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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 선지자적 '사회정의' 실현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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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은 성전 체제가 선지자적인 정의를 실현하지 않고 그것을 종교적인 행위로 덮으려 한 것을 비판하는 상징적 행위다. 당시 사회적인 상황은 억압적인 농업 중심의 사회경제 체제가 있었다. 무거운 세금과 십일조로 인하여 생기는 빚, 또한 타락한 대제사장과 그들이 누리던 성전운영으로부터 얻는 부당한 이익 등에 대해 예수님은 비판으로써 성전 정화 행동을 하신 것이다."

 

 

사복음서 전체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 중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사회정의를 분석한 연구논문이 있어 소개한다.

 

* 이 글은 목회 현장에 직접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매우 가치 있는 소중한 연구 결과물이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하면서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이태호 박사의 <예수와 사회정의:마가복음 11:15~17>,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성경과 신학', 제61권(2012).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 11:15~17)

 

마가복음서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사건 이후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막 11:18)

 

 

성전정화 사건, 
'통일된 해석'은 없지만 ···

 

이태호 박사(숙명여대)는 "예수님의 성전사건과 관련해서 아직도 통일된 의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학자로부터 보수적인 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라며 "전통적인 견해인 성전을 거룩하게 하려고 했다는 주장부터 구약의 예배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시도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라고 주장한다.

 

이 박사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사건에 대한 견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예수님의 성전사건은 유대교의 타락과 그로 인한 백성에 대한 경제적 억압, 즉 성전체제의 정의롭지 못함에 대한 선지자와 메시아로서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즉, 예수님이 메시아의 두 가지 사명 중 하나인 정의의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신 사건이 바로 성전 정화사건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성전 정화사건과 관련해서 현재 어떤 해석(견해)들이 존재할까? 이 박사의 비판적 분석을 간단히 아래에 간단히 정리해봤다.

 

해석-1.
"성전을 정화하신 행동이다"

 

예수님은 성전의 바깥뜰에 있는 상업적 행위가 거룩한 예배의 내적이고 영적인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분노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의 문제는 성전 뜰에서의 상업적 활동이 성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허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다른 경건한 유대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왜 유독 예수님만이 분노하셨는가가 의문이다.

 

하지만 성전정화 견해(해석)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성전에서의 상행위는 공식적으로 허용되어 있는 것이고, 심지어 환전상은 성전의 관리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성전의 의식적인 정결이 예수님에게 중요했는가가 의문이다.

 

셋째, 성전의 정결을 유지하는 것은 제사장들의 임무이고 이것은 매일 정결례를 통하여 행하여지고 있었다.

 

넷째, 만약 성전이 예수님에 의하여 정화되었다면 왜 나중에 성전이 파괴되어야 하는가도 의문이다. 

 

 

해석-2.
"종교적 귀족계급 공격하신 것"

 

S. G. F. Brandon은 예수는 성전행동을 통해 실제로 종교적 귀족계급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환전상이나 상인들은 성전을 통제하는 대제사장의 허가 아래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Brandon은 예수님이 그의 제자 들과 군중들과 함께 성전을 실제로 물리적으로 공격했다고 믿는다. 

 

이 해석도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열심당 운동자체가 그 당시의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이 이념적으로 만들어 낸 운동이다.

 

둘째, 만약 예수의 행동이 군사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면 아마도 안토니아 요새에 있던 로마군이 개입했을 것이다.

 

셋째, 성전에서의 많은 소란을 기록했던 요세푸스가 이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의 행동은 조그마한, 그리고 상징적이고 비폭력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해석-3.
"이방인 배제에 대한 비판이었다"

 

E. Lohmeyer는 예수님의 성전사건은 이스라엘의 배타성에 대하여 반대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예수님은 이방인이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성결하게 하였다"라고 말한다. 

 

이 해석도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 해석의 문제점은 이방인의 뜰이라는 개념은 현대에 생긴 개념이라는 것이다. E. P. Sanders도 "예수님은 비록 종말에는 이방인을 포함시키려 했을지 모르지만 아마 그 당시에 이방인에게 호의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해석-3.
"성전의 파괴를 의미한다"

 

이 해석에는 예수님의 행동이 종말론적 메시아적 행동이라는 견해와 선지자적 행동이라는 견해 그리고 비 메시아적 종말론적 행동이라는 3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비 메시아적 종말론적 견해) 예수님의 행동이 성전정화라는 전통적 견해를 비판한 E. P. Sanders는 예수님의 성전에서의 행동이 십자가에서의 처형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유대 회복의 신학에 근거하여 그의 행동을 통해 옛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측한 것이다.

 

이 해석도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도대체 왜 성전이 파괴되고 다시 건축되어야 하는가가 문제이다. 둘째, 성전제도의 타락이 없었다는 Sander’s의 주장은 많은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셋째,  Sanders는 그리고 마가복음 11:15-16절의 4가지 행동 중에 환전상의 테이블을 엎는 것 하나만을 고려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 행동을 그렇게 쉽게 파괴의 상징으로 연결시킬 수가 있는가라고 학자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종말론적 메시아적 행위) J. D. G. Dunn과 Ben Witherington 3세는 성전정화는 그 성격상 종말론적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행동은 새롭게 된 시온에서 종말론적인 기능을 담당하도록 성전을 만들기 위해 행하여진 행동인 것이다.

 

이 해석도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 해석의 문제점은 메시아가 성전을 파괴하고 다시 세운다는 확실한 문헌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탈굼 텍스트는 단지 메시아를 통하여 새로운 성전이 세워질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이나 다른 어떤 문서에서도 메시아가 성전을 파괴할 것이라는 구절은 없다는 것이다.

 

(성전의 정의롭지 못함에 대한 예언자적 행동) 이 견해는 예수의 행동이 성전체제와 대제사장에 의한 억압과 부정에 대한 선지자적 비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V. Taylor, R. Horsley, D. Kaylor, D. Crossan, W. Herzog, C. Myers, R. Bauckham 그리고 M. Borg 모두가 이 견해를 지지한다.

 

이들의 주요한 주장은 예수가 이사야나 예레미야로 대표되는 히브리 선지자적 전통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던 성전체제와 대제사장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Ched Myers는 예수님은 성전이 가난한 자를 착취하였기 때문에 예수 님이 성전을 공격했다고 생각한다. R. Bauckham도 또한 이 견해를 지지한다. 그들은 성전세와 비둘기 판매의 독점 등에 나타난 성전의 가난한 자에 대한 억압에 대한 예수님의 저항을 나타내는 것이 성전행동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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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4.
"성전 제사제도의 종말이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의 성전행동은 성전제사제도의 종말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G. Bornkamm은 주장하기를, 예수님의 행동은 단순히 성전제사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제사를 중지시키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성전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해석도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문제점은 Eppstein이 주장하듯이 사실상 바울을 포함한 초대 크리스천들이 성전에 희생제물을 봉헌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다(행 21:26). 성전에서 제사가 폐해졌는데 왜 제자들이 제사를 드리러 성전에 갔는가 이해가 안 된다.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은
'선지자적 정의 개념 보여준 것"

 

이 박사는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선지자적인 정의의 개념을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더군다나 이 행동이 유월절 전야에 일어난 것도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날이 유월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성전정화사건을 보는 가장 그럴듯한 시각은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이 전체적인 성전체제의 부정의와 이것을 희생제사로 덮으려는 것에 대한 선지자적이고 메시아적인 상징적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선지자적 정의 위한
예수님의 4가지 행동

 

예수님은 매매자를 쫓아냄, 환전상의 테이블을 뒤집어엎음, 비둘기 판매상의 의자를 뒤집어 엎음,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금함 등의 4가지 행동을 하셨다. 

 

이 박사는 "성전에서의 상행위 자체는 모세율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 매매자를 쫓아내신 이유는 상거래를 통한 정의롭지 못한 이득이었다. 성전의 상점들이 대제사장과 그 가문에 속해있었던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라며 "예수님은 성전의 시장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지배 계층의 이익을 공격하신 것이다. 이것은 독점과 정의롭지 못한 이득에 대한 공격이었고 따라서 선지자적인 정의 중 하나의 모티브인 가난한 자에 대한 억압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환전상의 테이블을 뒤집어엎은 것'과 관련해서는 "예수님은 성전이 조직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을 비판하고 계신 것이다"라고 해석하며, '비둘기 판매상의 의자를 뒤집어 엎은 것'은 "비둘기는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의 제물이다. 하지만 성전 안에서 파는 비둘기의 가격은 시중보다 5배나 높았다. 결국 예수님은 성전체제가 종교를 빙자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공격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손에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금한 것'과 관련해서는 "예수님은 성전의 운영을 중지시켰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모든 사고팔고 들고 다니는 행위를 금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며 "결국 이 행위도 성전당국이 제사시스템을 운용하면서 부당한 이득을 보는 것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선지자적 정의 위한
예수님의 두 가지 말씀

 

예수님은 4가지 행동 이후에 이사야 56:7과 예레미야 7:11에 등장하는 두 가지 말씀을 하셨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7:11)

 

이와 관련해서 이 박사는 "학자들은 흔히 이 말씀들을 별도로 해석해서 이사야 56:7절은 기도와 이방인을 강조하고 예레미야 7:11은 성전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한다"라며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두 구절은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지자적 정의의 개념이다"라고 주장한다.

 

즉, 예수님의 성전 행동 후에 하신 말씀은 선지자적인 정의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

 

성전정화 사건은
'사회정의' 보여준 것

 

연구논문을 마무리하며 이 박사는 "예수님은 성전체제가 선지자적인 정의를 실현하지 않고 그것을 종교적인 행위로 덮으려 한 것을 비판하는 상징적 행위로서 성전행동을 하신 것이다"라며 "그 당시 사회적인 상황은 억압적인 농업중심의 사회경제 체제가 있었다. 무거운 세금과 십일조 그래서 지게 되는 빚, 또한 타락한 대제사장과 그들이 누리던 성전운영으로부터 얻는 부당한 이익 등이 바로 문제였고 예수님은 이러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서 성전행동을 하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예수님이 보여준 선지자적인 정의의 개념, 즉 가난한 자에 대한 돌봄과 억압에 대한 저항, 비폭력적 행위 그리고 집단으로부터 배제됨에 대한 저항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를 준다고 할 수 있다"라며 " 오늘날 교회가 과연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로 따르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한국사회에서 정의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반증이다"라며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정의를 주장하며 정의를 위하여 사신 분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정의의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마가복음 11:15-17 가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라고 피력한다.

 

[이태호 박사의 연구논문 목차]

1. 서 론
2. 성전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견해
 2.1. 메시아의 성전 청결
 2.2. 브랜든의 혁명적 행동견해
 2.3. 이방인을 배제한 것에 대한 비판
 2.4. 성전의 파괴를 의미하는 상징적 행동
  2.4.1. 비 메시아적 종말론적 견해
  2.4.2. 종말론적 메시아적 행위
  2.4.3. 성전의 정의롭지 못함에 대한 예언자적 행동
 2.5. 성전 제사제도의 종말
3. 선지자적 정의를 위한 주장
 3.1. 예수님의 행동
  3.1.1. 매매자를 쫓아냄
  3.1.2. 환전상의 테이블 뒤집어엎기
  3.1.3. 비둘기 판매상의 의자를 뒤집어엎기
  3.1.4. 손에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금함
 3.2. 예수님의 말씀들
  3.2.1. 이사야 서
  3.2.2. 예레미야 서
4. 결 론

 

이 박사의 국내학술지논문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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