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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원문] One Green Korea for One Korea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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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One Green Korea Movement 사무총장)

2014년 5월 7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기독교통일학회와 평통기연이 지난 5월 5일부터 6일(2014년)까지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통일 before & after’를 주제로 개최한 ‘제3회 기독청년대학생 통일대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제공 단체(자)와의 협약에 의해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제공하지만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무단전제 및 불법적인 도용은 추후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는 만큼 주의를 당부합니다. <편집자 주>

 

One Green Korea for One Korea
이춘호(One Green Korea Movement 사무총장)

처음부터 북한 사역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라는 땅은 1979년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그 거리만큼이나 멀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신앙을 가지게 되고 사역자로 헌신하게 되면서도 북한이 아니라 남미의 볼리비아 선교에 관심을 두고 7년에 걸쳐서 사역을 하면서 남미지역에 선교센터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단순하게 남미는 북미에서, 아프리카는 유럽에서, 아시아는 한국에서 선교하면 된다고 생각하였기에, 북한 사역은 당연하게 남한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이 없었다기 보다는 사역의 분배 차원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남한의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통일 비용 등의 복잡한 문제들로 인하여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충격적인 도전이었다. 그러는 중에 후배 CCC 간사를 통하여 북한 사역에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북한 사역에 대하여서 마음이 끌린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자는 의미로 북녘 땅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첫 방문이 내가 북한 사역에 발을 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9년 여름 북녘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중국 권하를 거쳐서 원정의 세관에 들어서면서 낯설지 아니한, 그러나 이상스럽게 낯선 분위기 안으로 들어서면서 약간의 긴장이 들었다. 순간 성경책에 빽빽이 메모해 둔 것 중에 반감을 사게 하는 내용은 없는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러나 짐을 검색하는 것도 여러 가지 행정적인 입국 절차에도 거침없이 수월하게 넘어갔다. 

 

나선시로 넘어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아니하고 곳곳에 깊게 파인 웅덩이들이 많이 있었다. 웅덩이를 피해가다 보니 서로 자연스럽게 몸들이 부딪히고 비벼지면서, 마음도 서로 편해지고 처음 만난 안내원과의 대화도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같이 사역하게 될 Love for All Nations가 나선시에 설립해 놓은 하나농업을 먼저 돌아보았다. 평북 사투리가 심한 사장과 시골 아낙 같은 부기가 맞아 주었다. 이제 막 새끼를 낳은 암캐는 별 경계 없이 보기만 하고 있었다.

첫 방문은 계획했던 것을 다 이루고 왔느냐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실패였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하나농업의 사역지들을 돌아보려고 하였으나 제대로 다 살피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그 방문이 나를 붙들게 되었다. 나선 지역에 한 달 동안의 긴 장마가 있은 후여서, 인프라가 약한 나선 지역의 시골길은 진흙탕 길이었다. 수시로 차가 진흙탕에 빠져서 계획했던 일들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였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만날 수 있었다. 차가 빠지면 끌어낼 방법이 없으니, 안내원이 근처 마을로 가서 사람들을 불러서 밀어 끌어내야 했다.

 

 

한번은 다리가 무너져서 할 수 없이 강바닥으로 차를 몰다가 강바닥 중간에 차가 박혀버려서 근처 고등학생들을 불러서 차를 밀어 끌어내려고 하였다. 미국에서는 one two three하면서 밀고, 남한에서는 하나 둘 셋 하고 미는데, 거기서는 전투준비하고 시작하는 것이 격세지감이 들게 했다. 그러나 웃통을 벗어젖히고 이빨을 드러내고 깔깔대며 밀고 있는 그들이 낯설지는 않았다. 결국 Love for All Nations 농장에 있는 트랙터로 끄집어내려고 했으나 트랙터가 다 와서는 체인이 터져 버려서, 결국 거기서 반나절을 보냈다. 한번은 진흙탕에 빠진 차를,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밀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차 뒷바퀴가 헛돌면서 뿌리는 흙탕물을 뒤집어 쓴 여인들이 깔깔대며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모임을 가는 중이었나 보다.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가야 겠구먼” “아냐, 조국을 돕는 이들을 돕는 착한 일 했으니 흙탕물이라도 괜찮아 그냥 가자.” 마지막 날에는 차가 아예 빠져 버려서 나올 수가 없어서, 나선시 경제국장의 차를 얻어 타고 서둘러서 세관이 닫기 전에 겨우 도착하여 나올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 같던 그 첫 방문에서, 나는 오히려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Love for All Nations 라는 단체는 기독교 비영리단체다. 본래는 뱅글라데쉬 사역을 중심으로 하여서 2002년 Love for Bangladesh 로 시작되었는데, 이후에 사역지가 이곳저곳 늘어가면서 All Nations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로 의료사역을 하면서 탄자니아에 AIDS 치료 센터를 미얀마의 달라 섬이라는 극빈자 치수의 1/10로 살아가는 이들의 지역에 교회와 병원을 짓기도 했다. 교회는 주중에는 병원의 대기실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뱅글라데쉬로부터 네팔, 미얀마, 볼리비아, 탄자니아 등지로 사역지를 확장해 나가면서 2006년 북한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 사역의 시작은 하나농업이라는 영리단체로 시작되었다. 사역의 효율성을 위하여 그리고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영리단체로 등록할 필요가 있어서 6명의 북한 고용인을 두고 사역을 시작하였다. 하나농업은 농업 분야뿐만 아니라 의약품, 가솔린, 중기계 등의 수입과 판매도 허락을 받았다. 물론 사역을 위하여 만든 기관이다 보니 농업에 중점을 두고 사역을 해 왔고, 그러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땅을 30년 씩 빌리는 계약을 하고 거기에 블루베리 레스베리 등을 심었다. 농장 이름은 할렐루야 농장이라고 하고 나선시에 제1할렐루야 농장, 제2할렐루야 농장을 만들고, 2009년과 2010년에는 러시아와의 경계선인 우암리 지역에 비타민 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이순신장군이 함경도 조산만호 겸 녹둔도둔전관으로 있으면서 여진족을 물리쳤다하여 세운 승전비 (준 국보급)를 좀 더 높은 곳으로 옮겨 새롭게 단장하는 문화 사업을 하기도 하였다. 아주 엉뚱하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 가운데에서, 나선 지역에 있는 세 개의 호수 가운데 서번포의 반을 막아서 3개월에 걸쳐서 물을 퍼내고 약 300헥타르의 논을 간척하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자연호수인 서번포(번개늪)의 1/3정도를 막아버려, 구글 지도를 변형시켰다. 이 일은 지금 하고 있는 나무심기 환경운동과는 전혀 반대방향으로 가는 모습이었고, 이 일로 인하여 이후에 산림학자들이나 환경학자들에게서 많은 꾸중을 들었다. 백두산의 야생 블루베리인 들쭉을 농축액으로 만들어 부산으로 들여오기도 하였다.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이 만나는 삼각지역에 전망대를 세우고, 그 안에 예배 처소를 마련하려는 계획도 세워서 S건설에서 설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흐트러져 버린 남북관계로 인하여 차후로 미루어야 했다.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경험으로서 하나 둘 씩 자리를 잡게 되면서, 북한 사역은 해외동포들이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통일에 있어서 두 주체는 남과 북이므로, 남북이 서로 신뢰하면서 온전한 대화를 하면서 동역할 수 있을 때까지 해외동포들이 앞서서 일을 감당해야 한다. 북한 사역을 위하여 남한에 있는 많은 통일을 위한 단체들이 있어서 계획도 세우고 진행도 하고, 많은 교회가 있어서 위하여 기도도 하고 의논도 하지만, 지금은 남한에서 직접 할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되어 있다. 자신이 해외동포들로서 북한 사역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시민권자라는 신분으로 인하여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남북이 통일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해외동포들도 남과 북에 사는 한 민족과 같은 형제로서 피를 나누었기에 해외동포로서 역시 통일을 꿈꾸고 있다. 물론 나는 신앙인으로서 한반도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을 가져오고픈 더 근본적인 그림도 가지고 있다. 이 통일을 가져오는 일에 해외동포가 첫 주자이다. 남북이 서로 유지하고 있는 원칙 때문에도 아직은 남북이 동역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먼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수 없고, 남한은 공식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이 없으면 도와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나도 원칙주의자였는데, 나이가 들어가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사건들을 접하면서 나의 원칙을 주장하는 것에 조심하고 있다.

나의 원칙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의 의견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지로 남한과 북한의 원칙들은, 상대에게는 하나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 현 상황이다. 해외동포는 정치적으로 독립적일 수가 있다. 그래서 남과 북을 같이 포용하고 끌어안을 수가 있고 또한 남과 북으로부터 같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남과 북이 대치 국면에 있는 경우에는 더욱 더 해외동포들의 역할이 중차대하게 되고, 화해 무드 가운데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흐트러질 불안정한 관계이기에 해외동포들의 역할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역할 분담이다. 지금은 (한시적으로) 해외동포들이 말 그대로 Frontline에 서서 통일의 일을 감당하면서, 남한의 손과 발이 되어 직접 들어가서 이 일을 감당할 것이다. 여러분은 후방에서 보급을 확보해 주시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급로도 만들어주시고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나무심기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 Love for All Nations가 북한 사역을 시작하여서 백두산 들쭉(야생 블루베리) 사역에 관계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2011년 여름에 평양과 개성, 그리고 백두산 삼지연 등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성산으로 여겨지는 백두산 부근에는 울창한 산림이 잘 관리되어 있는 반면, 평양과 개성을 잇는 고속도로는 중간 중간에 산사태로 흙이 쏟아져 막혀 있는 부분들도 보였다. 더욱이 평양 근처의 양묘장을 방문하러 가는 시골길에 다리가 떠내려가 버려서 강을 무리로 건너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하나농업이 열매를 맺는 관목 중심이 아니라, 나무를 심어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무를 심으면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관계를 쌓을 수가 있고, 나무를 심으면 환경이 조성되어 산사태 등의 재해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국토환경보호성에 자료를 요구하여, 160만 정보 (헥타르)의 산림이 훼손되었다는 보고서를 받았다. 1970년에 가장 좋은 산림 환경에서 그동안 농지개간, 연료림, 자연 재해 등으로 인하여 너무나 많은 산들이 산림이 없는 산들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무심기는 통일 이야기다. 통일한국의 전 국토가 푸르러야 한다. 통일 후에 가서 나무심기를 하려면 늦다. 나무를 심을 사람도 없고, 나무를 심는 경비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 그리고 울창한 산림은 공산품을 만들 듯이 뚝딱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심어야 하고,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남한도 북한도, 또한 주위의 나라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집중하여 나무를 심기위하여, 북한이라는 장소를 정하고 나무심기라는 사역을 정하여서 One Green Korea Movement(OGKM)라는 민간 비영리 환경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8년간 Love for All Nations 사역을 통해 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2013년 12월 내각 비준을 통하여 국토환경보호성으로부터 북한 산림화를 위해 65억 그루를 심는 일을 정식으로 위임받았다. 구태야 Movement라는 단어를 뒤에 더한 것은 이 일이 OGKM 단체 혼자만으로 되지 않고, 해외동포만으로 되지 않고, 모두가 다 함께 감당할 일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왜 OGKM이 국내단체와 손을 잡고 사역하지 아니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저희들은 동역하는 일에는 언제든지 찬성이다. 다만 해외동포라는 ID를 유지해야 한다. 해외동포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중립에서 서서 이 일을 감당하려고 해야 이 일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목사로서 정치도 모르고 경제도 모른다. 신학하기 전에는 금속공학을 공부했으나, 농경도 모른다. 뒤뜰에 호박 오이 고추 깻잎 부추 등등을 심어서 여름 내내 따 먹는 텃밭 농사 밖에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동포들의 역할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하여 중차대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미 위안부 결의안 문제나 미국 내 교과서 동해병기 법안이 버지니아에서 통과된 것은 해외동포의 역할이 컸다. 통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남북이 주최가 되어서 하여야 할 일이만, 중매쟁이와 같이 맺어주는 일을 중국 257만, 미국 209만 명을 포함한 169개국의 701만 명이 넘는 해외동포(Korean Diaspora)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400만 명 이상이 거주 국가의 시민권자이기는 하지만 한 민족은 유달리 민족의식이 강하다. 숫자적으로도 더 이상 소수라고 볼 수가 없는 숫자이고, 미국 내에서도 이제는 KoreanAmerican들의 영향력이 커져 가고 있다.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을 원하는 여러분은 소수자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 조사를 했더니 통일을 원치 아니한다는 숫자가 상당 부분이 있고 늘어나고 있다. 통일 비용을 이야기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통일이 경제적으로도 유익하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유리한 면들이 시너지 효과도 날 것이고, 지금 부담하고 있는 군사 경비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전에 중국과 북한 경계를 백두산부터 시작하여 두만강 하루까지 돌아본 적이 있다. 백두산 부근에는 두만강이 땅 속으로 흐르기에 거기는 바로 육지가 붙어 있었다. 두만강 발원지에서는 북녘 땅이 바로 거기 있었다. 지나가면서 오두막에 앉아 있는 북한 분을 부르니 대답을 한다. 그런데 무산 지역에 이르러서 철광석을 싣고 줄을 지어 중국으로 나오는 덤프트럭을 보니 울화통이 터졌다. 그러나 그러한 부담이전에 통일을 원하느냐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민족이라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세대가 사라지고, 서구의 실용주의적 물질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세대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위기이다. 통일을 꿈꿀 것이 아니라 통일을 살자고 하는 적극적인 사역자들이 있지만, 아직 우리는 통일을 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손을 놓고 있으면, 이제 곧 한 반도는 통일을 원하지 아니하는 세대가 대세가 되고 결국 통일을 놓아야 하는 때가 오게 될 것이다.

한반도 주위의 국가들로서도 통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한다고 할 수 밖에 없지만, 실은 통일되고 나면 한반도의 통일국가가 대내적인 문제를 정리한 다음에 대외적인 문제에 지금 보다 더 훨씬 강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삼국지에서도 다른 두 나라가 다투는 것을 즐기고 오히려 조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 두 나라가 자국에게 신경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RISK라는 보드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알 것이다.

통일이 되고 있는가? 영원한 평행선이다 못하여 점점 벌어지는 분기선으로 기하학적으로 멀어지고 있다. 물론 두 선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있지만 서로 던지는 로프들이 허공을 치고 있다. 이쪽에서 던지면 저쪽에서 받아주지를 아니하고 저쪽에서 던지면 이쪽에서 받아주지를 아니하기를 반복하면서도, 서로 노력하고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이즘으로 인하여 그 간격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더 벌어지지 아니하고 좁혀지도록, 곧 통일이 다가오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 해외동포는 이 면에 있어서 우리가 중간에 서서 두 선이 더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과거에 여러 번 시도를 했던 스포츠 외교도 그러하다. 지속적으로 노력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들어야 한다. 문화적인 교류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하여야 한다. 이즘이 다르다 보니 거기에 갈등이 있고 서로 책임을 맡은 자들은 원칙에 묶여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각계각층에서 다양하게 서로 연결되는 선에 대하여서는 허락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하여 작은 선이지만 거미줄과 같이 계속 남과 북이라는 벌어지는 그 선을 옭아매고 당기고 하면서 더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 중에 OGKM은 나무를 심자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안을 잡았다. 나무를 심자는 것에 대하여 그 어느 누구도 겉으로는 반대할 수가 없다. 통일을 원하지 아니하는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유엔이 화두로 삼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하여서 겉으로 드러내놓고 반대할 국가들은 없다. 중국도 사막화 방지를 위하여 천문학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중국은 1년에 65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북한 땅에 65억 그루를 심자. 

 

OGKM은 2014년 2월 중국 심양에서 IUFRO (International Union of Forest Research Organizations, 국제산림연구기관연합)와 공동주관으로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산림관계자들과 함께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남북 산림관계 학자들이 모여서 각 전공별로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였다. 이제 오는 5월에는 실질적으로 나무를 심는 일을 한다. 경제특구인 라선시의 한 가운데 있는 민둥산을 산림화하는 것을 목표로 10만 그루의 나무를 들여가서 나무심기운동의 발대식을 한다.

북녘 땅에 나무를 심는 일을 하면서, 혹시라도 다른 오해를 받을까 여러 가지로 조심스럽게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천명할 수 있는 것은 해외동포로서 OGKM의 역할은 남과 북이 서로 편하게 나무 심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이고, 이 일에 있어서 정치적인 것과는 무관하게 중립에 서서 이 일을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정치를 위하여, 극단적인 의견을 표명해야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통일의 전선에 서서 실질적으로 통일을 위한 기초석들을 쌓아가야 하는 사역자들은 양측을 이해하고 양측을 어우르고 서로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힘을 키우는 방법으로, 혹은 자기편을 더 많이 만들어 절대다수를 만드는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하여도 그것은 상대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학자 중에 반슨교수가 있다. 변증학교수이면서 토론자인데, 대학의 지성들이 그득한 대학 강단에서 무신론자 학자들과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토론을 하여 당당하게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멋있는 교수였다.

그러나 그 결과로, 무신론자 학자가 논리에 졌다는 결과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일은 들은 적이 없다. 힘과 논리의 대결은, 상대를 제압하고 억지로 하나로 만드는 것이지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의미의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어차피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다. 북녘 땅이 푸르게 변하는 모습을 그려보자. 우리가 이야기해야할 삼천리금수강산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가 삼천리금수강산이다. 하나의 푸르른 한국이 하나의 한국을 만든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도, 그냥 앉아서 흙 위에 물고기를 그리는 일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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