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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설교자의 자기기만, 성령의 일하심과 능력 가로막는 '치명적 약점'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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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연구(17) *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제29회 정기학술대회서 김지혁 박사 주장

 

2015년 5월 9일 기사

 

“사람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자기를 기만하지 않는다. 인정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도덕적 의무감을 회피하기 위해서, 또는 습관적이고 은밀한 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기 위해서 자기를 기만한다. 틸리케는 자기기만은 자기 자신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부인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설교자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보다 설교자의 자기기만은 설교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윤리적 덕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자기기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가 지난 5월 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창신교회에서 개최한 ‘제29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설교자의 자기기만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자유논문을 발표했던 김지혁 박사(총신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고, 본문에 드러난 저자의 진의를 파악해 선포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설교자들에게 자기기만은 성령의 일하심과 능력을 가로 막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자기기만에 취약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며 “자기기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우선 자기기만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석학적 자기기만, 실천적 자기기만, 본문을 선택할 때의 자기기만의 가능성을 살핀 김 박사는 “설교자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고, 자기기만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무엇인지 직면해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강단이 다시 한 번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이 되기 위해서는 설교자들의 철저한 자기 반성과 윤리적 갱신이 우선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설교자의 자기기만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김지혁 박사의 주장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자기기만의 성경적 사례

 

예레미야 선지자는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다는 것을 강조했다(렘 17:9). 사람의 마음에 있는 기만적인 성향에 대해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하면서 수사적으로 묻는다.

성경의 가장 대표적인 자기기만의 사례는 다윗과 밧세바 사건일 것이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자신의 죄를 정면으로 지적할 때까지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가까이 동행한 사람이 그토록 잔인하고 포악한 행위를 하고도 그의 영혼을 쇠약하게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기기만 때문이다. 자기기만은 그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억압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진행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실제 자신의 행동 사이의 괴리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기만성과 부패성에 대한 자각이었다. 예수님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인간 실존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는 자기기만을 지적하셨다.

야고보서 1장에서만 세 번 자기기만의 문제가 언급된다. 1장 16절에서 자신이 시험받은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하면서 속지말라고 한다.

아담이 자신의 죄를 아내에게 떠넘기고, 하와는 뱀에게 떠넘기는 것처럼 욕심에서 비롯된 자신의 죄악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종종 자신을 기만한다. 자기기만은 자신이 실상 죄를 원하면서도 죄를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1장 2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행하지 않는 자들을 스스로 속이는 자로 규정한다. 1장 26절에 등장하는 자기 마음을 속이는 기만 행위는 종교 행위 자체가 오히려 믿음없음을 가려주는 효과적인 가면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요한은 회개를 꺼려하는 우리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자기기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특별히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들에게 자기기만의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과 씨름하면서 본문의 의미와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는 해석학적 과정에서 자기기만이 들어올 수 있고, 설교자의 삶과 인격 가운데 자기기만이 파괴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본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자기기만은 나타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기만적 성향을 갖고 있지만 특히 설교자들은 자기기만에 더 취약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일 때, 하나님 앞에서 더 신실한 설교자로 쓰임받을 수 있을 것이다.

 

 

 

1. 해석학적 자기기만

 

설교자의 해석학적 자기기만은 본문에 대한 설교자 자신의 선이해 또는 선입견이 객관적 해석의 기준이 될 때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본문 저자의 의도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다양한 해석학적 과정을 거치는 대신 본문에 대한 이전의 경험 또는 선입견으로 획득된 의미를 마치 본문의 진정한 의미라고 믿고, 설교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어느 설교자라도 자신의 선이해 없이는 본문에 다가서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신학적, 성경적 배겅 지식이 자칫 본문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설교자가 해석학적 자기기만을 피하기 위해서는 해석학적 순환보다 해석학적 평형의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는 무지의 베일을 쓰고 본문에 대한 귀납적 관찰을 함으로써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는 이상적인 방법론이다.

우선 본문의 메시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본문으로 하여금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설교자들은 선이해를 갖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미리 결정하려는 자연스러운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귀납적 관찰은 매우 중요하다.

이 때 요청되는 것이 ‘무지의 베일’이다. 무지의 베일은 해석자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고 본문에 다가가기 위한 이상인 절차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해석자는 자신의 신학적, 성경적 지식 그리고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가치관을 포함한 모든 배경지식들, 심지어는 자신의 감정상태까지도 괄호에 넣고 본문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설교자들은 해석학적 자기기만으로 인해 본문의 심각한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선 인지하고, 본문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는데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본문 메시지의 진의를 희생하는 것도 해석학적 자기기만이다.

 

 

 

2. 실천적 자기기만

 

구약의 거짓 선지자 발람(민 22~24장)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지도 않았고, 말씀을 위탁받지도 않았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현혹시켰다. 오늘날 설교자들도 발람과 유사한 실천적인 자기기만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바로 설교 표절과 관련된 문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그 준비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것인가? 설교의 문제는 결국 설교자의 문제이며, 잘못된 설교를 논하기 전에 잘못된 설교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설교자가 준비가 덜 된 설교를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설교를 그대로 베껴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실천적인 자기기만이 발생할 수 있다.

바쁜 심방 일정과 과중한 설교 횟수 때문에 강해설교가 요구하는 해석학적 절차를 따라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도용하는 것은 저작권이나 개인의 정직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설교자 자신의 인격성이 결여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 역시 상실하게 된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자기기만은 습관적이고 은밀한 죄를 마음의 가책 없이 계속해서 저지르기 위한 주요 전략 중 하나이다. 특히 설교자들은 자신이 설교한 바대로 살지 못하고, 성도들에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 때 자기기만이 고개를 들게 된다.

이러한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설교자들은 설교 횟수를 조절하고, 설교 준비시간을 확보하는 등 실천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설교자의 윤리적 책무에 대한 깊은 자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실천적인 자기기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유일한 희망은 성령의 도우심 밖에 없다. 설교자는 성령의 내적 임재를 인지적으로 수긍하는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되며, 본문 선정, 본문 주해, 설교문 작성 등 설교의 모든 준비 과정에서부터 설교 전달에 이르기까지 성령께서 조명하시고, 이끄시는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의 조명이 성도의 마음에 비춰서 감각을 자극시킬 때, 비로소 감각의 직접적인 대상인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설교자들의 마음의 감각이 성령의 빛을 통해 새로운 습관과 성향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실천적인 자기기만의 책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3. 본문선택에서의 자기기만

 

설교는 본문 선택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히 하나의 주요 사상을 가진 본문에 집중해 그 본문에 나타난 저자의 의도와 의미를 파악하고, 청중들의 삶 가운데 적용시키는 강해설교에서 적절한 본문선택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본문으로 설교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권이 모든 설교자들에게 고유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본문선택에 있어서 심각한 편식이 가능하고, 또한 설교자 자신의 목적과 취향에 맞는 본문을 가지고만 설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설교자의 관심사에 따른 본문선택의 장점이 있다. 설교자에게 영향을 끼친 본문으로 설교하면 더욱 열정적으로 전할 수 있으며, 확신을 갖고 청중들의 가슴을 울리는 설교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본문선택은 설교자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을 본문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또 다른 형태의 자기해석이 될 수 있다.

결국 설교자들은 성경 전체를 균형있게 설교하기보다는 개인의 신학적 경향에 따라 편식하며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교자들은 성경의 어떤 부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균형 있게 선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본문선택에서의 자기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연속 강해설교를 원칙으로 하되, 목회적 필요에 따라 주제별 강해설교를 병행하는 것이다. 연속 강해설교는 하나님의 계시를 동일하게 담고 있는 성경의 모든 부분을 설교할 수 있으며, 성경의 각 권을 심도 있게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선택된 본문이 청중의 필요와 전혀 무관한 설교가 되지 않도록 설교자가 각별히 노력한다면 연속 강해설교는 본문 선택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설교자의 자기기만을 차단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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