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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원문] 적과 동포의 이중정체성-개신교 대북관에 관한 역사적 고찰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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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동포의 이중정체성-개신교 대북관에 관한 역사적 고찰

 

2014년 5월 7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기독교통일학회와 평통기연이 지난 5월 5일부터 6일(2014년)까지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통일 before & after’를 주제로 개최한 ‘제3회 기독청년대학생 통일대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제공 단체(자)와의 협약에 의해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제공하지만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무단전제 및 불법적인 도용은 추후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는 만큼 주의를 당부합니다. <편집자 주>


적과 동포의 이중정체성-개신교 대북관에 관한 역사적 고찰
윤은주(평통기연 홍보국장/이화여대 북한학박사)


1. 머리말

통일에 대한 염원은 해방 후 미소군정에 의해 남북이 분할통치 되던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모아졌고 분출되었다. 남북은 세계적 냉전질서가 형성되는 운명적 시점에 각기 다른 체제로 편입되면서 분단되었다. 남북정권은 자신들의 정권 존립의 정당성을 상대방의 전면적 부정을 통한 민족통일 담론에서 찾으려 했다.

 

 

남침으로 도발된 한국전쟁은 상호간 씻을 수 없는 적개심을 남겼고 이후 남북의 국가발전전략이 경쟁적 상호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월남개신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성장한 남한 개신교 내에서는 반공주의적 대북관이 만연하게 되었고 교회는 사회적으로 반공의 보루처럼 여겨졌다. 교회는 국가의 반공담론에 동의하면서 자발적으로 포섭되었다.

 

즉,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정권과 이해를 같이 하게 된 후 정교유착이 이루어졌고 1970년대 인권운동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보수와 진보를 무론하고 한결같은 대북관을 견지하였다. 본 소고에서는 통일논의에서 비켜갈 수 없는 주제인 대북관에 대해 역사적으로 뜻 깊은 공식문건을 통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인권운동과 통일운동, 그리고 북한인권운동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실천에 앞장서 왔던 남한교회가 과거 냉전시대에 반공의 보루였다면, 장차 통일시대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승공의 담론을 펼쳐야 할 것이다.

2.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기간

- 1950년대 개신교 교회의 반공운동에 대한 설명 :

가.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나. 공산주의는 유물론에 입각하여 인간도 유물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 공산주의는 반종교, 반기독이기 때문에
라. 공산주의는 폭력혁명과 독재를 하기 때문에
마. 공산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고 세계를 뢰옥화하기 때문에
바. 공산당이 한국을 지배하게 되는 때에는 한국은 소련의 지배를 받겠기 때문에
교회는 지도자들을 총동원하여 반공투쟁의 지도의 임에 당케 하는 일방, 전 신도를 전도운동에 총동원시켰다. 그것은 전 국민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때에는 공산주의는 자연히 이 땅에서 추방되겠기 때문이었다.

- 1950년 12월 27일 대한예수교 각 교파 연합신도대회 : UN 사무총장, 트루만 대통령, 맥아더 사령관에게 드리는 메시지

“세계 민주주의 자유 국가들과 공산독재 국가들과의 양 진영 사이에 필연적으로 일어날 최후결전의 전초전이며 오천년 내의 약육강식의 역사철학은 바야흐로 그 종결을 고하고 ‘생명을 아끼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잃고자 하는 자는 얻으리라’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시대정신으로 등장되고 있는 사실임을 그윽히 믿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개전이래 수백만 동포의 생명이 희생되었고 반만년의 유서 깊은 사관을 담은 수없이 많은 민족문화재들이 전멸 당하였으나 장래할 위대한 희망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에게 찬양을 드리며 UN군의 송고한 정신과 담대한 무용에 만공의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우리 백만 신도가 깊이 믿고 또한 간곡히 요청하는 바는 다만 이 일사뿐입니다. 그것은 한국땅 위에서 일으킨 양진영의 최후결전을 UN군의 승리로 마출 때 까지 전진무퇴하사이다.”

- 한국전쟁을 계기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사탄론이 자리 잡았고 반공주의적 선민의식이 결합하면서 개신교 반공주의의 종교적 성격이 뚜렷해졌다. 반공사상을 종말론적 구원론과 결합시킨 것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공산진 타멸의 선봉국으로서 가장 중대한 위치에 처해 있는 것이다. 6.25동란을 계기로 하여, 우리 국내에서 전개되어 온 민주진 대 공산진의 투쟁은 비단 우리 한국 혼자의 운명만을 좌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로 양 진의 전체적 존망의 숙명적인 관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은 자국의 운명과 아울러 민주진 전체의 ‘삶’을 양견에 걸며지고 멸공투쟁의 선봉으로서 혈투에 혈투를 거듭해 온 것이다."

3. 냉전시기

- 1954년 미국 에반스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제2차 총회에서 공산국가 교회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존’문제가 논의 되었다. 이에 대해 남한교회 대표들은 이들과의 평화공존 노선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 1957년 한국기독교연합회(한기련)의 제 11회 총회에서는 중공의 유엔 가입 지지 성명을 발표한 미국 감리교청년회에 대한 반대 결의를 채택하였다.

- 1958년 WCC나 이를 주도하는 미국교회가 용공적이라는 비판이 팽배하였고 개신교 내에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대두하였다. 이후 1959년 초 재일교포 북송문제로 한기련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남한 개신교 내 최대 교단 분열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로교회 통합과 합동 분열이 발생하였다.

 


- 1959년 12월 한기련의 ‘에큐메니컬운동 선언’
“에큐메니컬운동은...용공운동을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공산주의와 로마가톨릭주의 그리고 신앙사상의 혼합주의 등을 절대 배척하고 있다.”

- 1961년 5월 29일자 한기련 성명서
“금반 5.16 군사혁명은 조국을 공산침략에서 구출하며 부정과 부패로 기울러져 가는 조국을 재건하기 위한 부득이한 처치였다고 생각하며 그 애국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발표된 혁명공약 실천에 있어서 과감하고도 민속한 모든 시책을 환영한다.”

- 1972년 7월 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 ‘7.4남북공동성명에 대한 성명서’
“교회는 진정으로 반공의 자세를 견고히 하고, 앞으로 다가올 대결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성급한 남북대화 때문에 반공적인 여론이 억압되는 경우에는 심히 우려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 1974년 6월 17일 교회협 인권위원회 결의문 : 공화당 의장서리 이효상의 “종교지도자들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2. 종교인을 반공에 앞장서라 하면서 예배 행위나 종교 행사에만 종사하라는 것이 정치인의 요청이라면 이는 이율배반적 발언이며 한편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4. ...효과적인 반공은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5. 기독교인은 신앙을 고백할 때 이미 유물론과 그 사관을 극복한 사람들이다...우리는 모든 국민이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될 때 근본적으로 유물사관에 근거한 공산주의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 1981년 11월 5일 제1차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대화(비엔나 선언)
- 1984년 3월 제3차 한․북미교회협의회 공동성명
- 1984년 10월 WCC 도잔소협의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안‘
- 1986년 9월 기장 71회 총회 ‘평화통일에 대한 우리의 입장’
- 1986영 9월 예장(통합) 총회 ‘북한전도대책과 통일문제 교단입장
- 1986년 9월 한․북미교회협의회 ‘제4차 한․북미교회협의회 메시지’
- 1986년 11월 미국 NCC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정책성명)
- 1986년 12월 미국장로교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에 관한 결의문’
- 1987년 10월 미연합감리교 ‘한반도의 평화, 정의, 통일에 대한 결의문
- 1988년 2월 교회협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고백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을 선포하면서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어왔던 일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고백한다. 2. 우리는 한국교회가 민족분단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침묵하였으며 면면히 이어져온 자주적 민족 통일운동의 흐름을 외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분단을 정당화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음을 고백한다. 남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은 각각의 체제가 강요하는 이념을 절대적인 것으로 우상화하여 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대한 반역죄(출 20: 3-5)이며, 하나님의 뜻을 지켜야 하는 교회가 정권의 뜻에 따른 죄(행 4:19)이다. 특히,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요 12: 14-15, 4:20-21)를 번했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계명을 어긴 죄이며 분단에 의하여 고통 받았고 또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한 죄이며 그들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지 못한 죄(요 13:17)이다.”

4. 탈 냉전기

- 1991년 9월 17일 한반도 평화통일에 관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입장
“형제를 속으로 미워만해도 살인한 것으로 여기고 회개를 하여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 우리는 이와 같은 적대적 감정으로 대치하여 온 일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용서와 화해의 사역을 우리의 선교적 사명으로 인식한다.”

- 1996년 8월 8일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한국교회의 결의 : 한국기독교평화통일추진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등 9단체 연합
“1. 우리는 북한이 당면한 경제 및 식량난이 극심함을 인식하고 신앙에 바탕을 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한국교회가 조건 없이 북한동포를 돕는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으며, 북한동포돕기운동을 계속하여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 1996년 10월 21일 현 시국을 위한 기도 및 통일대비 북한선교와 나눔을 위한 교계원로 및 지도자 간담회 : 강릉의 무장간첩 출현으로 인한 상황에서 발표.


“2. 북한은 적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동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평화를 모색하고 동포애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를 추구하는 일과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일은 결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안보가 튼튼할수록 더 자신 있게 동족을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며, 반면에 이러한 동포애의 발휘는 북한의 극한 행동을 저지시켜 궁극적으로 안보에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안보 없는 동포애는 감상적인 통일논의를 가져올 위험이 있고 동포애 없는 안보는 군사적 충돌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5. 맺는말

남한 개신교 교회의 대북관은 반공주의와 종말론적 구원론에 기반 한 적대적 적정체성으로부터 동포라고 하는 민족주의적 정체성으로 변화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변화였다. 1980년대 개신교 일각에서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을 이끌면서 진보적인 입장을 표명하자 이에 대부분 교회들이 경각심을 갖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냉전질서가 해체되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보수적 교회들도 점차 적정체성 일색의 대북관으로부터 민족주의적 입장의 동포 정체성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어림잡아 80% 이상 보수적 신앙을 고수하는 남한교회가 대거 대북지원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대북관 변화를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반공주의적 대북관에 따른 적대적 적정체성과 민족주의적 입장에서의 동포정체성이 혼재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하는 듯 여겨지는 현상은 남북한당국의 대북, 대남정책과 국내정치 지형으로부터의 영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장기간에 걸쳐 남북교류활동에 참여하는 교회들은 정치적 성향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으며 적정체성 보다 동포정체성을 더 많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반공의 보루로 여겨졌던 남한교회가 통일시대를 지향하면서 승공의 대북관을 초월하여 원수 사랑의 성경적 에토스(ethos)를 실현할 수 있다면 남북한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도덕적 가치를 실천적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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