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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박정희 정권 속의 교회, 저항과 협력 등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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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정권은 당근과 채찍의 방식을 사용해서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를 분열시켰다."

 

"박정희 정권은 교회를 위협하기도 했지만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한 지속성을 가진 특혜들도 제공했기 때문에 교회는 저항과 협력 등 '선택의 딜레마'에 빠졌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김승태 박사) 산하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이재근 박사/광신대 교수)가'5.16 군사정변 6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11월 6일(토) 오후 2시 온라인(ZOOM)으로 정기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5.16 군사정변-박정희 정권과 기독교:박정희 정권 시대의 '국가와 교회 관계'에 대한 연구사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기조발표를 한 정병준 박사(서울장신대 교수)의 주장을 비롯해 '박정희 정권의 종교정책'(발표:강인철 박사/한신대 교수)의 주된 내용을 간단히 정리했다.

 

'박정희 정권 시대의 국가와 교회 관계에 대한 연구사'를 고찰한 정병준 박사는 1980년대부터 2010년까지 국가와 교회 관계에 대한 연구들을 소개한 후에, 박정희 시대에 등장한 몇몇 이슈들을 중심으로 국가와 교회와의 충돌, 정교유착 등을 설명했다.

 

정 박사는 "박정희 시대의 교회와 국가 관계는 정권에 대해 대결하는 소수, 협조하는 소수, 대결과 협조를 병행하는 절충주의적 다수로 유형화되었다. 국가의 통제가 전체 교회의 이해에 부정적 영향을 줄 때는 전체가 연합하여 저항하기도 했다"라며 박정희 시대 교회의 모습을 전반적으로 평가했다.

 

 

시민사회 기능 대변하다
'반공주의' 한계 못넘어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정 박사는 "박정희 통치 시대에 한국 개신교의 교회-국가의 관계는 사회와 국민을 위해 유익한 열매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후대에 오래 남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남겨놓기도 했다"라고 재차 평가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 한국 사회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군사정권 아래서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국 조직과 국제적 네트워크,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청년 학생들이 있는 기독교는 예언자적 사명이라는 신학적 정당성을 가지고 시민사회의 기능을 대변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기독교 민주화 인권운동은 소수의 성직자와 청년 학생이 중심이 된 명망가 운동이라는 한계가 있었으나, 에큐메니컬 네트워크를 통해 자율성을 확보하고 박정희 정권을 고립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라면 "반면, 강력한 안보 논리로 인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민주 후 통일' 노선을 유지했고, 반공주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웠다"라고 설명했다.

 

 

 

 

 

 

정교유착: 국가권력에 종속

 

정 박사는 "5.16 군사 쿠데타 세력들과 서북 교권 사이에는 처음부터 밀착도가 높았기 때문에 기독교 보수세력과 군부정권의 유착은 빠르게 일어났다"라며 "반 에큐메니칼 성향의 교단과 군소 교단들은 경제적 자립도가 낮아서 국가권력에 대한 종속성이 높았다"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 교회 분열시키다

 

정 박사는 "박정희 정권은 당근과 채찍의 방식을 사용해서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를 분열시켰다"라며 "개신교 반공주의를 이용하여 보수기독교를 정권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에큐메니칼 네트워크를 견제하기 위해 칼 매킨타이어와 WCC 용공론을 사용했고, 최태민과 통일교를 지원해서 개신교를 견제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신앙적 확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독재정권의 불의와 반인권적 폭압에 저항했던 기독교인들의 수고와 희생은 우리 사회의 제도적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발전에 토대를 놓았고, 사상적으로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의식의 발전을 가져왔다"라고 덧붙였다.

 

 

'박정희와 기독교'
왜 연구해야 할까?

 

정 박사는 "개인 구원이라는 협소한 신학적 토대 위에서 자기 종교의 제도적 이익과 확장을 위해 불의한 권력을 지지하고 장기 집권하도록 지원한 교회의 행동은 교회의 본질인 생명 살림과 공적 가치를 무너뜨리고 시민사회의 신뢰를 하락시켜 결국 교회의 존재론적 정당성을 약화시켰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반공주의를 절대적 가치로 만들어 그것을 생존전략으로 삼는 다양한 기득권의 이해에 편승하고, 반공의 이름으로 유지되는 불의한 권력을 지지하고 전쟁을 축복한 것은 불의한 행동이었다"라며 "박정희 시대의 교회의 부정적인 유산은 여전히 교회와 사회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만큼 과거의 망령에서 현재와 미래를 해방시키기 위해 박정희 시대의 기독교를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헤게모니 전략에 빠지다

 

'박정희 정권의 종교정책'에 대해 발표한 강인철 박사는 "박정희 정권의 '종교정책' 배후에는 '헤게모니 전략'이 자리하고 있었다"라며 "지배층의 헤게모니 전략은 한편으로 양적, 질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큰 부문들과의 ‘동맹’을 지향하며, 다른 한편으로 기존 지배질서에 위협적인 개인과 집단, 운동들에 대항하여 ‘투쟁’할 것, 요컨대 ‘지배의 성화(聖化)’와 ‘저항의 탈(脫) 성화’를 종교 부문으로부터 획득하고자 했다"라고 평가했다.

 

결국 박정희 정권 시기에 종교지도자들과 지배층 사이에는 상호 침투와 동일시, 상호적인 의무감과 존중의 분위기가 숙성해졌고, 종교적 실천과 담론 생산은 기존 헤게모니에 갈수록 우호적인 것으로, 지배체제에의 저항에는 더욱 비우호적인 것으로 구조화되었다는 것이다.

 

강 박사는 "박정희 정권 속 한국 상황의 특수성은 독점적 종교 상황에 대비되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그리고 종교 영역에 대한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제와 개입 가능성을 뜻하는 ‘국가권위주의’(state authoritarianism)라는 두 요인에 의해 구조화됐다"라고 주장했다.

 

 

 

 

 

 

 

배제와 포용의 헤게모니 전략

 

 

특히 강 박사는 박정희 정권은 배제와 포용의 헤게모니 전략의 하위 전략들을 다채롭게 구사했다고 평가했다.

 

즉, 박정희 정권은 법적, 정치적 전략(예: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종파교회 제도' 도입/국가조찬기도회 도입/군종제도 등), 경제 전략(예: 문화재관람료 징수 허용 및 확대/종교계 중학교 재정보조/종교적 기념물 및 조형물 재정 지원/종교기관 및 단체, 성직자에 대한 법인세, 소득세 과세 시도 등) 등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과 문화 전략(예: 대형 전도집회 허용과 지원, 종립학교 종교교육 통제/불교 및 유교 문화재 복원 등), 억압 전략(예: 종단 내분에 대한 개입/종교기관 세무조사 실시/미신타파 운동 전개/저항적 종교인들의 연금 및 체포, 투옥 등)을 전개했다는 설명이다.

 

 

박정희 정권의 개신교 정책

 

박정희 정권의 개신교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한 강 박사는 "개신교회의 제도적 이익을 증진시킨 정책들로는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의 도입, 경목제도 도입, 전군신자화운동/전경신자화운동/교도소신자화운동 전개, 향목제도(예비군 군종제도) 도입, 목회자의 민방위교육 교관 위촉, 초대형 대중전도집회 개최 허용 및 지원 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교회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 불교에 대한 혜택 제공으로 개신교의 경쟁력 감소, 국가주의 강화로 인한 교리와의 충돌, '이단'으로 간주된 교파와 국가의 협력 등 개신교회의 제도적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았던 정책들도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저항과 협력, 선택의 딜레마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강 박사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종교정책의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성격이 전반적으로 강해졌다. 세금 문제와 종교교육 문제는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체감되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이후 불교를 비롯한 3대 종교에는 이전에 비해 많은 종교적 특혜들이 제공되었다. 개신교만 하더라도 국가조찬기도회, 경목제도 같은 매력적이고 탐스러운 특혜들이 군사정권하에서 새로이 생겨났다"라며 "그 대부분이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한 지속성을 가진 특혜들이었기에, 그것들은 거부하기 힘든 강렬한 유혹이기도 했다"라고 평가했다.

 

결국, 종교적 규제와 특혜 사이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강 박사는 "1970년대 이후 저항-협력의 양극단 사이에 회색지대가 두텁게 형성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라며 "그럴수록 종교-국가 관계는 더욱 복합적이고, 양자의 전략적 상호작용에는 유동성과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그것의 귀추와 결과를 예측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게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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