야 하는 피축복자로 전락했다. 결국 중세 로마가톨릭 시대의 사제주의와도 같이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독재주의에 빠지게 됐다.

당회장권, 강단권, 설교권, 목양권, 축도권, 안수권 등의 이름으로 목회자들은 제사장적 기능을 특수화하고, 교권을 강화했다. 결국 목사의 교권남용은 교회재정 횡령, 목회세습,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 등 비도덕적인 문제들로 나타나게 됐다.

특히 신자들에게 목사들의 기도에 특별한 권능이 있는 것처럼 믿게 했고, 목사는 교인들에게 절대순종을 강요하며, 순종하지 않고 대항하면 벌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평신도들의 우민화정책을 수행했다.

이와 같은 한국 교회의 위기 속에서 평신도들의 사명과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평신도들은 자신이 한국 교회 제사장들로 부름 받은 신분임을 확신하고, 한국 교회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지역 교회를 섬기는 자로서, 복음전파의 역군으로서, 이웃을 향한 사회봉사의 역군으로서 사명과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복음의 사회윤리적인 책임, 교회연합운동의 주역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 평신도들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목사들의 교권남용은 목사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역시 평신도들도 제사장으로서 목사의 교권남용을 방치한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이 시대 하나님 나라와 한국 교회를 위해 부여된 사명과 역할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그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평신도 제사장들이 다 되어야 한다. <정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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