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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열왕기서 설교(3)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던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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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회장:김윤희 박사, 횃불트리니티신대)가 지난 17일 오후 2시 서부교회(담임:임채영 목사)에서 '제43차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제10차 구약과 목회와의 만남'으로 진행된 이번 발표회는 '열왕기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를 주제로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목회자들에게 솔로몬, 엘리야와 엘리사,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교해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3명의 구약신학자들의 성경 해석과 설교의 방법을 정리해봤다. <편집자 주>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 산헤립의 협박편지를 내려놓고 기도하는 히스기야 / 사진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

 

[왕하 11장~25장 개관 및] 히스기야 내러티브(왕하 18-20장)의 주해와 설교
/ 김진수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

 

김진수 박사에 따르면 히스기야의 사적은 열왕기하 18-20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 본문을 주해하려면 거시적 차원에서 열왕기서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열왕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통일 왕국의 역사(왕상 1-11장), 분열왕국의 역사(왕상 12-왕하 17장), 유다 왕국의 역사(왕하 18-25장)다.

 

히스기야 내러티브는 이 중 셋째 부분에 속한다. 열왕기하 18-25장은 히스기야로부터 시작하여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덟 명의 유다 왕들의 행적을 다룬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왕들은 히스기야와 요시야이다.

 

특히 히스기야는 국가적으로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을 때와 개인적으로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난관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이는 "왕국의 생존이 탁월한 외교술이나 군사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달려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우주의 운행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교훈하는 의미를 갖는다.

 

김진수 박사(합신대)

 

오점 있었지만 '정직한' 왕

 

히스기야는 분열왕국의 역사에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왕으로 평가받는다.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예외 없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으며, 유다 왕들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예외다. 그는 요시야와 함께 아무런 제한 없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으로 평가받았다. 히스기야는 선왕 아하스가 조장한 종교적 타락과 우상 숭배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섰다.

 

김진수 박사는 "무엇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이끄는 앗수르 대군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오직 기도로써 이겨낸 믿음의 사람이었다. 히스기야는 남달리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자세를 가졌으며, 그것은 간절한 기도로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왕들의 본보기가 되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라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물론 히스기야의 사적에는 오점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선지자에 맞서지 않았다. 오히려 겸허히 하나님의 판결을 받아들였다(왕하 20:19)"라며 "밧세바와 우리아 사건에서 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다윗의 정신이 히스기야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따라서 열왕기 기자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왕하 18:3)고 평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히스기야의 사적,
하나님 나라 통치 원리 및
'구속사'의 전형 제시

 

사실 구약 이스라엘에서 왕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신 17:14-20 참조). 따라서 왕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이다(삼상 15:22-23 참조).

 

이런 의미에서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왕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순종해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히스기야가 보여준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는 뒤로는 다윗에게 소급되며 앞으로는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가장 완전하게 구현된다"며 "히스기야의 사적은 다윗에게서 출발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를 보여주는 구속사의 한 전형이다. 신약의 성도들은 히스기야의 사적에서 자신들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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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게 행했다'의 의미
"흠, 잘못이 없다는 뜻 아니다"

 

열왕기 기자는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3절)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 김 박사는 "이 평가는 히스기야에게 아무런 흠이나 잘못도 없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모범적인 왕의 표상인 다윗조차 허물이 없지 않았다.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말씀은 그에게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부족함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전반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태도를 견지하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산당 및 '놋뱀' 제거

 

열왕기 기자는 히스기야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일을 자세하게 언급한다. 우선 히스기야는 각종 우상숭배 행위로 더럽혀진 예배를 개혁했다. 

 

김 박사는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가 워낙 열렬히 우상숭배에 탐닉했기 때문에 개혁이 절실한 형편이었다(왕하 16장 참조). 그래서 여러 산당들을 제거했으며, 주상들과 아세라 목상들을 파괴했다. 그는 이교도적 제의 물건들을 파괴함으로써 순수한 여호와 종교를 회복하고자 했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히스기야는 광야 시절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도 부수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문제의 '놋뱀'을 신통한 물건으로 여기고, 그것에다가 '분향' 하는 등 제의 행위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놋뱀'은 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민 21:8-9 참조).

 

김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물건 자체에 어떤 신성한 힘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그것을 숭배하는 무지몽매한 일을 행했다"며 "이런 어리석음은 어느 시대이건 종교적 상징물이나 형상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히스기야는 과감하게 잘못된 종교관행을 근절함으로써 참된 예배가 회복되도록 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히스기야의 개혁운동은 하나님을 향한 히스기야의 믿음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며 "'여호와를 의지했다'는 말은 히스기야를 특징짓는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따르는 이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히스기야를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왕하 18:1-8,
"예배와 믿음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축복"

 

김 박사는 왕하 18:1-8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예배의 중요성: 히스기야는 우상들을 파괴하고 올바른 예배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히스기야는 놋뱀을 파괴함으로써 미신적인 종교행위를 근절하였다. 오늘날의 교회도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종교행위에 오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예배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 믿음의 중요성: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밀착하였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많은 왕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의지하고 세상의 번영과 성공에 집착하였다. 교회는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밀착하기를 배워야 한다.

 

3.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축복하셨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고 히스기야는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께 밀착하는 사람을 축복하신다. '히스기야'(여호와는 나의 힘)란 말이 의미하듯이, 하나님이 그에게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신다.

 

 


왕하 18:9-12,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

 

열왕기 기자는 왕하 18:9-12에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김 박사는 "북이스라엘 멸망은 이미 17장에서 자세히 다뤘다. 하지만 다시 언급한 것은 히스기야의 태도와 대조하기 위한 것이다. 사마리아가 함락당한 원인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목소리(말씀)를 듣고 그분의 명령(언약)을 지키는 일임을 히스기야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왕하 18:9-12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본문의 위치와 기능: 앞에서(왕하 17장) 충분히 설명되었던 사마리아의 멸망이 이곳에 다시 언급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열왕기 저자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사마리아가 멸망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앗수르의 침략에 직면한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준비한다. 이를 통해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길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2. 사마리아의 멸망 이유: 사마리아가 멸망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왕과 백성이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분의 명령(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예루살렘과 긴장 속에 있었지만 둘은 다 함께 하나님께 속하였다. 이는 사마리아나 예루살렘 모두 하나님을 떠나서 존재와 번영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3. 교회를 위한 메시지: 신약의 교회는 구약에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 속하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중요시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일이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께서 이 일을 이루셨기에 교회의 미래는 안전하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구현하고 전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왕하 18:13-16,
"인간의 힘 아닌 믿음으로 대처"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렸던 앗수르 왕 산헤립은 주전 701년에 다시 유다를 공격했다. 산헤립은 유다의 여러 성읍들과 함께 서남쪽의 군사적 요충지인 라기스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침공하고자 했다. 국가로서 유다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김 박사는 "위기에 직면한 히스기야는 앗수르와 화친을 맺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산헤립에게 조공을 바쳤다. 성전과 왕국 곳간에 있는 은을 다 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성전문의 금과 기둥들에 입힌 금까지 벗겨 앗수르 왕에게 줬다"며 "하지만 열왕기 저자는 조공을 받은 후에도 변하지 않은 산헤립의 모습을 통해 히스기야의 행동이 어리석었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왕하 18:13-16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앗수르의 공격: 사르곤 2세의 죽음으로 고대 근동 전역에 앗수르에 대한 반역의 조짐이 보이자 산헤립은 반역을 응징하는 전쟁에 나섰다. 유다의 히스기야도 이 반역에 가담하였으며, 그 결과로 산헤립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오늘날 교회도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 세력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2. 히스기야의 대응: 히스기야는 정치-경제적으로 산헤립의 공격에 대응하였다. 그는 쉽게 산헤립에게 굴종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심지어 그는 산헤립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의 금까지 산헤립에게 가져다 바쳤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왕의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잘못된 태도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공격 앞에 믿음으로 대처해야 했다.


3. 믿음의 훈련: 산헤립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히스기야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히스기야 바친 많은 선물에도 불구하고 산헤립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이것은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히스기야의 어리석음을 확인해준다. 히스기야는 이러한 실패를 경험하면서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믿음은 훈련을 통해 성숙한다.

 

 

왕하 18:17-37,
무지와 오만 앞에서는 '오직 믿음'

 

히스기야로부터 공물을 받았지만 산헤립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치고자 했다. 김 박사는 "반역의 전력이 있는 히스기야가 미덥지 않았기에 그를 폐위시키고, 자신에게 충성할 친앗수르적 인물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더 좋은 선택으로 여겨졌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산헤립은 랍사게를 앗수르 대표단의 자격으로 히스기야에게 보내 복종할 것을 요구하면서 히스기야가 파견한 신하들을 조롱했다"며 "산헤립은 여호와를 모욕하면서 스스로를 신격화했고, 랍사게는 무지에 찬 말들만 늘어놓았지만 히스기야의 조언에 따라 파견단은 모욕을 받았지만 참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했다"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왕하 18:17-37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산헤립의 무지: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개악(改惡)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신교적 우상종교에 사로잡혀 여호와 신앙이 보여주는 참된 종교를 깨닫지 못한 데서 온 결과이다. 참된 종교의 표지는 예배자가 원하는 것에 있지 않고 예배의 대상이 요구하는 것에 있다.

 

예배의 대상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한 분뿐이다. 구약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은 당신께서 택하신 곳에서 예배받으시기를 원하셨다(신 12:11 참조). 신약 시대에는 장소를 불문하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다(요 4:23 참조). 모든 시대 모든 예배자는 예배받으시는 분의 뜻에 맞게 예배해야 한다.


2. 산헤립의 오만: 랍사게는 산헤립을 '대왕'이라고 부르며 산헤립이 마치 온 세상을 지배하는 최고의 주권자인 것처럼 말하였다. 산헤립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33-35절 참조). 하지만 그것은 전적인 오해이다. 산헤립이 그런 일을 한 것은 사실상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었다.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산헤립을 사용하셨다(왕하 19:25 참조).

 

산헤립은 이 비밀을 알지 못했다. 이 비밀을 알지 못하면 누구나 무지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을 수밖에 없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하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 말로 바른 지식이자 지혜이다. 흔히 그렇듯이 무지는 쉽게 오만으로 이어지며 하나님을 모욕하게 된다. 이것이 결국 앗수르 군대의 패배와 산헤립의 파멸을 불러왔다. 잠언의 말씀과 같이 "교만은 패망의 선봉"(잠 16:18)이며 그중에서도 최악은 여호와께 대한 교만이다.


3. 히스기야의 대응: 랍사게는 히브리어로 산헤립의 말을 전하였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다 알아듣고 동요하여 앗수르에 투항하도록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산헤립의 기대와 달리 백성들은 전혀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산헤립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히스기야가 이미 백성들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의 명령은 지혜로운 것이었다. 적의 말에 대답하는 것 자체가 적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의 명령을 따른 백성들의 태도도 훌륭하다. 외부의 공격이 거세더라도 내부의 결속이 강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왕의 뛰어난 지도력에 백성의 단결된 충성이 더해져 앗수르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왕에게 백성이 동일한 믿음으로 화답하였다. 이로부터 교회를 헤치려는 세력들에게 교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배운다.

 

왕하 19:1-7,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라"

 

히스기야는 대표단이 전한 말을 듣고 크게 낙담했다. 히스기야는 죽음과 재앙으로 인해 생기는 극한 슬픔을 표현하며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는"는 행위를 보였다. 김 박사는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갔고, 선지자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등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왕하 19:1-7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여호와의 전에 들어감: 산헤립의 말을 전해 들은 히스기야는 상황의 엄중함을 절감하였다. 그는 먼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마치 망자를 애곡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슬픔과 애통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행위다.

 

여호와의 전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다. 산헤립이 천하를 호령하는 권세자 같으나 실상 온 세상의 주권자는 여호와시다. 히스기야는 이 믿음으로 여호와를 찾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답답하고 낙심되는 일을 만날 때 언제나 여호와의 얼굴을 찾는다(삼하 21:1 참조).


2. 선지자에게 알림: 히스기야는 혼자서 여호와를 찾는데서 머물지 않고 이사야에게 상황을 알렸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이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알리신다. 선지자 중의 선지자는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연약함을 친히 체휼하시며(히 4:15)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롬 8:34). 오순절 이후 선지자적 은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에게 개방되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욜2:27-30 참고). 성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서로에게 기도를 요청하며(엡 6:18; 살전 5:25; 약 5:16),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약 5:14 참조).

 

3. 하나님의 응답: 산헤립의 위협 앞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도를 요청한 히스기야의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셨다. 하나님은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히스기야를 위로하셨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오만하게 하나님을 모욕하고 유다를 위협하던 산헤립이 제거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위협하는 세력은 결국 망하게 된다. 세상의 세력이 교회를 위협할 때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를 위로해주실 것이며 마침내 그들을 위협하는 세상의 세력을 심판하실 것이다(벧후 3:3-7; 유 1:14-15; 계 20:11-15 참조).

 

 

왕하 19:8-19,
"하나님이 개입하도록 하라"

 

예루살렘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자 산헤립의 파견단은 본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산헤립의 군사는 퇴각하지 않고, 히스기야에게 여호와를 비난하는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행동에 침묵하면서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다.

 

김 박사는 왕하 19:8-19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여호와의 개입: 랍사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고 산헤립에게 돌아갔다. 산헤립은 즉각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여 성을 함락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립나와 전쟁 중에 있었고, 더군다나 구스 왕 디르하가(애굽의 왕이기도 함)가 진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서신을 보내 위협하는 선에 머물러야 했다. 이것은 히스기야에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었을 것이며, 그런 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곤경에 처하였을 때 여러 가지 형편과 사정을 통해 그 일에 개입하시며 그들을 도우신다.


2. 산헤립의 서신: 산헤립은 랍사게가 전했던 말과 유사한 내용의 서신을 히스기야에게 보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있다. 여호와를 더욱 직접적으로 모욕한 것이다. 산헤립은 어리석게도 유다와의 전쟁을 여호와와의 전쟁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그가 전쟁에서 패한 결정적 이유이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걸어오는 전쟁도 결국 실패할 수 없다. 그것은 여호와를 상대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창 12:3)는 약속의 상속자다. 그러기에 교회를 이길 세력은 없다.

 

3. 히스기야의 전술: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받고 분노하거나 낙망하지 않았다. 그는 그 편지를 들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룹들 위에 계신” 성전에 올라갔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시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여 일순간에 앗수르 군대를 멸하실 수 있다(왕하 6:15-17; 마 26:53 참조).

 

히스기야는 이것을 굳게 믿었다. 그는 성전에 올라가 산헤립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았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읽으시기 바라는 뜻에서였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행위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보다 강한 세상의 세력을 상대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전략은 없다(대하 14:11 참조).

 

왕하 19:20-34,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 기다려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시면서 히스기야를 위로하셨다. 김 박사는 "하나님은 산헤립의 운명에 대해 말씀하셨고,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은 모든 근심과 염려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왕하 19:20-34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산헤립이 받을 조롱: 산헤립은 처음에 랍사게를 통해 유다 백성과 히스기야를 조롱하더니 나중에는 직접 서신을 보내어 그렇게 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처녀 딸” 유다와 “딸” 예루살렘이 산헤립을 비웃으며 조롱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산헤립은 유다와 히스기야를 조롱하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였기에 더욱 조롱을 당하고 모욕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은 자신들에게 더 큰 조롱과 모욕이 있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시 2: 4 참조).


2. 산헤립이 당할 운명: 산헤립은 단지 멸시와 비웃음만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쟁에서의 완전한 패배와 비참한 죽음이다. 그는 18만 5천의 군사를 잃고 본국으로 돌아가 아들들에게 반역을 당해 죽는다. 그것도 그가 숭배하던 니스록의 신전에서 말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욕하던 산헤립이 자신이 숭배하던 신 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나님은 산헤립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송아지의 이미지를 빌어 말씀하신다(28절 하). 산헤립의 운명은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본보기다(암 4:1-2; 벧후 2:12 참조).


3. 하나님이 주실 징조: 하나님은 유다를 위한 메시지도 주신다. 결국 하나님의 관심은 유다에게 있다. 향후 2년간 유다는 제대로 된 경작은 하지 못하겠지만 굶지는 않을 것이다. 첫 해에는 “뿌리지 않고 떨어진 씨앗에서 자란 것”을 먹을 것이며 둘째 해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는다.

 

이것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손으로 심지 않고도 양식을 먹을 수 있었던 일을 연상케 한다. 광야 40년의 생활처럼 유다 백성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생활할 것이다. 또한 3년째부터 경작한 것을 먹게 될 것이란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땅의 소산으로 양식을 삼은 일을 상기시킨다.

 

광야 40년의 생활이든 가나안 땅에서의 생활이든 모두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다. 특히 히스기야 시대의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에 속하였다. 하나님은 이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이 언약에 따라 자기 백성을 “열심”으로 돌보신다.

 

교회는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 속에 있다. 그러므로 다윗을 머리로 하는 옛 언약백성을 “열심”으로 돌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새 언약백성(교회)을 “열심”으로 돌보실 것이다.

 

 

왕하 19:35-37,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시다"

 

김 박사는 왕하 19:35-37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하나님의 심판: 앗수르 왕 산헤립은 하나님 위에 스스로를 높여 자신이 마치 절대 주권자인처럼 행세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했다. 그것은 용납될 수도, 용납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시다.

 

그분께 도전하는 것은 백성이 나라를 전복시키고 왕을 폐위시키려는 시도 이상으로 반역적이다. 산헤립의 패망은 그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다. 하나님께 도전하는 세력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벧후 3:3-10 참조).


2. 예언의 성취: 앗수르 군대는 예루살렘을 공격해보지도 못하고 궤멸되었다. 산헤립은 처참한 패배의 굴욕을 안고 본국으로 돌아가 아들들에게 반역을 당해 죽었다. 그것도 자신이 섬기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그렇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일어난 일이었다.

 

선지자의 예언은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삼상 3:19; 사 55:10-11 참조).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교회는 복되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하는 일에 모든 관심을 다 기울여야 한다(계 1:3 참조).


왕하 20:1-7,
"인간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열왕기 기자는 왕하 20:1-15에서 산헤립의 침략 이야기에 이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치유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김 박사는 "그러나 이 사건의 순서가 반드시 연대순을 따른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히스기야의 발병 사건은 산헤립의 침략 이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즉,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의 치유 소식을 전해 듣고 사신을 보낸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므로닥발라단은 사르곤 2세의 죽음(705 BC) 이후 정치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 앗수르에 반란을 꾀하였고,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김 박사는 "따라서 열왕기의 사건배열(산헤립의 침략→히스기야의 발병)은 연대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록자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왕하 20:1-15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질병과 기도: 질병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질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경건한 왕 히스기야도 병에 걸렸다. 그것도 죽게 될 불치의 병이다. 선지자도 예외가 아니다. 엘리사는 수많은 기적과 능력을 행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왕하 13:14 참조).

 

질병은 고통을 수반하며 두려움을 안겨준다. 믿음의 사람 히스기야도 다르지 않았다. 히스기야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이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낙심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순수한 믿음과 간절한 태도는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요소다(삼상 1:10-11; 왕상 18:42; 약 5:17 참조).


2.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것도 즉각적으로 그렇게 하셨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돌아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들의 눈물을 보신다. 하나님에게 성도들은 자녀이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아버지다. 아버지가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녀의 아픔을 가슴에 품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아니 그 이상으로 하신다(마 7:11 참조).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이다. 지체되는 법이 없다. 인간이 보기에 지체되는 같아도 그것 자체가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응답임을 알아야 한다(막 11:24; 롬 5:3-4; 약 1:2-4 참조).

 

히스기야의 경우 바로 질병에서 치유받았다. 하나님께는 못 고칠 질병이 없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질병 앞에서도 소망을 갖는다. 무엇보다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질병'을 짊어지시고 그들의 '고통'을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사 53:4).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종말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며 소망한다.


3. 하나님의 뜻: 히스기야의 기도가 응답된 배후에는 히스기야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만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기도가 이뤄지는 법은 없다. 인간의 필요가 시급하고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

 

실은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해야 옳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인간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가장 선하신 분이시므로 그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사실은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 또한 그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히스기야는 질병 가운데 왕국의 장래를 염려하며 기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6절)는 말씀이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구약에서 다윗 왕가는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리므로 다윗 왕가의 운명은 하나님의 관심과 직결된 것이었다. 만일 히스기가 병으로 죽는다면 다윗 왕가의 미래는 보장될 수 없다. 앗수르가 곧 침략해 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 왕가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히스기야의 생명이 연장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과연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한]” 것이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바를 구하는 것이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왕하 20:8-11, 징표를 구하는 믿음

 

놀라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 들은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그 메시지를 보증하는 '징표'를 구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징표를 주실 것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왕하 20:8-11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징표를 구하는 믿음: 히스기야는 이사야가 전한 구원의 말씀을 듣고 징표를 구하였다. 히스기야에게 왜 징조가 필요했을까? 그에게 믿음이 없었던 것일까? 사사 기드온의 경우에는 그랬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로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징표를 요구했다(삿 6장 참조). 그것은 믿음의 태도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히스기야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였기에 오히려 징표를 구하였다. 히스기야는 징표를 구하되 도무지 불가능한 일을 구하였다. 해 그림자가 “열 걸음” 뒤로 물러가는 일이었다. 히스기야가 이런 일을 구한 것은 그의 믿음의 크기를 보여준다. 히스기야에는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의 부친 아하스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다. 아하스는 선지자가 징조를 구하라고 했음에도 듣지 않았으며, 그것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일이었다(사 7:12-13 참조).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히 11:6 참조)

 

2. 하나님이 주신 징표: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요구한 대로 징표를 주셨다. 아하스의 “계단” 위에 있던 해 그림자가 “열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천체가 움직이는 이런 일은 과학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일으키신 초자연적 기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따름이다. 하나님은 물리의 법칙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창 1장), 바다와 강물이 갈라지게도 하셨으며(출 14장; 수 3장), 해와 달이 멈추게도 하셨으며(수 10장), 죽은 자를 다시 살리기도 하셨다(왕상 17장; 왕하 4장). 한마디로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왕하 20:12-19,
"잘못을 했다면 바로 뉘우쳐라"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냈다. 히스기야는 사신들의 방문을 받으며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 세속정치에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의 행동을 문제 삼았고, 히스기야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했다.

 

김 박사는 왕하 20:12-19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세속정치에 대한 기대: 바벨론의 브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냈다. 명분은 병에서의 회복을 축하하는 것이었지만 실제 의도는 유다를 반앗수르 연대에 가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히스기야는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환영의 태도를 보였다. 그는 왕궁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바벨론의 반앗수르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표시였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한 이 유는 부친 아하스 때부터 유다가 앗수르의 속국으로 있었으며, 머지않아 앗수르가 유다를 침공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바벨론과 결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세속정치의 논리를 따르는 일이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르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충실한 길은 그 나라의 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다. 세속정치가 중시하는 세상의 힘에 의존하면 그 세상의 힘에 예속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시대를 막론하고 현실의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만을 의지하여야 한다.


2. 선지자의 책망과 예언: 히스기야의 행위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찾아와 그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따져 물었다. 이사야의 질문 속에는 질책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 차례 연속되는 의문문이 그런 뉘앙스를 전달한다.

 

히스기야의 행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이탈한 것이기에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왕궁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히스기야의 후손이 바벨론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어떤가? 그것은 히스기야의 실수에 대한 지나친 벌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히스기야의 실수(세속정치에 의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북왕국이 망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며 남왕국도 동일한 문제로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본 것이다. 그것은 유다 왕국 말기에 왕들이 외세(애굽 또는 바벨론)에 의존하는 정책을 펴다가 망하게 될 일을 예고한다.

 

3. 히스기야의 뉘우침: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책망과 예언을 달게 받아들였다. 이기심에 사로잡힌것 같은 말-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오”(19절 하)-은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심판을 연기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하다”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설령 받아들이기에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시 51:4; 막 7:28 참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연기해주신다고 하니 더욱 감사한 일이 아닌가?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일에 있어서 온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완전한 그를 온전하게 만든 것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자세였다. 왕들의 본보기인 다윗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이는 잘못과 실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연약한 인생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된다(요일 1:9 참조). 

 

신약의 성도들은 그들의 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더 확실한 소망을 갖는다. 그들은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벧후 3:14) 힘써야 한다.

 

 

왕하 20:20-21,
"심판의 자리에서 삶은 평가된다"

 
김 박사는 히스기야의 죽음과 계승을 말하고 있는 왕하 20:2-21의 설교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히스기야의 업적: 열왕기 기자는 히스기야가 만든 수로를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소개한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한 왕들도 있고 부끄러운 일만 남긴 자들도 무수하다. 히스기야는 수로를 만들어 예루살렘을 앗수르의 침략에서 지키고자 하였다. 그런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누구나 그 나라를 위해 충성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히스기야의 업적은 오늘까지 역사의 산 증거로 남아있다. 그것은 성경 기록의 역사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다. 성경기록은 역사에서 생겨난 역사의 증언이다.


2. 히스기야의 죽음: 히스기야처럼 위대한 왕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죽음은 악인이나 선인에게 모두 찾아온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죽음이다. 히스기야의 죽음도 그런 것일까?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지만 그러나 삶의 내용을 지워버리지는 못한다.

 

히스기야는 죽었지만 그가 살았던 삶은 여전히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기억되고 있다. 죽음이 갈라놓은 시간의 장벽은 언제가 무너질 때가 온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행한 대로 심판받을 것이다(계 20:12 참조). 그러므로 히스기야의 죽음은 헛되지 않다. 그의 삶도 헛되지 않다.

 

열왕기서 설교(1) 솔로몬 향한 하나님의 심판 이유

열왕기서 설교(2)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 특징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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