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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기독교, 타종교 가치 부정하지 않고 복음 지킬 수 있어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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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일대 스털링 박사, 한국기독교학회 제34차 정기학술대회서 주제강연 

 

2014년 11월 1일 기사

 

“우리는 편협하지 않으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모델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들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에게 대한 흔들림 없는 충성을 공언하도록 허용해 주는 하나의 기독교적 이해를 길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서 복음의 진리를 과연 고수할 수 있을까?

미국 예일대 신학대학원장 그레고리 스털링(Gregory E. Sterling) 박사. 그는 한국기독교학회(회장:유석성 박사, 서울신대 총장)가 지난달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온양관광호텔에서 ‘평화’를 주제로 진행된 ‘제43차 정기학술대회’의 주제강연자로 나서 배타적인 기독교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장벽이 아니라 다리로서의 종교’를 주제로 발표한 스털링 박사는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배타적인 충실성을 갖고 있다”며 “동시에 나의 배타적인 충실성이 유대인들이나 무슬림이나 힌두교인이나 불교인들의 충설성이 지닌 유효함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교 전통들의 가치에 대해 상대적인 판단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 기독교, 평화의 화신이라고 주장할 수 없어

스털링 박사는 “누구든지 종교적, 인종적인 진영을 떠나 이 세계 속에서 종교적인 문제로 얼마나 끔찍한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오늘날 우리는 이라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케냐, 미얀마, 나이지리아, 예멘 등에서의 인종적, 종교적 충돌을 경험하고”고 설명했다.

자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 9.11 테러 등과 같은 것을 직접 경험했다고 밝힌 스털링 박사는 종교적 충돌은 자신의 종교나 종파가 용인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고 하는 배타적인 견해를 갖고, 이러한 배타적인 종교적 견해를 종교적인 의제와 연결하면서 나타나는 치명적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그는 “기독교인인 우리는 이러한 충돌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만 너무 많은 경우에 이러한 폭력에 기독교인들이 참여해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우리는 기독교의 평화의 화신이라고 확신 있게 제시할 수 없다. 우리의 손에 이미 피를 묻히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스털링 박사는 “배타적인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인 확신을 정치적인 확신과 연결시킬 때, 폭력은 하나의 유효한 선택이 될 수 있고, 종교를 다른 사라들에게 폭력적, 정치적으로 강요하도록 보증해 준다”며 “정치적인 폭력 문제를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은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끊는 것이지만 오늘날 이러한 연결교리를 끊은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 스털링 박사는 하나의 종교 전통을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에 충실하기 위해서 굳이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다른 종교의 타당성을 인지하면서도 자신들의 종교, 자신의 믿음에 충실할 수 있는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그는 이와 같은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예로 들어 독특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 기독교는 포용주의적 입장 갖고 있어야

스털링 박사에 따르면 사도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에서는 철학적인 개념으로 기독교를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도 바울의 설교는 네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신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창조자이며, 인간이 제공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신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인류의 통일성에 관한 확증과 함께 인류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사도 바울은 인류는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 셋째, 신은 우리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신을 우상의 형태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 넷째, 회개로의 요청으로서 인류의 심판자이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털링 박사는 “사도 바울의 설교를 기록한 사도행전 기자는 모든 인간 모두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원천으로서의 희랍철학의 정당성을 인식했다”며 “이러한 설교는 우리다 다른 종교 전통들과의 관계성을 설명하는데 매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스털링 박사는 사도 바울의 이 설교를 중심으로 다른 종교들의 전통과의 관계성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타 종교와의 관계에 있어서 주로 거론되고 있는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를 설명해나갔다.

우선 기독교는 요한복음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배타주의(하나의 특정 전통만이 진리이며, 구원을 향한 단 하나의 길로 구성한다는 것) 의 관점을 지키고 있지만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이러한 배타주의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다는 것.

그는 “아레오바고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의 희랍철학의 타당성을 인정하도록 주장하고 있다”며 “이는 저자가 배타주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유대인뿐만 아니라 희랍인들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단지 차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된 방법의 차이에 있다는 것.

 

 

또한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는 포용주의(하나의 전통이 규범적이거나 최종적인 진리를 제시하지만 다른 전통들도 그 진리의 어떤 측면들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즉,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희랍철학의 타당성을 인정한다는 설명이다.

스털링 박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2세기의 변증가인 순교자 저스틴을 언급하며, 저스틴은 문화의 역사에 대한 하나의 이론을 계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희랍철학과 유대-기독교 전통은 서로 양립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스털링 박사에 따르면 저스틴은 기독교에 의해 희랍철학을 측정했기 때문에 하나의 포용주의자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의 칼 라너도 기독교인의 윤리적 삶을 살지만 제도적 교회의 아무런 연관이 없는 개인들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며 ”라너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모든 전통들을 측정했다“고 피력했다.

하지만 스털링 박사는 다원주의(세상의 종교들은 동일한 궁극적 실재에 대해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한다는 것)는 사도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와 직접적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레오바고 설교는 포용주의와 다원주의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과는 직접적으로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의 이스라엘과 희랍철학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이해라는 입장을 가졌다. 동시에 이것들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들이었다”며 “이러한 방식으로 볼 때 아레오바고 설교는 다원주의적이기보다는 포용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본문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판단을 확실하게 하는 충분한 정보를 주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주제강연에서 전반적으로 기독교는 타종교와의 소통이나 관계성을 막는 장벽이 아니라 다리가 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스털링 박사는 “모든 주요한 전통들은 배타주의를 넘어서서 포용주의적이거나 다원주의적인 범주로 향해 가는 관점을 지지하는 본문이나 근거들을 갖고 있다”며 “우리 기독교는 우리의 전통에 대한 충실성을 분명히 말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충실성을 무효화시키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일도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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